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가 넘치다 못해 '신들린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던 스타. 16살의 어린 나이에 고난도 연기를 펼치며 '천재'라고 불렸던 연기자. 모든게 이정현(32)을 설명하는 수식어다.
90년대, 이정현은 남다른 재능으로 데뷔와 동시에 화제에 올랐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연기력으로 호평을 끌어냈으며, '와' '바꿔' 등의 곡으로 테크노 열풍을 선도했다. 2000년대, 국내에서 한바탕 인기몰이를 한 이정현은 중국으로 건너가 현지팬들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대작드라마에 출연하고 '4대천왕'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변함없는 끼를 마음껏 발산했다. 지난 7월에도 북경에서 열린 화정상 시상식에서 한국 연예인 최초로 아시아 최고 인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왕성한 활동에 비해 국내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줬던 것도 사실. 베를린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파란만장'(10)에 무당 역을 맡아 잠깐 모습을 보인 것도 꽤나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후에도 소식이 뜸하더니 22일 개봉한 저예산영화 '범죄소년'(강이관 감독)에서 덜컥 미혼모 캐릭터를 맡아 놀라움을 줬다. 이정현이 12년만에 선보인 장편영화 '범죄소년'은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고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되더니 타이페이와 필리핀, 이탈리아 등 해외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최민식과 동반출연하는 영화 '명량-회오리바다'의 촬영준비 및 가요계 컴백 앨범 작업에도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본격적인 국내활동에 나선 이정현이 일간스포츠와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이날 이정현은 즐겨마신다고 소문이 난 폭탄주 대신 스파클링 와인을 택했다. 기자는 와인 대신 소주를 마셨다. 정신없는 스케줄 때문에 속시원하게 마시진 못했지만 적당량의 알콜과 '차진 대화'에 취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범죄소년' 12년만의 장편영화, 노개런티 출연에 여전한 연기열정
-노개런티에 역할도 미혼모예요. 출연전 고민이 많았겠어요.
"맞아요. 조건이 안 좋았죠. 오랫동안 국내 활동을 쉬었던만큼 좀 큰 상업영화에서 멋진 캐릭터를 맡아 복귀하고 싶었는데 하필 미혼모 역할이라니…. 게다가 촬영일정을 보니 밤샘을 밥 먹듯이 할게 뻔했어요. 메이크업도 하지 말라더군요. 그래서 안 하겠다고 몇 차례나 거절을 했죠."
-그러면서도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감독님을 만난 자리에서 미혼모에 대한 다큐멘터리 몇 편을 건네받았어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니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혼모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됐어요. 사회에서 버려진채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상을 지켜보다가 펑펑 울었어요. 이런 현실을 알리고 또 다른 미혼모가 나오는 걸 방지할 수 있다면 보람된 작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회사에서 반대한 건 당연한 일이고요. 지인들도 '왜 사서 고생하냐'고 말렸어요. 설득하느라 애 먹었죠."
-촬영현장은 어땠나요.
"예상보다 더 힘들더군요. 매일 밤을 새다시피하면서 40여회차를 찍었어요. 그런데도 힘든 티는 낼 수가 없었어요. 현장에 가보니 제가 나이가 많은 편이더라고요. 주연배우라고 제 표정 하나에 집중하는 듯해 오히려 더 밝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했어요. 나이값 하느라 회식비도 쏘고 분위기를 이끌어보려 했죠. 출연료도 안 받는 촬영장에서 자꾸만 카드값이 나가니 회사에서 '카드 내놓으라'고 하더군요.(웃음)"
-'범죄소년'이 극장에서 개봉할 거라는 기대를 했었나요.
"오히려 완성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있었죠. 이렇게 세상에 공개되고 각 영화제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게 될지 정말 몰랐어요.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이어 도쿄국제영화제 등에 차례로 나가게 됐잖아요. 처음에 '출국 준비하자'는 전화를 받고는 깜짝 놀랐어요.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 등 방문해야 할 영화제가 아직 많이 남았어요."
-미용실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는 장면을 보니 데뷔작 '꽃잎'에서의 신들린듯한 연기가 생각나더군요.
"촬영전에 감독님이 '이 장면은 여건이 안 돼 딱 한 번 밖에 못 찍는다'고 하더군요. 부담이 돼 바짝 집중했어요. 순간 캐릭터에 몰입하면서 바닥에 쓰러져 펑펑 울었죠. 한 테이크를 꽤 오랫동안 찍었는데 제가 너무 심하게 울면서 넘어가니까 현장에서 촬영을 도와주고 있던 미용실 직원들이 '이정현씨 왜 이래요'라며 놀라더군요."
-몰입력이 대단하네요.
"'꽃잎'때도 영화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냥 극중 캐릭터 그대로 미친 애처럼 살았어요. 처음엔 연기 못한다고 장선우 감독님이 제게 대본을 던지며 화를 내셨어요. 그 뒤로 펑펑 울면서 캐릭터에 빠져살아보자고 결심했죠. 분장을 한 상태로 혼자 시장바닥을 헤매고 다니면 제작진이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찍은 장면도 많았어요. 카메라가 돌지 않을때도 그 상태로 지냈어요. 촬영 막바지에 문성근 선배님과 장선우 감독님이 '얘 진짜 실성한 거 아니냐'라면서 걱정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어요. 다행히 저는 촬영이 끝나면 바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타입이라 괜찮았죠."
-최민식·류승룡씨와 출연하는 새 영화 '명량-회오리 바다'는 어디까지 진행됐나요.
"대본리딩을 하면서 촬영준비중이에요. 마침 출연진들도 모두 안면이 있는 분들이에요. '꽃잎'때 함께 출연했던 설경구 선배님의 소개로 최민식 선배님을 알게 됐죠. 류승룡 선배님 역시 이미 사석에서 만나 얼굴을 익혔던 사이예요. 진구와도 많이 친해져 준비과정이 굉장히 즐겁고 그만큼 기대도 커요."
▶싸이표 해물탕 못 잊어, 요즘 아이돌 너무 똑같아 문제
-국내활동을 오래 쉬었는데 그것 때문에 불안하진 않았나요.
"만약 해외활동도 없었다면 불안했겠죠. 그런데 한달에 한 두번 이상은 중국에서 광고 촬영을 한다거나 대형 공연에 참여했었거든요. 중국에서 공연이 열린다고 하면 기본 관객이 4만명 정도예요. 어마어마하죠."
-중국활동한지 오래돼 이젠 현지에 가도 편할 것 같아요.
"마음 편하고 음식도 너무 좋아요. 일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드라마를 만들 때도 1년전에 사전제작을 하고 공연 역시 미리 가서 리허설을 하고 쉬었다가 본 공연에 들어가거든요. 급하게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보다 좀 여유로워요."
-중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요.
"중급 정도? 딱 그 정도까지 공부하고 있었는데 요즘 국내 활동을 하느라 한국말만 쓰다보니 또 실력이 떨어진 것 같아요."
-국내 가요계 복귀를 준비중이라고 하던데요.
"곡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아직 타이틀곡이 안 나와 바뀔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댄스음악으로 복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무도 색다른 스타일로 구성해보려고 해요."
-'강심장'에 출연한 모습을 보니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친해보이더군요.
"신동은 연예계 데뷔 전부터 제 팬이었대요. 마침 라디오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신동이 제 앞에서 고개를 못 드는거예요. 제 공연을 찾아다니면서 봤더라고요. 희철이도 제 CD를 모두 다 갖고 있다더군요. 평상시에도 자주 연락하면서 지내는 친한 동생들이에요."
-싸이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면서요.
"조PD 오빠와 1집 작업을 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싸이 오빠를 처음 만났어요. 그 때 싸이 오빠는 조PD 오빠를 따라다니며 음악을 배우고 있던 중이었죠. 보스턴에서 두 사람을 만났는데 싸이오빠가 친절하게 자기 숙소에 데려가 해물탕을 끓여줬죠. 그게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싸이 오빠가 방송을 통해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뒤 제 회식자리에서 춤과 노래를 보여준후 데뷔 기회를 잡게 됐죠. 최근에도 같이 식사를 했어요. 이렇게 크게 성공하다니 정말 자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