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일본 미야코지마 시민구장에서는 뜻깊은 투타대결이 이뤄졌다. 오릭스의 프리배팅 훈련에서 박찬호(38)가 이승엽(38)을 상대로 공을 던진 것이다. 이승엽은 15개 가운데 홈런성 타구 2개를 날렸고, 그밖의 타구도 꽤 날카로웠다.
굳이 둘의 승패를 가를 필요는 없다. 둘은 같은 팀 동료로 뛰는 데다, 박찬호는 이승엽에게 구종을 미리 알려줬다.
그보다는 박찬호의 주무기인 체인지업, 이승엽의 새 타법인 '언밸런스 스윙'에 대한 시험무대의 의미가 더 컸다.
이제 시작이지만 박찬호와 이승엽 모두 흡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고 봐도 좋겠다. 이승엽은 "곧 청백전이 시작되는데 이만하면 컨디션을 많이 끌어올린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2월 25일 청백전에 처음 등판한 뒤 3월 5~6일 나고야 시범경기에서 공식적으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이승엽의 타구는 꽤 날카로웠다. 축족인 왼발을 뒤로 낮게 위치한 상황에서 정확하게 타격했다. 하체가 중심이동을 하는 동안 상체는 뒤에 잡아두는, 이른바 언밸런스 스윙이 잘 이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번갈아 타석에 들어선 T-오카다가 박찬호와 기사누키의 변화구 공략에 애를 먹었다면, 이승엽은 두 투수의 공을 모두 노련하게 받아쳤다. 프리배팅에서는 T-오카다의 타구가 분명 더 강했다. 그러나 전력에 가까운 직구를 뿌리고 변화구를 섞은 실전피칭에서는 이승엽 타격이 더 안정적이었다.
박찬호의 성과도 있었다. 총 투구수 35개(이승엽 15개, T-오카다 20개) 가운데 떨어지는 서클체인지업을 10개 가까이 던졌는데, 누구도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 포크볼이 아니더라도 일본타자들을 공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승엽은 "찬호 형 체인지업은 일본에서 보기 어려운 구종이다. 변화 각도에 따라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각각 두 가지인 것 같다"고 전했다. 농담을 주고 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결을 펼쳤지만, 그 안에서 둘은 치열하게 장군멍군을 부른 셈이다.
미야코지마=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