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8일 잠실 kt전에서 프로 통산 2000번째 안타를 때려내면서 역대 7번째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35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정성훈보다 먼저 2000안타를 때려낸 타자는 6명뿐이다.
최초의 선수는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삼성)이었다. 2007년 6월 9일 잠실 두산전에서 전인미답의 2000안타 고지를 밟으면서 마침내 한국 프로야구에 2000안타 시대를 열어 젖혔다. 프로 통산 1803경기 만에 38세 14일의 나이로 달성한 기록이었다. 양준혁은 역대 최초였을 뿐만 아니라 생산성 측면에서도 최고의 2000안타 타자였다. 역대 2000안타 타자 가운데 가장 많은 타점(1389점)과 득점(1299점)을 남겼다. 2000안타 선수 중 OPS(출루율+장타율) 0.950은 최고다.
그 다음은 히어로즈 전준호의 차례였다. 2008년 9월 11일 사직 롯데전에서 39세 6개월 27일의 나이로 기록을 달성해 역대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그는 최초로 2000안타와 2000경기 고지를 함께 밟은 선수이기도 했다. 양준혁이 배트로 점수로 만들었다면, 전준에겐 스피드가 있었다. 그는 KBO 통산 최다 도루 기록(560개)도 보유하고 있다. 두 선수는 2009년 통산 210승 투수 송진우와 함께 2000안타·200승·300세이브를 가입 요건으로 하는 '성구회'를 출범시켰다.
2012년 9월 18일 한화 소속 장성호가 양준혁과 전준호의 뒤를 따랐다. 이날 포항 삼성전에서 34세 11개월 나이로 최연소 2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전성기 시절 '스나이퍼'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양준혁과 함께 역대 최장 기간인 9년 연속 3할 타율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안타와 타율의 상징이었다. 충암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에 뛰어든 덕분에 다른 대졸 타자들보다 4~5년 빨리 2000안타 이정표를 세웠다. 유일하게 1500안타를 20대(29세 7개월)에 달성한 선수로 남아 있다.
LG 이병규(9번)는 2014년 5월 6일 잠실 한화전에서 1653경기만에 2000안타를 완성했다. 역대 최소 경기 기록이다. 이병규는 2007년부터 3년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서 뛰면서 253안타를 쳤다. 일본에서 뛴 기간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빨리 2000안타 달성이 가능했다.
두산 홍성흔의 역대 5번째 2000안타는 오른손 타자 최초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는 2015년 4월 14일 잠실 NC전에서 프로 통산 2000번째 안타를 때려냈다. 앞서 달성한 양준혁, 전준호, 장성호, 이병규는 모두 왼손 타자였다. 좌타자는 우타자보다 두 걸음 정도 1루에서 가까운 데다, 스윙 후 몸의 회전도 1루 쪽으로 향해 있다. 그만큼 안타 생산에 유리하다. 우타자인 홍성흔은 발도 그리 빠르지 않아 내야 안타가 다른 타자들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그런데도 오른손 타자 최초 기록을 작성했다.
LG 박용택은 지난 8월 11일 잠실 NC전에서 37세 3개월 21일 나이로 1760경기만에 2000안타를 달성했다. 팀 선배인 이병규에 이어 역대 2번째 최소경기였다. 이병규와 마찬가지로 LG 한 팀에서만 달성한 기록이라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그 덕분에 LG는 역대 최초로 2000안타 타자를 2명 이상 배출한 팀으로 기록됐다.
17일 후인 28일에는 박용택의 팀 후배 정성훈이 뒤를 이었다. 홍성흔에 이어 우타자 2호이자 장성호에 이어 최연소 2위(36세 2개월)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동시에 역대 최초로 같은 팀 타자 2명이 동일 시즌에 2000안타를 달성한 최초의 사례를 남기게 됐다. 무엇보다 정성훈의 2000안타는 '무관의 제왕'이 쌓아 올린 기록이라 값지다. 1999년 데뷔한 정성훈은 2000안타 타자 가운에 유일하게 단 한번도 개인 타이틀을 수상한 적이 없다. 2012년 타율 5위(0.310)가 역대 가장 높은 순위였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활약해왔다는 의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올해는 2000안타 풍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LG의 박용택과 정성훈에 이어 다음 달에는 삼성이 2000안타 듀오 배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 이승엽과 박한이가 프로 통산 2000안타까지 각각 8개와 9개를 남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