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와일드 존, 와일드 K', 최동원 223K 기록 깨지나
스트라이크존이 와일드해졌다. 탈삼진도 와일드하게 많아졌다.SK 외국인 투수 메릴 켈리는 지난 12일 문학 롯데전에서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 8이닝을 6피안타 무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승부가 연장 12회까지 갔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켈리는 2015년 KBO 리그 데뷔 이후 개인 최고 기록을 하나 새로 썼다. 삼진 11개를 잡아낸 것이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8월 12일 문학 kt전에서 기록한 10개였다.삼진 하나의 차이일까. 올 시즌 첫 네 경기에서 켈리는 모두 8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냈다. 지난 두 시즌 동안엔 한 번도 2경기 연속 8+K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그는 올 시즌 32⅔이닝 동안 41탈삼진을 기록했다. 지난해와 같은 200⅓이닝을 던진다면 무려 252탈삼진이다. 1984년 최동원이 세운 KBO 리그 최고 기록(223개)을 아득히 뛰어넘는다.24일까지 KBO 리그 9이닝당 탈삼진(K/9)은 7.41개다. 역대 최고 기록인 2015년의 7.43개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시즌이 지남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양상문 LG 감독은 삼진의 증가 이유를 몇 가지 들었다. 우선 비싸고 수준 높은 외국인 투수의 영입이다. 외국인 선발투수 2명은 팀 전체 이닝의 25%가량을 책임질 수 있다. 지난해 리그 탈삼진 10위 이내 외국인 투수는 7명이었다.하지만 양 감독은 "역시 스트라이크존의 확대가 확실한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볼카운트 2-2에서 던진 슬라이더가 더 높은 확률로 스트라이크가 되면 삼진이 늘어난다. 넓어진 존을 의식하는 타자는 헛스윙을 하기 쉽다. 올해 국내 투수 중 NC 장현식과 함께 가장 많은 삼진(28개)을 잡아낸 LG 류제국의 주 무기가 슬라이더처럼 바깥쪽으로 휘는 커터다. 양 감독은 "삼진을 잡은 스트라이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존이 넓어지면 투수는 유리한 볼카운트를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양 감독의 말대로다. 올 시즌은 지난해에 비해 스트라이크가 전체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리그 전체 스트라이크 비율은 61.9%였다. 올 시즌엔 64.2%다. 더 많은 스트라이크는 더 많은 2스트라이크 카운트로 이어진다.KBO 리그는 지나친 타고투저 완화를 위해 올해부터 스트라이크존을 넓혔다. 대체로 높은 쪽의 변화가 가장 크고, 바깥쪽도 넓어졌다. 올 시즌 프로야구 구장에선 높은 빠른공 뒤에 떨어지는 공으로 삼진이 나오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구종별로는 커브의 삼진 비율이 가장 높아졌다.사실 삼진의 증가는 1982년 리그 출범 이후 꾸준히 이어져 온 현상이다. 1980년대엔 9이닝당 탈삼진이 4.07개에 그쳤다. 1990년대엔 5.50개로 1.5개가량 늘었다. 2000년대엔 6.19개, 2010년대엔 6.86개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K/9은 2015년 7.43개로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6.85개로 완화됐다. 그러다 올해 역대 두 번째로 7개 이상이 기록 중이다.하지만 올해 삼진 증가에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삼진은 장타와 연관이 있다. '홈런 타자의 영원한 친구는 삼진'이라는 말도 있다. 역대 9이닝당 홈런(HR/9)이 1개가 넘었던 시즌은 모두 9번이다. 이 중 6번 K/9 상위 10위 안에 들었던 시즌이다. K/9과 HR/9의 상관계수는 0.653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그런데 옿해 HR/9은 0.84개로 2014년 이후 최저 수치다. 앞 세 시즌엔 모두 1.0개를 넘겼다. 양 감독은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타자들이 장타보다는 정타를 치려는 경향이다. 어퍼 스윙보다는 다운스윙이 자주 보인다"고 말했다. 장타를 노리는 타자 성향이 오히려 감소했다. 유의미한 구속의 증가나 새로운 변화구의 유행은 감지되지 않는다. 역시 존의 확대가 삼진의 증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또 다른 주목점이 있다. 역대 K/9 최고치를 찍었던 2015년과 올해의 차이다. 규정 이닝을 채우고 K/9이 두 자릿수인 투수는 2015년 차우찬 1명뿐이었다. 올해는 켈리를 비롯해 박진형(롯데)·류제국(LG)·고영표(kt)·레일리(롯데) 등 5명이다. 8.0개 이상은 2015년 4명, 2017년 9명이다. KBO 리그 마지막 200탈삼진 기록은 2012년 류현진의 210개다. 5년 만에 200K 돌파는 지금 시점에서 매우 유력하다.물론 늘어난 탈삼진을 단지 환경의 덕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양 감독은 K/9 10.96을 기록 중인 류제국에 대해 "지난해까진 커브로 삼진을 잡았지만, 올해는 커터 움직임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국내 투수 중 K/9 1위를 달리는 롯데 3년 차 투수 박진형은 지난해도 스플리터가 좋았다. 박진형은 "올해는 2스트라이크 뒤 직구로도 삼진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 시즌 볼넷을 크게 줄였다. 존이 넓어졌기 때문만일까. 박진형은 "시즌 전부터 도망가는 피칭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최민규 기자
2017.04.25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