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에 대한 동경과 갈망. 일본 열도가 오랜만에 등장한 '축구 천재'에게 뜨거운 기대를 보내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 '축구 천재' 쿠보 타케후사(16·FC 도쿄)다. 흡사 만화의 주인공처럼 일본 축구에 등장한 쿠보에 대한 일본의 기대치는 전에 없이 높다. 최근 들려온 쿠보에 대한 소식 하나가 이를 증명한다.
닛칸스포츠를 비롯해 복수의 일본 언론은 16일(한국시간) 쿠보가 오는 9월 J1리그(1부리그)에 데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쿠보는 현재 FC 도쿄 유스 소속으로, J1팀과 23세 이하(U-23) 선수들이 뛰는 J3 팀에 이중 등록돼 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FC 도쿄 관계자는 "쿠보가 J3에서 7경기 연속 선발로 나서 팀의 주축 선수로 정착한 것은 물론이고 여름방학 동안 1군에서 뛰기에 손색없는 플레이를 보여 줬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며 16세 소년의 1군 등용을 시사했다. 닛칸스포츠는 이 소식을 전하며 쿠보의 J1 데뷔전이 오는 9월 9일 세레소 오사카, 16일 베갈타 센다이로 이어지는 홈 2연전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고도 전했다.
만약 쿠보가 오는 9월 9일 세레소 오사카전에서 J1 데뷔전을 치르게 되면 역대 3번째 최연소 출전 기록을 세우게 된다. J1 최연소 출전 기록 1위는 모리모토 다카유키(가와사키 프론탈레·당시 도쿄 베르디)가 세운 15세10개월6일, 2위는 미야요시 타쿠미(산프레체 히로시마·당시 교토 상가)의 16세1개월14일이다. 골을 넣게 될 경우 모리모토(15세11개월 28일)에 이은 역대 2위가 된다.
물론 FC 도쿄가 쿠보의 1군 등용을 고려 중인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팀의 주축이었던 나카지마 쇼야(23)가 포르투갈 1부리그 포르티모넨세로 이적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계약에 걸림돌이 되는 조항도 없고, 나카지마 본인의 해외 진출 의지도 강해 FC 도쿄는 시즌 도중 팀의 공격을 이끌던 미드필더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에 나카지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어리지만 재능 있는 쿠보를 1군으로 불러올린다는 계획이다. 쿠보는 지난 5월 이미 J1 데뷔전을 치른 바 있으나 당시 경기는 리그가 아니라 컵대회였다.
하지만 무모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U-23 무대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도 성인과 싸우는 1부리그의 벽은 높다. 나이나 경험 그리고 신체 조건 면에서 쿠보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수두룩한 무대다. 쿠보는 지난 5월 한국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코리아 당시에도 체격적으로 월등히 앞선 유럽, 아프리카 선수들과 맞대결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에도 쿠보의 월반은 그의 이름값을 높이고 가치를 세계에 증명하기 위한 '마케팅적 선택'이라 보는 이들이 많았다. 각 팀이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을 생각하면 '축구 천재'로 불리는 쿠보라 해도 1부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16세의 나이에 1부리그 데뷔를 추진할 정도로 쿠보에 대한 기대가 높은 이유는 그가 걸어온 길 때문이다. 2세 때 처음 축구를 시작한 쿠보는 9세 때 고향인 일본 가와사키의 프론탈레 유스팀에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해 2011년 8월 스페인 명문 FC 바르셀로나의 유소년팀 테스트에 합격했다. 10~11세 팀인 알레빈C에서 2012~2013시즌 30경기 74골을 넣으며 성장한 쿠보는 2014년 인판틸A(13~14세)로 올라갈 때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5년 18세 미만 선수의 해외 이적을 금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아 경기 출전이 어려워지자 일본으로 돌아와 FC 도쿄 15세 이하 팀과 계약을 맺었다. 이후 18세 이하 팀으로 월반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과 뛰며 J3리그(3부)에서 J리그 최연소 출전, 득점 기록을 연달아 경신했다. 연령별 대표팀에서도 17세 이하(U-17) 대표팀, U-19 대표팀을 거쳐 U-20 월드컵 본선까지 나서는 등 '천재의 증명'인 월반을 계속했다.
하지만 일본의 '천재 만들기'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일본은 '천재 만들기'에 적극적이다. 문제는 '천재 만들기'의 명암 역시 극명해 대부분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집중 조명을 받고 외국 무대에 진출했다가 꽃을 피우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이다. 쿠보에 앞서 등장했던 일본의 수많은 '축구 천재'들이 언론을 통해 어떻게 극찬받았는지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쿠보보다 먼저 J리그 최연소 데뷔와 골을 기록한 모리모토는 10대 때 이탈리아 세리에 A에 진출했지만 중동을 거쳐 결국 일본으로 리턴했고, 현재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공격수로 뛰고 있지만 자신을 향한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였다곤 할 수 없다. 청소년 대표 시절 박주영(32·FC 서울)과 비견되던 '일본의 괴물' 히라야마 소타(32·베갈타 센다이)나 스페인 무대에 도전했던 장신 공격수 이부스키 히로시(26·알비렉스 니가타), 일본 최초로 브라질 리그에 진출했던 '천재 미드필더' 마에조노 마사키요(44·은퇴)도 마찬가지다.
물론 천재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 나라나 크기 마련이다. 한국 역시 '천재 만들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도 '바르셀로나 듀오' 이승우(19·바르셀로나 후베닐 A)와 백승호(20·바르셀로나 B)에게 수많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바르셀로나 출신 천재'에 대한 높은 기대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한국은 대중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승우와 백승호를 A대표팀에 불러들이지 않았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쿠보와 비슷한 나이인 '슛돌이' 이강인(16·발렌시아)만 해도 U-20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았다.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 천재를 만드는 데 골몰하기보다 천재가 태어나고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천재에 환호하는 것도, 천재라 떠받들던 유망주가 꽃을 피우지 못하면 가차없이 내치는 것도 결국 언론과 팬이다. '천재 만들기'가 가지는 극명한 명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