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미제라블’이 인기다. 470만 관객을 넘어서며 뮤지컬 영화 국내 흥행 최고 기록을 세웠다. 영화 속 수인번호 24601, 장발장과 겹쳐 읽혀지는 축구 선수가 있다. 이천수다.
이천수는 한국 축구의 죄인아닌 죄인이다.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친 생계형 좀도둑 장발장보다 훨씬 더 자주 말썽을 일으켰다.
팬에게 주먹감자를 날렸고, 수시로 K리그를 우습게 여기며 해외 진출을 시켜달라고 떼를 썼다. 네덜란드에서 실패하고 수원 삼성에 입단했지만 구단·동료와 갈등을 빚었다. 훈련까지 태만해 2008년 결국 임의탈퇴 처분을 받았다. 임의탈퇴 처지였던 이천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게 전남 박항서 감독이었다. 박 감독의 읍소로 수원은 임의탈퇴를 풀고 이천수를 전남으로 넘겼다. 그러나 이천수는 전남에 입단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해외에 진출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갈등이 폭발하며 이천수는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코칭스태프와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2009년 6월 이천수는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사우디아라비아로 나갔다. 전남은 이천수를 임의탈퇴시켰지만 해외 진출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갈곳없는 자신에게 잠자리를 제공한 미리엘 주교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난 장발장처럼, 이천수는 수원에서 임의탈퇴 당해 갈 곳없던 자신을 받아준 전남을 배신한 셈이다.
사필귀정인가. 이렇게 K리그 물을 잔뜩 흐려놓고 외국으로 나간 이천수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실패하고 일본 J리그를 기웃거렸지만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천수는 K리그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전남에서 걸어놓은 임의탈퇴가 풀려야 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경찰관에 잡혀 미리엘 주교 앞에서 무릎꿇린 장발장처럼, 이천수도 고집을 부려 나간 해외 무대에서 또다시 쓰라린 좌절을 맛보고 국내로 돌아와 전남의 선처를 바라고 있다. 구단을 찾아가 고개도 수차례 숙였다.
장발장은 죄지은 게 없다며 은촛대까지 건네준 미리엘 주교처럼 너그럽지는 않지만, 전남도 이천수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액 맞으면 다른 구단에 이적시킨다는 방침이며 실제로 몇몇 구단은 이천수 영입과 관련한 제안을 받았다.
◇이천수는 정말 뉘우쳤나
다시 소설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장발장은 주교의 용서를 받고 곧바로 참회한 게 아니다. 은촛대까지 받고 풀려난 장발장은 이해하기 힘든 울분과 분노에 휩싸인다. 혼란에 빠진 채 길을 걷고 있던 중 동전 하나가 장발장 발 밑으로 굴러온다. 장발장은 구두로 동전을 꾹 밟았다. 그리고 동전 주인인 구두닦이 소년을 윽박질러 내쫓는다. 그때서야 장발장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미리엘 주교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참회한다.
지난주 이천수는 인천 유나이티드를 찾았다. 조동암 인천 사장은 "그냥 인사하러 온 것이다"고 의미를 축소했지만, 인천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연봉 협상도 어느 정도 진행됐다고 한다. 양측이 원하는 연봉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기자는 지난여름부터 이천수를 꾸준히 취재했다. 고대 녹지 캠퍼스에서 이천수는 고대 아마추어 축구부들을 가르치는 재능 기부를 했다. 코치들도 일일이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했다. K리그 복귀를 갈망하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천수가 정말 명예롭게 K리그로 돌아오려면 연봉 문제 등으로 말이 나서는 안된다. 연봉 몇푼을 두고 구단과 실랑이를 벌이는 건 곤란하다. 구두닦이의 동전을 빼앗고 희희낙락했다면 장발장은 마들렌 시장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천수에게 중요한 건 명예지, 돈이 아니다. 그는 아직 30대 초반이고,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 할 일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