공재 윤두서는 말 그림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 물론 인물화나 다른 장르에서도 신묘함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지만 분야의 일등을 꼽으라면 단연코 말 그림일 것이다. 공재 스스로도 일찍부터 말을 좋아해 여러 준마들을 사육했고 아꼈다고 한다. 허나 조금 이상한 점은 정작 자신이 기르는 말을 타는 일은 드물었다는 점이다. 먼 길을 떠나는 자식들에게도 가문소유의 말을 타지 못하게 했고, 스스로도 여행길에서 빌린 말이 역마인 것을 안 순간 걸어서 다녔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주례병거지도'는 윤두서가 그린 그림으로 사실 감상용 그림은 아니다. 주나라 시대의 관제를 적은 책인 '주례'에 나오는 병거를 스스로 연구한 후 그 결과를 눈에 보이도록 그린 그림으로 일종의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당쟁이 격하던 시대 권력 장악에 실패한 북인계 남인으로서 세상에 출사표조차 던지지 못했던 윤두서가 병법을 연구하고 국가체제를 연구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일이었을까? 이것은 출세 이전에 선비로서의 본분을 자각한 태도였을 것이다. 오히려 학문과 사상,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자세를 지녔던 까닭일 것이다. 병거와 병거를 탄 병사, 병거를 끄는 네 마리 말과 갑옷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사실적 재현은 공재가 추구했던 실사구시적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무엇이든 현실에서 관찰한 것을 토대로 삼고자 노력했다. 그가 두 전란을 겪은 조선을 통해 실패의 원인을 고민하고 그 해결책으로 접근한 부국강병책의 모델은 바로'주례'였고, 그가 고전 중의 고전인'주례'에서 배우고자 했던 것은 국가사회공동체였다. 공재에게 말은 함부로 타고 다닐 수 있는 호사스러운 취미의 대상이기보다 부국강병의 바탕이 되는 전투력 증강의 주요 자원이었던 것이다. 즉 말은 국가의 공공재로서 나라를 강하게 만들 근간으로서, 또한 그러한 근간이 되기에 우국충정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던 동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공재가 말을 사랑했던 마음의 바탕은 조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양희원(34) KRA한국마사회 교관
그림은 4마리가 끄는 마차로 당대에는 현대의 탱크와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병기였다. 주나라 혹은 진나라 시대의 전차로 보이는데 이 말들은 4마리가 일체화 돼 있어 마차를 끌 수 있도록 고안돼 있다. 당시에는 사람이 말을 타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전차를 이용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이후에는 전차가 사라졌다. 전차에 비해 한사람이 한 마리의 말을 타고 전투에 나서는 기마대가 전술적으로 더욱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등자 등 마구의 발달이 전차의 도태를 가속화 시켰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그림처럼 4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는 없다. 과거 고려 조선시대에도 우리나라 여건상 4마리가 끄는 마차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말 한 마리에 짐을 지우는 형식으로 말이 활용됐다. 또 대량의 화물은 대부분 배로 운송했다.
도로상태가 좋았더라도 그림 같이 4마리가 끄는 마차가 활용됐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림처럼 네 마리의 말이 횡으로 연결된 마차를 운영할 경우 말들의 훈련 상태가 뛰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처럼 4마리가 횡으로 위치한 마차는 각 말마다의 정해진 위치가 있어야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말의 습성 상 다른 말이 바싹 옆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간에 낀 두 마리 말들은 스트레스에 강해야 한다. 맨 위쪽의 말은 왼쪽에 다른 말이 오는 것을 허용해야 하고 아래쪽 말은 오른쪽에 다른 말이 접근하는 것에 불만이 없어야 한다.
그림 속 장군의 고삐는 찰턴 헤스톤이 주연한 영화 '벤허'에 나오는 벤허가 고삐를 잡는 방법(고삐를 펼쳐 양손으로 잡는 법)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러나 그림에서처럼 고삐를 잡아도 충분히 마차를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말을 조정하는 것은 재갈을 자극하는 방법 말고도 다양한 수단이 있다.
말의 꼬리를 묶은 것은 기능성이다. 말 꼬리가 자연 상태로 있을 경우 마차의 진행을 방해할 수 있고 또 다른 말과의 접촉이 발생할 수 있다.
말의 품종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었던 몽고말 계열이다. 말들은 4마리 모두 속보 하고 있다. 비율상 말에 비해 사람이 커 보이는데 당시 사람과 말의 비율을 반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상상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