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업계가 '재미(FUN)'에 푹 빠졌다. 귀여운 캐릭터와 신기한 제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될 만한 아이템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펀 마케팅'이다. 먹을 것과 신기한 먹거리가 넘쳐 나는 시대인 만큼 '맛 그 이상의 즐거움'을 제공해 매출을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팔도비빔면이 괄도네넴띤?
6일 식품 업계에 따르면 펀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는 팔도의 '괄도네넴띤' 판매다.
괄도네넴띤은 팔도가 '팔도비빔면' 출시 35주년을 맞아 한정판으로 내놓은 '비빔면'의 매운맛 버전이다.
팔도는 팔도비빔면이라는 한글을 다르게 보면 괄도네넴띤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신조어를 한정판 제품명으로 결정했다.
'ㅍ'이 '고'와 비슷하고 'ㅂ'이 '너'와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멍멍이'를 '댕댕이'로, '귀엽다'를 '커엽다'로 읽는, 소위 '야민정음(야구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훈민정음이라는 의미)'이다.
인터넷에서 장난처럼 쓰였던 용어가 실제 제품명으로 나오자 '재미있다'는 반응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서 쏟아졌다.
이 같은 반응은 매출로 이어졌다. 지난달 19일부터 오픈 마켓 11번가에서 선판매를 시작한 '괄도네넴띤 한정판 세트'는 5일간 판매 예정이었으나, 판매 시작 23시간 만에 5일 배정분 2만 세트가 완판됐다. 25일 2차 판매분 1만2000세트 역시 하루 만에 모두 동났다. 금액으로는 5억원어치다.
팔도는 다음 주 중 괄도네넴띤의 재판매에 나선다. 이번에는 11번가에서 단독 판매한 것을 넘어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500만 개 한정 물량을 계획한 팔도는 용기면 등으로 영역을 넓혀 괄도네넴띤 열풍을 이어 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팔도의 한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열광적인 반응에 기쁘면서도 얼떨떨하다"며 "한정 물량 판매 이후 괄도네넴띤을 정식 제품으로 출시할지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 트렌드는 '펀슈머'
업계는 팔도가 단순히 비빔면 35주년 기념 한정판을 출시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화제를 모으진 못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등 이미 매운 라면의 라인업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기업도 소비자와 소통하는 마케팅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SNS상의 아이디어가 신제품 출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팔도 괄도네넴띤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말했다.
특히 식품 업계의 장수 제품은 소비자들이 어렸을 적부터 친숙하게 접해 왔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크다.
작년 8월, '돼지바'를 콘으로 만들어 선보인 ‘돼지콘’은 출시 두 달여 만에 1000만 개 이상 판매되며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역시 SNS상에서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은 장난스러운 이미지가 제품으로 나온 경우다.
롯데푸드의 한 관계자는 "돼지바는 1983년 돼지해에 출시돼, 내년에 36년째를 맞이하는 오래된 브랜드”라며 “어릴 적에 먹었던 아이스크림을 커서 다른 형태로 즐긴다는 부분에서 소비자들이 재미를 느낀 것 같다”고 했다.
이에 '펀슈머'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펀슈머란 펀(Fun)과 컨슈머(Consumer)의 합성어로 단순히 소비에서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도 2019년 푸드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펀슈머'를 꼽았다. 문정훈 푸드비즈니스랩 소장(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은 "이제 소비자들은 맛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를 소비하고 공유한다"며 "펀슈머 마케팅으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브랜드를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너도나도 '펀 마케팅'
펀슈머를 잡기 위해 식품 업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빙그레는 작년 12월 '비비빅 동지팥죽'을 내놨다. 대표적인 팥 아이스크림인 비비빅을 찹쌀가루·찬밥과 함께 끓여서 팥죽으로 만들어 먹는 레시피가 유행하자 아이스크림인 비비빅 이름을 붙여 팥죽을 판매한 것이다. 실제 팥죽으로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비비빅 아이스크림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해태제과는 지난달 13일, 인기 제품 '연양갱'을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연양갱바'를 출시했다. 제품은 통팥이 아닌 팥 앙금을 넣어 고소하고 달콤한 연양갱의 맛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젤리 원료인 젤라틴을 넣어 연양갱과 비슷한 쫀득한 식감을 구현했다. 해태제과는 옅은 갈색 빛에 '원조(元祖)' 로고까지 넣어 연양갱과 닮은 복고풍 포장재를 사용했다. 해태제과의 한 관계자는 "연양갱을 아이스바로 색다르게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펀 마케팅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에 치즈를 넣어 먹는 것이 유행하자 이를 제품화한 '까르보불닭볶음면'을 한정판으로 내놨고, 출시 3개월 만에 3600만 개가 팔리자 아예 정식 제품으로 만들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들 제품은 대부분 긴 시간 동안 사랑받은 제품이다 보니 소비자들에게 신뢰가 높아 펀 마케팅 제품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경향이 있다”며 “기본 제품 틀이 있다 보니 연구개발(R&D)도 용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 제품의 인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숙제로 남아 있다. 온라인상 고객들의 유행이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의 한 관계자는 "펀 마케팅 제품들은 출시 초기에는 화제를 끌어 판매량이 높지만 시간이 흐르면 금방 시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며 "온라인상 화제가 오프라인 판매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숙제로 남아 있다. 오프라인에서 지속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최소 생산량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