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운수 오진 날’은 지금까지 봤던 스릴러와는 다르다. 대부분의 스릴러가 후반부나 돼서야 범인의 정체를 알려줬다면, 이 작품은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한다. 범인을 알고 보면 재미가 반감될 거란 걱정은 마셔라. 유연석의 연기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하니까.
택시기사 오택(이성민)은 돼지 수십 마리가 방 안으로 들이닥치는 꿈을 꾼다. 눈을 뜨자마자 슈퍼로 달려가 복권을 산 오택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오택에겐 아픔이 있다. 거액의 사기를 당해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는 것. 딸의 등록금을 내주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빚 갚느라 여윳돈은 없다. 오택은 마침 묵포로 떠난다는 장거리 손님을 만난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고 싹싹한 청년이다. 하지만 이 청년, 대화를 나눌수록 어딘가 이상하다. 이미 택시는 고속도로로 들어선 상황. 평범한 택시기사 오택, 딸 등록금 마련하려다 살인마를 택시에 태웠다.
‘운수 오진 날’은 로드 무비 장르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택시기사 오택과 묵포행 손님 금혁수(유연석)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택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는 만큼, 자칫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성민, 유연석, 이정은 등 배우들의 연기가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유발한다.
유연석은 밀항을 위해 묵포로 떠나는 연쇄살인마 금혁수로 분한다. tvN ‘응답하라 1994’,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을 통해 다정하고 선한 이미지를 보여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다. 금혁수는 무용담을 늘어놓듯 살인을 고백하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는 인물. 유연석은 캐릭터를 위해 실제 사이코패스의 다큐멘터리, 인터뷰 등을 참고해 연구했다. 제작발표회에서 “섬뜩할 수 있는 상황들을 즐기고 어린아이처럼 천진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성민은 지난해 ‘재벌집 막내아들’ 진양철 회장의 카리스마를 완전히 벗었다.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평범한 인간으로 변해 위기에 놓인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금혁수가 좋은 사람일 것이란 착각부터 살인마가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까지. 36년의 연기 내공으로 극을 촘촘하게 채운다.
한정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작품인 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끝까지 끌어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유연석의 광기 어린 눈만으로 ‘운수 오진 날’을 봐야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선한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낸 유연석의 얼굴을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24일 티빙 파트1(1~6화)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