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가 독일의 돌풍을 잠재우고 평창 '빙판의 제왕'에 올랐다. OAR은 25일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결승에서 독일을 연장 혈투 끝에 4-3(1-0 0-1 2-2 1-0)으로 이겼다. 이번 대회에 걸린 총 102개의 금메달 중 마지막인 102번째를 차지한 OAR은 평창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광도 누렸다. 러시아 아이스하키에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16년 만의 메달이다. 러시아는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4위,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6위, 자국에서 열린 2014년 소치 대회에서 5위에 머물렀다.
세계 2위 리그인 러시아대륙간하키리그(KHL)에서 활약 중인 선수로만 25명 전원을 꾸린 OAR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불참한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주목받았다. OAR은 경기 초반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1피어리드 0.5초를 남겨두고 브야체슬라프 보이노프가 선제골을 꽂아 넣어 주도권을 잡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파란을 일으킨 독일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독일은 2피리어드 9분32초에 펠릭스 슈츠가 OAR 골리 뒤를 파고드는 절묘한 샷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후부턴 난타전이 이어졌다. OAR은 니키타 구세프가 3피리어드 13분21초에 화려한 개인기로 독일 골망을 흔들었지만, 불과 10차 만에 독일의 도미니크 카훈에게 동점골을 내줬다. 3피리어드 16분44초엔 독일 요나스 뮐러에게 역전골까지 허용해 2-3으로 끌려갔다. OAR은 경기 종료 55초를 남겨두고 구세프의 극적 동점골 덕에 가까스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갔다.
서든 데스 방식으로 승부를 가리는 연장전은 '반칙'으로 승부가 갈렸다. 연장 10분49초 독일 파트릭 라이머가 하이스틱 반칙으로 페널티를 받았다. 수적 우세를 잡은 OAR은 라이머가 퇴장한 지 29초 만에 키릴 카프리조프가 결승골을 꽂으며 올림픽 금메달을 품었다. 퍽이 독일 골망을 흔들던 순간 하키센터를 가득 채운 1만 여 명의 관중은 뜨거운 함성을 질렀다. 관중석 대부분을 차지한 러시아 팬들은 쉬지 않고 'OAR' 대신 '러시아'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러시아는 도핑 조작에 따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징계로 OAR로 출전했다. 겨울스포츠 강국은 러시아는 이번 대회서 고전했다. 아이스하키는 이번 대회 러시아 팬들이 구경한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첫 금메달은 겨울올림픽의 꽃으로 꼽히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알리나 자기토바)에서 나왔다. 러시아는 2014년 자국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에서 종합 순위 1위(금13·은11·동9)를 차지했다.
은메달을 딴 독일은 러시아보다 더 큰 박수를 받았다. 독일은 이번 대회에서 무려 13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종합 순위 1위에 올랐지만, 아이스하키에선 별 기대를 받지 못했다.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은 동메달(1932·1976년)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런 독일 아이스하키는 평창에서 새 역사를 썼다. 세계랭킹 8위 독일은 이번 대회에서 세계 7위 스위스(8강 진출 플레이오프) 3위 스웨덴(8강) 1위 캐나다(준결승)를 차례로 꺾은 이변을 연출했다. 특히 독일은 지난 23일 캐나다와 준결승에선 슈팅수에서 15-31로 밀렸지만도 끈질긴 수비와 투지를 앞세워 4-3으로 이겼다. 경기 후 자국 선수들과 만난 독일 취재진은 "선수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다"면서 "은메달이지만 금메달을 딴 거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독일의 마르코 슈투름 감독은 "우리는 준결승에 오른 것만으로도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면서 "대회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릉=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