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인데 잔디가 너무 안 좋다. 홈에서 제대로 된 잔디에서 경기를 한 적이 없다."(구자철·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전 끝내고) "항상 이야기 하지만 홈구장 잔디는 나아지지 않는다. 더 이상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기성용·지난 3월 시리아전 끝내고) "잔디 상태가 많이 안 좋아 플레이하는데 지장이 있었다."(손흥민·시리아전 끝내고)
구자철(28·아우크스부르크)·기성용(28·스완지 시티)·손흥민(25·토트넘) 등 한국 축구대표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3명의 선수들이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상암) 잔디 상태를 향해 일갈한 내용이다. 이들 외에도 대부분의 대표팀 선수들이 상암 잔디를 향한 불신을 드러냈다.
한 두 해의 일이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상황이다. 잔디로 인해 오히려 홈팀 선수들이 불리한 입장이 돼 버렸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 상암 잔디를 관리,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 서울월드컵경기장운영처(운영처)가 '잔디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오는 31일 이곳에서 열리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9차전 이란전 때문이다. 한국의 월드컵 본선행 운명이 걸린 최대 승부처다.
일간스포츠는 24일 상암 구장을 찾아 현재 잔디 상태를 파악했다. 양쪽 골대 부근과 중앙선 부근에 부분 교체한 부분이 뚜렷하게 보였다.
박정우 운영처장은 "대표팀이 최고의 그라운드 환경에서 이란과 맞서 승리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잔디 전문가 10명이 한 번에 투입 돼 밤낮 가리지 않고 잔디를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암 잔디는 여름만 되면 난리가 난다. 이유는 상암에 깔린 잔디가 추운 곳에서 잘 자라는 한지(寒地)형 잔디 켄터키 블루그래스이기 때문이다. 한지형 잔디는 15도에서 25도 사이에 가장 잘 자란다. 한 여름인 8월에는 잔디 온도가 평균 36도에서 최대 40도까지 뜨거워져 말라 죽는다.
이를 막기 위해 운영처는 8월 초부터 스프링클러와 대형송풍기 8대를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잔디 온도를 30도 이하로 유지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지난 19일부터 상암 잔디 1/4 교체 작업에 들어갔고, 23일 완료했다. 올해 잔디 교체비용으로 배정된 예산 1억5000만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7000만원을 사용했다.
박 처장은 "잔디 교체 예산이 1년에 1억5000만원이다. 경기 횟수와 그라운드 상태에 따라 예산을 배분한다"며 "올해 FC 서울이 AFC 챔피언스리그와 FA컵에서 탈락해 하반기 경기 수가 급격히 줄었다. 그래서 예산 절반에 가까운 비용을 이란전을 위해 한 번에 투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23일에는 운영처 주도로 국가대표 출신 김병지(47)를 포함해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 그리고 대학 교수들이 모여 토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표팀 선수들이 원하는 최적의 그라운드를 만들기 위한 논의였다.
박 처장은 "대표팀 선수들이 잔디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선수 입장에서 의견을 듣고 싶어 대표팀 출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또 운영처는 잔디 보호를 위해 8월에 축구경기 외 다른 어떤 행사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이 이란전에 앞서 '잔디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이다. 운영처는 승리를 자신했다. 박 처장은 "31일까지 한국이 승리할 수 있는 잔디를 만들겠다. 지금 부분 교체한 잔디 색깔이 달라 보이지만 롤링 작업 등을 하면 말끔하게 정리될 것"이라며 "대표팀 선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경기 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