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스포츠는 요지경] 1983년 논산 훈련소 ‘빅매치’
사회에서 볼 좀 찬다는 사람들과 프로페셔널한 축구 선수의 기량 차이는 어느 정도 될까요.
1983년 논산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축구 선수들이 입대했다는 소식에 조교들이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한 판 붙자", "몇 점이나 접어드릴까요", "5점이면 충분하지", "축구는 열 한명이 하는 거니까 11점을 접어드리겠습니다."
5점을 접어달라는 것도 자존심이 상할 일인데 두 배가 넘는 11점을 접어준다니 조교들은 기가 찰 노릇. "좋아, 대신 너희들 우리한테 깨지면 각오해"라며 쏘아 붙였지만 축구 선수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저희들이 이기면요?"에 돌아온 답은 "앞으로 훈련 중 힘든 건 모두 열외다."
잔디는 고사하고 자갈이 가득한 운동장에서 용케 운동화를 꿰차고 '논산 훈련소 빅매치'가 시작됐습니다. 전후반 35분. 11-0 기간병의 리드로 킥오프.
상대를 잘 못 골랐습니다. 훈련병 팀에는 꾀돌이 미드필더 박항서, 할렐루야 출신의 꺾다리 공격수 오석재, 재간둥이 스트라이커 이상철(전 울산현대 코치, 현 축구협회 기술위원), 듬직한 수비수 이장수(현 베이징 궈안 감독), 지금은 국가대표 오범석의 아버지로 더 유명한 골키퍼 오세권 등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이상철 기술위원은 "모두 13명이 함께 입대했다. 골키퍼, 미드필더, 수비, 공격 등 어느 포지션 하나 빠지는 선수가 없이 조직력이 잘 맞았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결과는 14-11. 전후반 내내 조교들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오세권씨는 "마음만 먹으면 더 넣을 수도 있었지만 그 정도로 끝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날 승리로 이들의 훈련병 생활은 편해졌을까요. 오세권씨는 "군대에서 봐주는 게 어딨어. 그 때 뿐이지"라고 빙긋 웃었습니다.
병역 비리로 축구계가 시끄럽습니다. 병역의무는 지엄하지만 축구 선수에게 2년간 공을 못찬다는 것은 치명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두현이 잉글랜드로 이적하지 못하고 일단 임대되는 것도 병역을 해결하지 못한 탓이 큽니다. 비리를 감싸는 것은 아니지만 병역을 이행하면서 축구로 사회와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길 기대해봅니다.
이해준 기자 [hjlee@ilg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