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컸다! 아역 시절부터 유명세를 치른 배우 여진구(19)가 어엿한 성인 배우로 자연스러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영화 '대립군(정윤철 감독)'을 통해 전공과목이라 할 수 있는 사극 장르를 다시 한 번 택했고,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탐낼만한 광해 캐릭터를 여진구만의 색깔로 소화했다.
성적은 다소 아쉽지만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열연에 반기를 들 수는 없다. 지금도, 여전히 성장 중인 여진구는 흥행 그 자체보다 배우로서 다양한 매력을 선보이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 낙천적인 성격은 여진구의 도전 의지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도 하다.
드라마·영화를 막론하고 종횡무진 활약 중인 여진구는 또래 배우들처럼 청춘물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연기 외에 딱히 마음을 쏟고 있는 관심사는 없다며 천생 배우의 면모를 뽐냈다. 운전·음주 등 미팅 빼고는 다 해봤다며 해맑게 미소짓는 여진구에 신뢰감을 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 조금 다른 광해 캐릭터를 연기했다.
"공감했고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그 어린 나이에 하루 아침에 조선을 짊어지고 이끌어 가게 됐다. 거기에 아버지에게 버림 받았다는 상황까지 알게 됐다. 솔직히 진짜 살기 싫었을 것 같다. 겨우 버티고 있는데 어머니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살 시도까지 한다. '안타깝고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 부러웠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상처를 혼자 끌어 안았다면 더 마음이 아팠을텐데 주변인들로 인해 자신감을 찾고 자존감을 회복한다. 신분의 무게도 깨닫고. 그런 지점은 부러웠다. 아직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나 역시 공허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 '대립군'을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 시작은 무능하다.
"임금이 될 자질이 전혀없는 소년이다. 하지만 언뜻 본인도 몰랐던 내면의 다른 모습을 보이고 무엇보다 사람을 알아 볼 줄 아는 눈을 갖고 있다. 그런 모습을 관객들이 함께 공감해 주신다면 디테일한 변화가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더 잘 했어야 하는 것이겠지."
- 그간 수 많은 광해가 있었다. 참고한 작품이 있다면.
"안 그래도 감독님께 여쭤봤는데 감독님도 나도 마땅한 작품이 떠오르지 않았다. 광해는 광해이지만 왕이 되기 전 왕세자 시절의 광해이고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광해의 모습과도 많이 달랐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볼까 하다가 '그냥 신경쓰지 않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굳혀졌다."- 막막하지 않았나.
"처음에는 막막함이 컸는데 감독님께서 뜬금없이 내 아역시절 연기가 좋았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나도 내 어린시절 작품을 다시 찾아봤다. 처음으로 내 연기를 보면서 연구했던 것 같다."
- 다시 보니 어떻던가.
"지금도 그 때에 비해 엄청 나이가 들지는 않았지만 몰랐던 것들이 보이더라. 선배님들께서 지나가며 '이대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보니까 참 멋 모르고 순수하게 연기했더라. 아무래도 성장하면서 캐릭터에 대해 더 연구하게 되고 개인적인 욕심도 생기다 보니까 점점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근데 어릴 땐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연기할 수 밖에 없지 않나. 돌아가고 싶기도 한데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슬프기도 했다."
- 완성된 '대립군'은 어땠나. 아쉬움이 남지는 않았나.
"다행히 감독님게서 광해의 감정선을 중요하게 생각해 주셨는지 '이 장면 왜 빠졌지?'라는 의문은 안 들었다. 다만 모든 배우들이 현장에서 너무 많이 고생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아쉬움이 남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 영화만 봐도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 같더라.
"후반부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초반 산으로 들로 걸어다닐 땐 너무 힘들었다. 한 신을 여러 장소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또 지금까지는 현장에 가면 촬영 세팅이 다 돼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래서 배우들 보다는 스태프 분들이 더 많이 고생하셨을 것이다. 장비를 짊어지고 다니셔야 했으니까. 집중해서 빨리 끝내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 부상은 없었나.
"다행히 부상은 없었다. 살짝 살짝 긁히거나 까진 것 말고는 크게 피를 본 적은 없다."
- 육체적으로 힘들면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지지 않나.
"맞다. 근데 정할 희한하게도 이번에는 힘든 만큼 몰입이 잘 됐다. 이게 내가 무언가를 해야겠다,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패기있게 선배님들에게 다가갔고 선배님들이 다 받아주셔서 오히려 편하게 임할 수 있었다. 힘드니까 잡생각도 많이 안 들었던 것 같다.(웃음) 좋게 표현하면 건강해지는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촬영했던 작품 중 육체적 고충은 확실히 최고였다."
-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였나.
"양구의 도솔산이었나. 날이 좋으면 북한 쪽이 보이는 산이라고 하더라. 실제 훈련도 하는 곳인데 어떻게 섭외를 해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생쌀 먹는 장면을 찍은 곳이다. 다른 산은 지금까지 알고있던 산의 이미지였는데 도솔산은 좀 달랐다. 눈 앞에서 안개가 바람을 타고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느낌이 드니까 누가 스모그를 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시야 확보가 잘 안돼 처음으로 위협감을 느끼기도 했다."
-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토우(이정재)와 부딪치는 신은 촬영 할 때부터 '생각보다 감정이 심하게 오는데?'라고 생각했다. 곡수(김무열)가 성 밖에서 나오라고 소리치는 상황에서 백성들을 둘러보는데 뭔가 심장이 요동치는 느낌이 들더라.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감정과 표정 관리가 잘 안 됐다. 영화를 보면서도 가장 울컥했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현장 분위기는 아무래도 작품 분위기를 따라갈 수 밖에 없다. 확실히 가볍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을 선배님들과 함께 촬영했기 때문에 혼자있을 때 만큼 막 감정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선배님들의 몰골, 내 몰골을 서로 보다 보니 어느새 분위기와 캐릭터에 적응해 있더라."
- 분위기 메이커는 누구였나.
"일단 (김)무열 선배님이 정말 재미있다. 말투는 나긋나긋 하신데 가끔씩 툭툭 던지는 개그가 빵 터진다. (이)정재 선배님도 심심할 때마다 농담을 하시더라. 엄청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여유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 막내의 애교는?
"내가 애교를 부리지 못한다. 막내답게 살갑게 굴어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성격이 아니더라. 그리고 그렇게 다가가면 선배님들이 부담스러워 하실 것 같기도 하고.(웃음) 대신 나 역시 선배님들을 최대한 편하게 생각하려 했다. 선배님들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자주 조언을 구했다.
- '대립군'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성장한 것 같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뭘 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립군이 날 바라보는 눈빛이 광해를 잘 드러내 줄 것 같았다. 직접 나서서 색다른 리더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좀 안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촬영 전 준비를 많이 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활용하지 않았다. 내 옆에 누워있는 선배들을 보면서 최대한 느끼려고 했다. 도움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