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존중 그리고 책임", '독이 든 성배' 받은 벤투가 한국에서 살아남는 법
"나는 존중을 잘 아는 사람이다. 어떤 비판과 질문을 받더라도 성실한 답변으로 책임지겠다." '알렉스 퍼거슨(77) 감독이 와도 욕먹을 자리' '독이 든 성배'. 한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지난 2002 한일월드컵 이후 지금까지 16년 동안 감독 10명이 거쳐 갔고, 범위를 한국 축구 역사상 첫 대표팀이 출범했던 1948년부터 지금까지 넓히면 71년 동안 무려 79번이나 감독이 바뀌었다. 감독 1명당 평균 임기가 328일에 불과하다 보니 누가 와도 파리 목숨 신세를 면하기 힘들다. 71년 역사상 대표팀을 맡아 월드컵 예선부터 본선까지 무사히 마친 감독은 '4강 신화'를 썼던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72) 감독밖에 없을 정도다. 독 중에서도 맹독이 든 성배다. 이번에 '독이 든 성배'를 받아 든 역대 80번째 사령탑, 파울루 벤투(49·포르투갈)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이 살벌한 분위기를 얼마나 실감하고 있을까. 23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MVL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참석한 벤투 감독은 "여러 감독이 거쳐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국의 기대치가 높다는 것도 안다. 지난 36년간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팀이니 기대치가 높은 건 당연하다"는 말로 이해의 물꼬를 텄다. "그중 본선 토너먼트에 오른 건 2002년과 2010년 단 두 차례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을 이은 벤투 감독은 "기대가 높고 믿음이 있고, 또 수준도 높다. 이게 내가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선택한 이유"라고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성적에 대한 기대와 결과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최근 행보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놔야 했던 벤투 감독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 벤투 감독은 "오늘날 축구는 결과만 따지고 감독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매우 높다"며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결코 짧지 않다. 뚜렷한 목표가 있는 장기적 프로젝트고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김판곤(49)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명확하게 설명해 줬다"고 한국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벤투 감독이 선임된 뒤 일었던 부정적인 여론 그리고 대표팀을 향한 의심하는 눈초리에 대해 직설적으로 날아든 질문에 대해서도 여유 있게 대처했다. 그는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많이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말문을 연 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존중은 중요한 요소다.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라며 우선적으로 '존중'을 부탁했다. 이어 벤투 감독은 "평가하고 선발하고 결정하는 건 내 일이다. 어떤 비판과 질문을 받더라도 이 자리에서 성실히 답변할 책임이 있다"고 말해 대표팀 감독으로서 비판에 책임감 있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벤투 감독에게 한국은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땅이다.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경기 당시 포르투갈 국가대표로 한국에서 마지막 경기를 뛰었던 그는 이제 감독으로 이 땅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벤투 감독은 "2002년 당시 한국은 조직력과 적극성이 뛰어나고 압박이 강한 팀이었다. 지금의 대표팀과 성격이나 스타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하며 "장기적 프로젝트가 되겠지만, 다가오는 2019 아시안컵과 2022 카타르월드컵 예선 통과만이 아니라 한국 축구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구체적 부분에 대한 답변은 피해 갔다. 한국 축구에 대한 인상이나 수준을 묻는 질문에 그는 "월드컵 최종예선과 본선 경기들을 비디오로 분석했지만 직접 보진 못했다. 물론 영상을 통해 긍정적 부분을 봤기 때문에 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수락한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놨다. 그는 지난 22일 K리그1(1부리그) FC 서울-포항 스틸러스 경기를 관전한 소감을 "그 한 경기로 모든 걸 알 수 없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데뷔전이 될 오는 9월 A매치 친선경기 2연전 소집 명단에 대해 거리낌 없이 힌트를 던졌다. 소집부터 경기까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벤투 감독은 월드컵에 나섰던 정예 멤버들을 중심으로 이번 명단을 꾸릴 예정이다. 대표팀 은퇴 의지를 밝혔던 기성용(29·뉴캐슬 유나이티드)도 소집 명단에 포함됐다. 벤투 감독은 "주장이라서, 기량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라며 "구자철(29·아우크스부르크)과 함께 대표팀에서 영향력이 큰 선수"라고 평가하며 이번 소집에 앞서 기성용의 은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겠다는 뜻을 밝혔다.벤투 감독은 오는 27일 A매치 소집 명단을 발표한 뒤 9월 3일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첫 소집을 하고, 같은 달 7일 코스타리카, 11일 칠레와 친선경기서 사령탑 데뷔전을 치른다.고양=김희선 기자
2018.08.24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