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부터 새 이름으로 출발하는 키움 히어로즈는 22일 임은주 전 프로축구 FC 안양 단장을 새 단장으로 영입했다. 연합뉴스 제공
KBO 리그 38년 역사에 첫 여성 단장과 축구인 출신 단장이 동시에 탄생했다.
키움 히어로즈는 22일 임은주(53) 전 FC 안양 단장을 새 단장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기인'으로 소문난 허민 전 고양 원더스 구단주를 지난해 말 이사회 의장으로 영입한 데 이어 또 한 번 파격적인 임원 인사다. "경영 및 운영 관리 개선안의 일환이자 프런트 역량 강화를 위한 시도"라는 것이 구단 측 설명. 2년간 단장직을 수행한 고형욱 전임 단장은 스카우트 상무이사로 돌아간다.
임 신임 단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최초'로 도배돼 있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를 거쳐 은퇴 이후 심판으로 활동했고, 1997년 한국인 최초로 여자 축구 국제 심판으로 임명돼 1999년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에서 최초로 주심을 맡았다. 2013년에는 강원 FC 대표이사로 부임해 2년 6개월 동안 K리그 사상 첫 여성 CEO로 활약했다. 2017년 2월, 다시 FC 안양 단장으로 복귀했다가 지난해 말 개인 사정으로 자진 사퇴했다.
키움은 임 단장 영입과 관련해 "남자들의 무대인 프로축구에서 다년간 대표이사와 단장을 역임하면서 어려운 구단을 강직하게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인상적인 리더십을 보여 줬다"며 "임 신임 단장이 현재 구단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구단을 앞으로 더 발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최고 적임자로 판단해 사장 겸 단장으로 영입했다"고 설명했다. 임 단장은 대외적으로 KBO 실행위원회에 참석하는 단장 역할을 하되 구단 내에서는 프런트 수장으로서 '사장'이라는 직위를 갖게 된다. KBO 이사회에는 이전과 같이 박준상 대표이사가 참석한다.
임 단장은 키움 구단을 통해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회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어서 키움의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박 대표이사의 설득과 키움의 비전에 마음이 움직여 함께하기로 결심했다"며 "스포츠 경영 면에서 프로야구단은 선수단과 프런트의 전문적 분업화가 잘돼 있다. 새로운 스폰서와 새롭게 시작하는 키움이 함께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파격적인 인사다. 116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여성이 구단 단장에 오른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난해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가 집계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운영 부문 여성 재직자 수는 단 113명. 이 가운데 최고위직 여성은 메이저리그 사무국 운영 부문 수석 부사장인 킴 응(51)이다. 킴 응 역시 첫 여성 단장을 꿈꿨지만,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 부단장을 지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임 단장의 선임은 프로야구단에서 여성 앞에 놓인 큰 벽을 넘어섰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자립형 야구 기업인 키움에 매력을 느낄 만한 장점도 있다. 축구계에 따르면, 임 단장은 강원 FC 사장으로 부임한 뒤 방만한 팀 운영과 관련한 횡령·배임자 고발과 강력한 구조 조정으로 68억원의 빚더미에 올랐던 구단을 2년 6개월 만에 정상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 단장이 몸담았던 강원 FC와 안양 FC는 모두 구단 재정이 풍족하지 않은 시민 구단이다.
키움 히어로즈 임은주 신임 단장. 연합뉴스 제공 다만 임 단장이 연루됐던 과거 논란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임 단장은 강원 FC 재직 시절, 구단 노조와 첨예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조 측은 "임 전 대표가 감독의 고유 권한인 선발 출전 명단 작성부터 교체·작전 지시·전술을 비롯한 경기 운영 전반에 개입한 정황이 있다"며 "직원들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등 사생활 감시도 자주 했다"고 주장했다. 배임·횡령사건 소송 도중 구단 직원의 주민등록번호를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피소된 이력도 있다. 당시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은 임 단장에게 벌금 400만원과 환형유치금 10만원을 부과했다.
2017년 FC 안양 단장으로 부임한 뒤에는 선수단 숙소와 식당을 없애고, 정관을 위반하면서까지 전력분석코치를 영입하는 돌출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팬들과 잦은 마찰 역시 작지 않은 문제였다. FC 안양 서포터즈는 "임 전 단장이 선수단 내에 정보원을 두고 내부 정보를 몰래 파악하려 했다"는 주장을 내놓았고, 결국 임 전 단장이 허위사실 유포와 모욕죄로 서포터즈를 고소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임 단장이 줄곧 몸담았던 축구계와 야구계는 근본부터 다른 부분이 많다. 선수단 규모와 구단 운영 방식도 천지 차이다. 최근 부쩍 늘어난 야구선수 출신 단장들의 역량이 아직 채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축구인 출신 단장의 직무 지식과 업무 수행 능력에 더 의구심이 따를 수밖에 없다. 키움의 새 인사가 '혁신'이 될지, '무리수'가 될지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