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대상, 심사위원상, 칸의 외면을 받던 한국 영화를 4년 만에 경쟁부문에 진출시킨 저력, 그리고 심사위원 위촉이라는 방점까지 칸 영화제와 함께 한 '깐느박' 박찬욱 감독의 13년은 그 자체 만으로 '거장의 발자취' '충무로의 역사'라 표현하기 충분하다.
박찬욱 감독은 17일(현지시간) 개막한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을 비롯해 배우 윌 스미스, 제시카 차스테인, 판빙빙, 영화감독 아네스 자우이, 마렌 아데, 파올로 소렌티노, 작곡가 가브리엘 야드 등 심사위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박찬욱 감독은 17일부터 28일까지 치러지는 칸 영화제 전 기간동안 현지에 머무르며 심사위원으로서 참석해야 하는 공식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것은 물론,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들을 평가한다.
한국인으로서는 네 번째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에 이름을 올리게 된 박찬욱 감독의 행보는 사실상 시간 문제였다. 메가폰을 잡은 작품마다 칸의 부름을 받았고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던 박찬욱 감독인 만큼, 칸의 애정이 심사위원 발탁으로 이어질 것은 자명했다.
이에 칸 영화제에 첫 발을 내딛었던 13년 전 그 순간부터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게 될 현재까지 칸이 사랑한 '깐느박' 박찬욱 감독의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 2004년 제57회 심사위원대상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을 명실공히 '거장' 반열에 오르게 만든 작품이자, 칸 영화제와 박찬욱 감독의 13년 인연의 시작점을 알린 작품이다. 황금종려상·심사위원대상·심사위원상으로 이어지는 칸 영화제 본상 중 박찬욱 감독은 심사위원 대상 수상의 주인공이 됐고, '올드보이'는 여전히 한국 영화의 걸작이라 평가받고 있다. 이후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물론,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100선'에 포함되기도 했다.
13년 전 박찬욱 감독의 앳된 외모와 주연배우 최민식·유지태·강혜정의 모습도 눈에 띈다. 지금도 영향력 있는 배우로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만큼 박찬욱 감독의 '눈'을 새삼 감탄하게 만든다. 수상직후 박찬욱 감독은 "이제 내 인생에는 내리막길 밖에 없는 셈이다. 그만큼 정점에 서 있다는 말이다"고 밝혔지만, 박찬욱 감독 인생에 내리막길은 없었다. 스타감독이자 충무로의 거장으로, 지금도 정점에 서 있는 박찬욱 감독이다.
▶ 2009년 제62회 심사위원상 '박쥐' 5년 만에 다시 찾은 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은 또 한 번 트로피를 거머쥐는 영예를 얻었다. '올드보이' 그 이상의 문제작으로 꼽혔던 '박쥐'는 칸의 인정을 받으며 심사위원상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존경받던 신부 상현(송강호)이 흡혈귀가 되고 친구의 아내 태주(김옥빈)와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는 줄거리의 치정극이다.
박찬욱 감독은 국내에서 진행된 수상 기자회견에서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창작의 즐거움 뿐이다. 영화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촬영하고 개봉하는 모든 과정에 나에게는 기쁨이다. 그 마지막 즐거운 순간을 칸 영화제가 이 상으로 만들어준 것 같다"고 전했다. 당시 박찬욱 감독과 함께 칸을 찾았던 김옥빈·신하균은 올해 '악녀(정병길 감독)'가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며 8년 만에 칸의 부름을 받았다. 역시 박찬욱 감독의 안목이다.
▶ 2016년 제69회 칸 문 두드린 韓퀴어영화 '아가씨' 박찬욱 감독이 컴백하기 전까지, 무려 4년간 한국영화는 단 한 편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 영화의 위기설이 꾸준히 재기되고 있었던 찰나 등장한 박찬욱 감독과 '아가씨'는 2017년 역대급 칸 영화제 초청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역시 깐느박' '역시 박찬욱'이라는 찬사가 쏟아졌지만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것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많은 영화인들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해외에서 달라진 위상은 칸 영화제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타 영화들과 달리 '아가씨' 기자회견에는 내·외신 기자들이 가득 자리했고, 끝나자마자 박찬욱 감독에게 달려가 사인을 받는 이들도 상당했다. 물론 영화제 기간동안 외신 평가 등 작품 자체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면서 최종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아가씨'는 비단 칸 영화제 초청에만 만족할 작품이 아니었다. 전세계 6개 대륙 175개국에 판매됐고, 박찬욱 감독은 개봉 1년이 지난 최근까지 해외투어 아닌 투어를 돌며 각종 영화제에서 무수히 많은 트로피를 수집했다. 김민희의 인생연기, 김태리의 발견 등을 남기기도 한 작품이다.
▶ 2017년 제70회 영예의 심사위원 그리고 1년 후 박찬욱 감독은 심사위원으로 다시 칸 초청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은 1994년 고(故) 신상옥 감독, 2009년 이창동 감독, 2014년 배우 전도연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네 번째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에 발탁되는 영예를 얻었다.
17일 진행된 70회 칸 영화제 개막식에서 박찬욱 감독은 포토콜·기자회견·레드카펫 등 10명의 심사위원 중 한 사람으로 거장 발자취의 방점을 찍었다. 이제는 익숙할 법한 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감독의 표정에는 설레임과 긴장감이 함께 녹아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깊어진 주름만큼 풍기는 분위기에서도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옥자(봉준호 감독)' '그 후(홍상수 감독)'를 포함해 경쟁부문에 진출한 18편의 작품을 평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