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세라핌이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라는 특이한 제목의 노래로 활동하고 있다. 아마도 여자 아이돌 중에서 제일 특이한 그룹이 르세라핌 아닐까 싶다. 나는 지난 2022 ‘SBS 가요대전’ 무대에서 멤버 김채원이 가위를 들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른다는 건 엄청난 감정의 변화를 암시하거나, 반항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져서다. 그래서일까. 르세라핌이 새로운 곡을 발표할 때마다 여러 가지 해석이 따라다니는데 그럴 때마다 르세라핌은 늘 당당하고 자기 주장이 확실한 것 같다. 당당한 게 콘셉트인가, 아니면 반항하는 게 콘셉트인가? 우리집 Z에게 물어보니 “르세라핌은 팀 이름 자체가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두려움 없이 나아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그룹”이라고 대답했다. 하긴, 예전 아이돌 그룹 이름도 신화, god, 동방신기 등등 엄청 거창했으니까. 르세라핌의 이번 노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는 어떤 노래고 어떤 의미가 있는 곡인지 궁금했다.
X재국 :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은 어떤 의미가 있는 곡이야?
Z연우 : 르세라핌이 ‘언포기븐(unforgiven)’으로 컴백했을 때 팬들 사이에서 이번 앨범 수록곡이 “모두 좋다”는 반응이었어요. 특히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라는 곡이 제목도 특이하고 노래도 좋아서 후속곡으로 활동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그리고 팬들 사이에서 이 노래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일단 ‘이브’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으로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스토리를 갖고 있어요. ‘프시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 에로스의 연인이고, 프시케는 에로스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사이인 게 너무 답답해서 에로스가 잠들었을 때 몰래 에로스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에로스는 사라져버렸고 프시케는 에로스를 찾기 위해 여러 시련을 겪었어요. 결국 프시케는 죽음과 같은 잠에 빠졌으나 에로스가 제우스에게 빌었고, 긴 잠에서 깨어난 프시케는 불멸의 여신이 되었어요. ‘푸른 수염의 아내’는 여러 차례 결혼을 했지만 계속 아내가 사라지는 수상한 귀족집안, 푸른 수염 집안의 스토리예요, 푸른 수염이 새로운 여자와 결혼하게 됐는데 새 아내는 푸른 수염이 절대 열지 말라던 문을 열었고 그 안에는 그동안 실종됐던 여자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새 아내는 푸른 수염을 무찌르고, 그 여자는 푸른 수염의 재산을 모두 얻게 된다는 스토리예요. 이브, 프시케, 푸른수염의 아내 이 세 명은 같은 스토리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금기를 깬 여성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마치 르세라핌 멤버들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연 김채원, 사쿠라 그리고 15년 동안 일본에서 발레를 전공했지만 자신의 진짜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온 카즈하, 아이돌을 꿈꾸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에 열중했고 결국 대학교까지 합격했지만 데뷔를 할 수 있다는 소식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허윤진, 어린 나이에 남들과 다른 도전을 한 홍은채까지. 멤버 한 명 한 명 모두 개인적인 스토리가 있고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 여성들이거든요. 르세라핌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자신의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자유를 위해 금기를 깨는 여정에 기꺼이 동참한 거예요.
X재국 : 그렇다면 르세라핌은 왜 금기를 깨고 싶어 하는 걸까?
Z연우 : ‘금기를 깬다’는 건 어쩌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건데 르세라핌이 당당하게 금기를 깨고 싶다고 외칠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피어리스(FEARLESS:두려움을 모르는)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수근거림’이나 ‘부정적인 의견’은 르세라핌이 만들어가는 스토리와 열정 그리고 꿈을 이뤘을 때 느끼는 희열감을 막을 수 없거든요. 르세라핌은 처음엔 ‘피어리스’, ‘안티프레자일’(Antifragile)로 먼저 자신들의 역량을 보여준 다음, ‘언포기븐’(Unforgiven)으로 결국 르세라핌의 목표가 무엇인지, 르세라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르세라핌은 분명 새로운 길을 가는 걸그룹이다. 이전에도 본 적 없고, 이후에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걸그룹. 그래서 더 기대가 되고 더 응원하게 된다. 이제 노래 잘하는 연습생 몇 명, 춤 잘 추는 연습생 몇 명, 얼굴 예쁜 연습생 몇 명 모아서 비슷비슷한 걸그룹 데뷔시키는 시대는 끝났다. 확실한 세계관, 명확한 팀 색깔 그리고 다른 팀이 하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를 무기로 들고 나와야 K팝 시장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소개=이재국 작가는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하고 ‘컬투의 베란다쇼’, ‘SNL코리아 시즌2’, 라디오 ‘김창열의 올드스쿨’ 등 다수의 프로그램과 ‘핑크퐁의 겨울나라’, ‘뽀로로 콘서트’ 등 공연에 참여했다. 2016 SBS 연예대상 방송작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는‘아빠왔다’, ‘못그린 그림’이 있다. 이연우 양은 이재국 작가의 딸로 다양한 재능을 가졌으며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 평범한 청소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