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진(32·삼성화재)이 양복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외쳤다. 신치용(57) 삼성화재 감독과 임도헌(40) 코치는 고개를 숙인 채 고희진의 호통을 받아들였다. 역할이 바뀌었다. 고희진이 고함을 치고, 감독·코치는 코트 위로 몸을 던졌다. 올스타전에서만 연출할 수 있는 장면. 팬들은 낯선 모습에서 추억을 되살렸다.
감독과 코치가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나섰다. 8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올스타전을 앞두고 이벤트 경기가 열렸다. 감독과 코치가 경기를 펼쳤다. 비어있는 감독직은 고희진과 최태웅(36·현대캐피탈)이 맡았고, 황연주(26·현대건설)와 김사니(31·흥국생명)가 코치로 뛰었다. 여오현(34·삼성화재)는 주심, 한유미(30)가 부심 역할을 했다. 가빈·안젤코·몬타뇨·미아 등 네 명의 외국인 선수가 선심으로 활약했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경기 시작과 함께 V스타팀 권순찬(드림식스 코치)이 블로킹 세 개를 연속해서 성공했다. 고희진 K스타팀 감독은 작전 타임을 걸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신춘삼 KEPCO 감독과 이경석 LIG 손해보험 감독은 물론 신치용 감독도 고개를 숙여 '고 감독'의 질책을 받아들였다. 고희진은 "좀 뛰세요. 움직이셔야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태웅 V스타팀 감독도 모질게 '나이든 선수'들을 다그쳤다. 팬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현역 시절 '월드리베로'로 불리던 이호 현대건설 코치는 공이 떨어진 뒤에야 몸을 던졌다. 세터 신영철·이경석의 토스는 느리고, 낮았다. 공격수들의 움직임과 같은 속도였다. 발은 느리고, 점프는 낮았다. 임도헌·손재홍(IBK기업은행) 강성형(현대캐피탈) 등 젊은 코치들의 스파이크가 그나마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남자 배구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전설'들이 등 뒤에 자신의 이름을 달고, 배구공을 만지는 것을 보며 올드팬들은 향수에 젖었다. '프로배구 세대'들은 몸을 낮춘 감독·코치들의 모습에 마음껏 웃었다.
심판진은 '의도된 오심'을 쏟아냈다. V스타팀의 하종화(현대캐피탈 감독)는 "비디오 판독을 하자"고 항의하다 '여오현 주심'에게 경고를 받기도 했다. 여오현 주심은 본래 소속팀 삼성화재의 감독·코치가 뛰는 K스타팀을 위한 판정을 했고, 경기는 K스타팀의 승리로 끝났다. V스타팀 '선수'들에게서 아쉬움 섞인 탄성이 나왔다. 김사니 코치는 강한 항의도 했다. 마지막에는 늘 미소가 번졌다. 어필마저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