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신임 감독에 선임된 파울루 벤투 감독. 그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축구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세계적 명장이 한국에 왜 오나?", "한국 축구의 현실을 직시하라.", "벤투 감독도 한국에는 감지덕지다." 등의 말도 덧붙인다.
틀린 말이 아니다. 세계적 명장이 아시아로 올 때는 대부분 '커리어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금액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또 아시아에서도 뒤로 밀려나고 있는 한국에 명장이 올 명분이 없다.
그렇기에 2012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2) 4강 커리어를 가진 벤투 감독이 한국을 선택해준 것은 감사한 일이다.
중국 슈퍼리그 충칭 리판에서 경질되는 등 최근의 행보는 실망스럽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최고의 경력을 가진 지도자임은 분명하다. 포르투갈 축구의 뼈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 명장은 아니지만 한국 축구 현실을 놓고 보면 높은 수준의 감독을 선임한 것이다.
그런데 왜 벤투 감독에 실망한 축구팬들이 존재하는가? 왜 더 수준 높은 명장을 기대했는가?
벤투 감독의 경력을 몰라서가 아니다. 한국 축구의 현실에 무지해서도 아니다. 마냥 눈높이만 높아져 명장 타령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명장을 바라는 그 높은 눈높이, 누가 높였는가?
이 질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협회)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뒤 새로운 외국인 명장에 대한 기대감을 최고조로 높인 '주체'가 바로 김 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달 5일 새로운 외국인 감독 선임 기준을 공개했다. 핵심은 '월드컵 본선 수준에 맞아야 한다'였다. 그러면서 '월드컵 지역예선 통과 경험·대륙컵 대회 우승 경험·세계적인 수준의 리그 우승 경험'이라는 세부 조건을 제시했다.
이런 조건으로 자연스럽게 기대의 방향을 명장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바로 명장들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런 명장이 한국에 올까?'라는 의구심에 김 위원장은 이렇게 확신했다.
"유럽에 있던 지도자가 한국으로 오는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자신의 커리어가 떨어진다고 볼 것이다. 유럽으로 가서 노력하겠다.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왜 한국 축구가 매력적인지 설득하고 확신을 주겠다."
45일 뒤 그가 내놓은 결과가 벤투 감독이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섣부른 기준'만 없었다면 만족스러운 영입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기준에 대입하면 분명 실패다. 그래서 실망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깨진 것이다.
기준으로 따진다면 포르투갈 대표팀으로 2014 브라질월드컵 유럽예선을 통과한 것이 전부다. 정작 본선에서는 전성기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가 있었음에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가 월드컵 본선 수준에 맞는 감독인가?
김 위원장은 분명 축구팬들과 한 약속을 어겼다.
벤투 감독 선임에 대한 정당성을 말하기에 앞서 높은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 주체로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능력 부족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명장을 향한 막연한 기대감에 대해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현실이 이러니 이해하라고 항변한다.
그러면서 '변명'을 늘어놨다.
일부 축구팬들은 김 위원장의 인터뷰를 보며 '감동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한국 축구의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최선을 다해 명장들을 만나며 고군분투한 모습에 느낀 감정이다. 물론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감성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냉정하게 협상력의 경쟁력을 따져봐야 한다. 김 위원장은 노력만 했을 뿐, 경쟁력은 없었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기준의 감독 선임에 실패했다. 그리고 협상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명장이 오지 않은 이유는 '오직' 접촉한 감독들의 문제였다. 한국 축구에 애정이 없었고, 돈만 밝혔다는 거다. 자신의 협상 능력이 부족했고, 세계 축구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으며,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확실한 카드도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쏙 뺀 채로 말이다.
명장을 흔들만한 자금도 준비하지 못했음에도 김 위원장은 한국 축구의 매력을 어필하며 확신을 주겠다고 자신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돌아온 건 퇴짜뿐이었다. 포트폴리오에 이름만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계획했던 후보 감독 100% 실패했다. 그러자 계획에도 없었던 벤투 감독에 접촉한 것이다. 충칭에서 물러날 거라는 정보를 입수한 뒤 김 위원장이 먼저 달려갔다. 다른 감독과 달리 적극성을 보였고, 진정성이 느껴졌다며 벤투 감독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은 협상이 아니다. 설득도 아니다. 적극성이 보이지 않는 이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협상의 능력이다. 한국 축구의 매력을 모르는 이에게 어필해 마음을 돌리는 것이 설득의 기술이다.
김 위원장이 어떤 협상 카드를 준비했고, 어떻게 한국 축구의 매력을 어필했는지는 들을 수 없었다. 명장들의 냉당함에 돌아서야 했고, 적극성을 보인 유일한 이에게 마음을 연 것이다.
중국에서 실패한 벤투 감독은 재기의 발판이 필요했다. 한국이 매력적인 카드임에 분명했다. 김 위원장은 "피크에 있는 감독은 접근이 어려웠다. 한 번 꺾여서 접근할 수 있는 감독이 있었다. 스크래치가 나면서 우리에게 기회가 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협상과 설득이 아닌 서로의 마음이 이미 맞은 상태에서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것뿐이다.
중국 슈퍼리그 충칭 리판 감독 시절 파울루 벤투/연합뉴스
이상을 좇다 실패했다. 현실의 벽에 막혀 돌아온 것뿐이다. 그러면서 감동을 섞은 '감동적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벤투 감독 선임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감동을 뺀 변명도 했다. 포르투갈의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독일과 경기에서 페페(베식타스)가 퇴장 당한 변수 때문이고, 충칭에서 실패는 강하지 않은 스쿼드 때문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럴거면 애초에 기대감을 높이지 말았어야 했다. 모두의 기대감을 높인 뒤 이제와서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아프지만 어떻게 하나"라고 토로하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위원회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준을 높이 잡았다. 스스로 힘든 작업을 하게 됐다. 협회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국민들에게 자존심을 세워주고, 선수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왔던 일들이다. 그리고 이런 표현을 통해 협회의 변화 의지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할 정도로 수준을 많이 높여 잡았다."
이는 스스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러시아월드컵 후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귀에 솔깃한 희망적인 말로 여론을 달랜 것에 불과했다. 협회가 그동안 위기 때마다 줄곧 써왔던 방법이다.
김 위원장은 독선과 부패로 얼룩진 협회의 현실을 뒤엎을 개혁과 변화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그가 협회로 온 이유다. 파격적 인사였다. 도약을 이끌어낼 책무를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도약의 방법 중 하나인, 한국 축구 현실을 뛰어 넘어 명장을 선임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약속은 지켜질 것만 같았다. 그런 협회를 기대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감동적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한국 축구의 현실을 받아들이자는 거다.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