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드라마판은 춘추전국시대였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까지 방송된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찬란하게 막을 내린 후, 지상파 3사가 골고루 성공작과 실패작을 나눠 가졌다. 3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SBS '피고인'과 35%를 돌파한 KBS 2TV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등이 등장했으나 '도깨비'만큼의 신드롬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지상파를 제외한 두 방송사의 명암은 갈렸다. JTBC는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급성장했다. 반면 tvN은 '도깨비' 이후 줄줄이 시청률 저조에 시달리며 침체의 늪에 빠졌다. 절대 강자가 없어 더 치열하게 경쟁했던 올 상반기 5대 방송사(KBS·SBS·MBC·JTBC·tvN)의 드라마를 정리해봤다. ◇ KBS, 주말극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월화극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화랑: 더 비기닝'이 박서준·박형식 등 청춘스타들을 대거 캐스팅하며 화제를 모았지만 시청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후속작 '완벽한 아내' 또한 고소영의 10년 만의 컴백작으로 주목받았으나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조용히 막을 내렸다. 현재 방송 중인 '쌈 마이웨이'만이 경쟁작 중 홀로 두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수목극은 '김과장' 정도만 성공작으로 꼽혔다. 속 시원한 '사이다 전개'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추리의 여왕'은 초반 1위를 달렸으나 이내 경쟁에서 뒤쳐졌고, 지난 5월 31일 방송을 시작한 '7일의 왕비'는 5%대의 시청률로 3위에 머무르고 있다.
대신 흥행을 보장받은 주말극은 역시나 성공적이다. 2월 종영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시청률이 36.2%(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까지 치솟았다. 막장 전개로 일각의 혹평을 받긴 했으나 시청률 면에서는 KBS 주말극의 체면을 지켰다. 현재 전파를 타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도 시청률 고공행진 중이다. 지금까지의 자체최고시청률은 31.7%로, 막장 요소 없이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담으며 의미있는 가족극으로 호평받고 있다. ◇ SBS, 장르물로 웃고 이영애로 울고
OCN이 케이블 채널의 장르물 명가라면, SBS는 지상파의 장르물 명가다. 특히 법정 스릴러에 강세를 보였다. 3월 종영한 '피고인'이 마지막회 28.3%의 시청률을 나타냈다. 후속작인 '귓속말'도 20.3%로 17회 방송분을 마무리했다.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대하기 힘든 요즘 드라마판의 놀라운 기록이었다. 법정 스릴러가 아닌 의학 드라마로도 사랑받았다. 지난해 말부터 방송돼 1월 종영한 '낭만닥터 김사부'가 27.6%의 자체최고시청률로 기분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나 SBS 상반기 최고 기대작은 예상 밖의 참패를 맛봤다. 올 봄 전파를 탄 '사임당: 빛의 일기'는 이영애가 13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작품. 한류스타 송승헌도 주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고, 100% 사전제작됐다. 방송 첫 주부터 16.3%의 높은 성적을 거두며 기대가 더해졌다. 그러나 시대에 뒤떨어진 설정과 낮은 퀄리티의 이야기 전개, 이영애의 어설픈 연기가 맞물려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참패했다. ◇ MBC, 팩션 사극만 남았다
MBC는 팩션 사극을 성공시켰다. 5월 막을 내린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과 현재 전파를 타고 있는 수목극 '군주: 가면의 주인'이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타 경쟁작과 비교해 출연진의 면면이 눈에 띄게 화려했던 것은 아니지만, 탄탄한 이야기이 힘으로 사랑받았다. 신선한 소재로 과감한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미씽나인'·'자체발광 오피스' 등이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시청률 면에선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다만, 시대에 뒤떨어지는 막장극 몇 편이 상반기 MBC 드라마의 오점이 됐다. 올 초 종영한 '불야성'을 시작으로 '불어라 미풍아'와 방송 중인 주말극 '당신은 너무합니다'가 식상한 설정, 촘촘하지 못한 전개로 막장극의 불명예를 안았다. ◇ JTBC, 대중성·작품성 모두 잡은 급성장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을 편성하며 타 방송사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고등학교가 배경인 이 드라마에서 대다수의 주요 배역에 신인 배우를 캐스팅, 배우 이름값이 아닌 작품성으로만 승부를 봤다. 이후 편성된 '힘쎈 여자 도봉순'은 JTBC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써다. 시청률이 9.668%(닐슨 코리아 전국 유료 플랫폼 기준)까지 상승하는 대 기록을 세웠다. 이어 '맨투맨'과 '품위있는 그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과감한 시도로 급 성장을 이뤄냈다.
◇ tvN, '도깨비' 사라진 침체의 늪
'믿고 보는 tvN드라마'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진 반 년이다. '도깨비'가 막을 내린 후 줄줄이 2% 전후로 시청률이 저조했다. 이제훈·신민아·유아인·임수정 등의 톱 배우들이,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 같은 톱 작가가 나서도 소용없었다. 전파를 타고 있는 '비밀의 숲'이 4%대로 상승하며 재기를 노리는 중이다. 대신 CJ E&M 산하의 또 다른 채널인 OCN이 의외의 성과를 거뒀다. '보이스'·'터널' 등 장르물로만 승부를 보며 장르물 명가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