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모리엔테스 인터뷰①] 그가 말하는 한국축구, 2002년 그리고 축구인생
7일 서울 한남동 스페인대사관에서 만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40)는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났다. 186cm의 훤칠한 키에 감색 재킷은 제법 잘 어울렸다. 마흔줄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날렵한 몸매와 준수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조금 늘어난 것만 빼면 '꽃미남'이라고 불리던 현역 시절 그대로였다.그런 모리엔테스의 첫 마디는 농담이었다. 그는 "설렁탕과 수육을 먹었는데 신세계였다"면서도 "그렇다고 스페인 음식 대신 평생 먹으라고 하면 못 먹을 것 같다"고 했다. 모리엔테스는 스페인 축구의 전설적인 골잡이다. 당시 스페인에선 보기 드문 장신 공격수였던 그는 세계적인 명문 구단 레알 마드리드(1997~2005년)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이 기간 모리엔테스는 스페인 최고의 골잡이로 평가 받는 '단짝' 라울 곤잘레스(39)와 나란히 최전방을 맡아 '영혼의 투톱'으로 불리기도 했다.모리엔테스는 소속팀에서 상이란 상은 모조리 다 수집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3회, 정규 리그 우승 트로피를 2회 들어올린 게 대표적이다. '축구황제' 호나우두(40)에게 밀려 AS모나코로 임대된 2003~2004시즌엔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올랐다.그는 8강에서 2골을 몰아치며 친정팀 레알 마드리드를 꺾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모리엔테스가 맹활약한 모나코는 이 대회서 결승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갈락티코(스타를 끌어모으는 정책) 1기를 구축했던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지네딘 지단(44), 루이스 피구(44), 호베르투 카를로스(43) 등 '세기의 스타'들이 즐비했다. 모리엔테스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는2002 한일월드컵이다. 당시 그는 거스 히딩크(70) 감독이 이끄는 한국과 8강에서 만나 0-0로 맞선 연장 전반 헤딩골을 성공시켰으나 호아킨 산체스(35·레알 베티스)의 크로스가 골라인 아웃 판정을 받아 번복됐다.결국 스페인은 승부차기 끝에 3-5로 패했다. 당시 거함 스페인을 잡아낸 히딩크팀은 4강 진출 신화를 썼다. 그로부터 14년, 모리엔테스는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는 다음달 24일부터 8월 6일까지 국제학교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NLCS) 제주에서 열리는 '레알 마드리드 재단 캠퍼스 체험' 행사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허리까지 오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모리엔테스는 긴 팔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말을 건네는 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당신이 무슨 질문을 할 지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무슨 질문을 받을 지 기대된다"며 "2002년 이후 첫 한국 방문인데 재밌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은 몇 년만인가."2002년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여러 나라를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한국엔 오지 못했다." -한국 방문을 꺼린 건 아닌가."하하, 그럴리가. 축구에 파묻혀 지내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다." -혹시 지금 무슨 질문을 받을 지 알고 있나."알 것 같다. 14년 전 속상한 기억에 대해 물으려는 것 아닌가. 하하." -한일월드컵은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나."2002년 대회는 스페인의 목표와는 너무나 다른 결과를 얻었다. 특히 한국과 8강전이 가장 속상했다. 한국에 패해서가 아니라 월등하지 않은 팀을 상대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크게 실망했다." -한국전에서 번복된 헤딩골은 두고두고 아쉽겠다."당시 골은 내 축구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득점으로 인정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하지만 축구에서 심판의 판정을 무시할 순 없는 것 아닌가." -최근 한국-스페인전에선 한국이 1-6으로 크게 졌다."내가 기다리는 얘기다. 2002년의 아픔을 날려 버릴 만큼 속이 시원했다, 하하" -경기력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스페인은 유로 우승 후보다운 안정감을 보여준 것 같다. 본선에선 좀 더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플레이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 반면 한국은 아쉬움이 많았다. 2002년의 한국은 안방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이점도 있었지만, 실력면에서도 월드컵 4강에 오를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 본 한국은 투지가 부족해 보였다.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정신력에서도 2002 한국팀에 비해 모자랐다." -한국팀에서 인상 깊게 본 선수가 있는가."은퇴 후로는 스페인 선수들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외국 선수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평소 알고 있는 한국선수가 없다. 스페인전만 보면 '미달'에 해당하는 경기력이었다. 인상적인 선수도 없었다." 대표팀 생활만 따지면 모리엔테스도 아쉬움이 남는다. 월드컵과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우승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운도 없었다. 그는 2007년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는데, 스페인은 그 이듬해부터 황금기를 누렸다. 스페인은 유로 2008을 시작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과 유로 2012까지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조금만 늦게 은퇴할 걸'이란 생각이 드나."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오히려 스페인의 세대교체가 적기에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황금세대의 탄생은 덤이다."-라울은 축구 기록면에선 한참 앞서 있는 선수였다. 라울은 친구이자 라이벌인가."라울에게 전혀 라이벌 의식을 못 느낀다. 우리 둘은 베스트 프렌드다. 현재 나는 마드리드, 라울은 뉴욕에 살지만 지난 주에도 가족끼리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만큼 돈독하다."피주영 기자[모리엔테스 인터뷰①] 그가 말하는 한국축구, 2002년 그리고 축구인생[모리엔테스 인터뷰②] 한국의 미래 백승호, 특별한 재능 있다[모리엔테스 인터뷰③] 그의 넘버원은 '호날두'
2016.06.10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