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육상의 지상 과제는 '메달'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마라톤을 제외하고는 육상에서 결선에 오른 것도 손으로 꼽을 정도다. 세계적인 수준과 벽이 이처럼 높은 육상에서 메달 가까이 갔다가 아깝게 6위에 그친 육상스타가 있다. 바로 이진택(37)이다.
92년 첫 한국신기록을 시작으로 무려 6차례나 기록을 갈아치웠던 그의 기록(2m34·97년 기록)은 지금도 엄연한 한국기록이다. 요즘 높이뛰기의 세계적인 추세가 하향화됐고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당분간 그의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남자높이뛰기에서 2위를 한 저메인 메이슨의 기록이 234㎝였으니 조금만 늦게 태어났어도 한국육상 올림픽 첫메달의 주인공이 그일 수도 있었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한국은 1명의 선수라도 더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 유망주 발굴에 목이 빠지고 있다. 지금 이진택은 높이뛰기에서 이같은 유망주를 찾는 주니어대표 감독이 돼있다. 올해초에는 대한육상연맹의 이사진에 포함돼 육상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갖출 공부도 시작했다.
키가 5㎝만 더 컸다면 그의 실력이 절정에 달했던 90년대 중후반은 높이뛰기의 전성기였다. 지금도 깨지지 않는 세계기록(2m45) 보유자인 하비에르 소토마요르(쿠바·194㎝)를 비롯해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의 평균 신장이 195㎝였으나 이진택의 키는 '고작' 190㎝였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결선에 오른 12명의 선수 중 그는 항상 최단신이거나 뒤에서 둘째였다.
선천적으로 탄력이 좋은 중남미권 선수가 아닌 그가 상대적인 단신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신체적인 한계를 기술력으로 극복한 셈이었다.
시련 안겨준 시드니올림픽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그는 한국육상에 첫 메달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육상연맹은 그에게 독일 바이엘클럽에서 4개월간 기술연수를 시키며 집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예선탈락이었다.
돌이켜 보면 약이 독이 됐다. 당시 체력적으로는 하향 사이클을 그리고 있던 그가 독일 연수 중 경기에 계속 출전한 것이 결과적으로 마이너스가 됐다.
기술적으로는 눈이 높아졌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기록이 좋을 리 없었다. 결국 한국에 돌아와 2m20 초반대 기록을 냈고 올림픽에서도 예선탈락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가장 많은 노력을 했던 대회에서 성적이 참담했으니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좌절한 그에게 당시 높이뛰기 여자 대표선수였던 김미옥 선수가 큰 위안이 됐고 결국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현재 체육교사를 하는 아내와 민우(5)·민훈(3) 두 형제를 키우며 알콩달콩 살고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U-대회 우승 올림픽 3회, 세계선수권 4회의 출전경력을 가진 그이지만 그는 유난히 유니버시아드대회가 기억에 남는다. 무려 5회 연속 출전으로, 유니버시아드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상무 복무 시절에도 U대회에 나가면서 작성한 기록이다.
셰필드(91년)에서 팔마(99년)U대회까지 그는 무려 5회 연속 U대회에 나갔고 1997년 시칠리U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덕분에 그는 대구에서 열린 2003년 U대회에서는 성화봉송 최종 주자로 필드에 나서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나보다 더 높이 뛰는 후배 기르겠다그는 은퇴를 두 번 했다. 2003년 부산국제육상대회에서 공식적인 은퇴경기를 가졌으나 2년만인 2005년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맸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 출전하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사실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보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성적은 역시 신통치 않았고 갈등하고 있던 그에게 2006년 7월 주니어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왔다.
현재 그는 주니어대표 154명 중 도약종목(높이뛰기·멀리뛰기·세단뛰기·장대높이뛰기) 분야 35명을 지도하고 있다. 중3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유망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한국육상은 세계의 벽을 뛰어넘기가 어려운 트랙종목 보다는 도약·투척 종목 등 기술종목에 더 집중해 경쟁력을 키워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높이뛰기에서 세계 최고에 근접했던 이진택의 노하우가 절실한 이유다.
이진택은 "나도 처음 세계대회에 나갈 때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2~3번 나가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절실함과 자신감이다. 미쳐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2011년까지 미치는 선수를 찾아내 나보다 나은 후배를 꼭 길러내겠다"고 말했다.
박수성 기자 [mercury@joongang.co.kr]
▷
매출 30%↓…PC방 전면금연화 추진 논란▷
[양광삼의 후아유] 세계 4강 비걸(B-Girl), 서혜미▷
[정유경의 테마요가] 제1편 : 다리가 무거울 때▷
[스타쿡 ①] 임형주 “어린 시절 어머니의 특별상, 마요네즈 새우”▷
[스타쿡 ②] 임형주를 위한 호텔 주방장의 ‘마요네즈 새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