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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T서 뭉친 LG 3총사, "참 힘들었던 우리, KT서 함께 우승반지를" [IS 인터뷰]

이제는 마법사 군단의 일원이 된 우규민(39)이 지난 17일 구단 용품을 받기 위해 수원 KT위즈파크를 찾았다. 반가운 얼굴들이 그를 맞았다. 개인 훈련을 위해 경기장에 출근한 '절친' 박경수(40)와 2년 후배 박병호(38)였다. 2014년 잠깐이지만 한솥밥을 먹었던 배정대(29)도 있었다. LG 트윈스에서 인연을 맺은 옛 동료들과 KT 위즈에서 재회했다. 박경수는 “오랜만에 셋이 얘기하는데 옆에서 (배)정대가 웃더라고요.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깔깔대는데 그게 철없어 보였나 봐요. 그만큼 반가웠고 재미있었어요. 40대에 접어들고 은퇴가 눈앞인 시기에 이렇게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정말 신기합니다”라고 말했다. 박병호 역시 “LG 때부터 친했던 형이라 반가웠어요. 우리 팀 마운드에 큰 힘이 될 거라 믿습니다”라며 우규민을 반겼다. 이들의 인연은 무려 2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2차 신인드래프트 3라운더 출신인 우규민은 당시 1차 지명이었던 박경수와 입단 동기로 만났다. 2년 뒤 2005년 1차 지명인 박병호와 인연을 맺었다. 세 선수 모두 상위 순번으로 지명을 받았다.이들 셋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 결과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박병호)와 KT(박경수), 삼성 라이온즈(우규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도 힘든 신인 시절을 함께 보내온 만큼 우정은 계속됐다. 언젠가 다시 한 팀에서 뛰는 상상을 해온 이들은 2024년에 꿈을 실현했다. 지난해 11월, 2차 드래프트에서 KT 위즈 이적이 확정되는 순간 우규민은 환호했다. 곧장 박경수의 집 주소부터 물었다. 그리고는 차로 3분 떨어진 곳에 집을 구했다. 박병호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게(우리가 한 팀에서 뛰는 일이) 진짜로 되는구나”라고 연신 외쳤다. 우규민은 “마흔 살인데 ‘아직도 이렇게 설렐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지금도 내가 이들과 같이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라며 웃었다.그는 “(박)경수, (박)병호를 보는데 힘들었던 옛날 생각이 났어요. 신인 시절 LG에서 정말 많이 혼나면서 야구를 했거든요. 그랬던 우리들이 베테랑이 돼서 한 팀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이런 기회가 찾아와 기쁘고 감사합니다”라며 웃었다. 이젠 친구들과 함께 우승 반지를 끼는 것이 목표가 됐다. 박경수는 2021년 KT에서 우승을 경험했지만, 박병호와 우규민은 우승 경험이 없다. 선수 생활도 막바지에 접어든 만큼, 우승을 향한 두 선수의 의지도 남다르다. 지난해 세 번째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신 박병호는 11월 말부터 경기장에 나와 개인 훈련에 매진 중이다. 우규민 역시 필라테스와 수영 등 여러 운동을 하며 몸을 만들었다. “이제까지 본 (우)규민이의 몸 중 가장 좋다”는 게 ‘절친’ 박경수의 증언. 우규민은 “친구들과 모처럼 뭉친 만큼 함께 우승해 보는 게 꿈입니다”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KT 주장인 (박)경수가 젊은 선수들이 많은 투수조를 잘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젊은 투수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서 팀 우승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수원=윤승재 기자 2024.01.23 06:04
스포츠일반

[IS 인터뷰]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AG 수영·육상 등 기초종목 금메달 기대”

“수영·육상 등 기초 종목을 유심히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이기흥(68) 대한체육회장은 개막 50일을 앞둔 항저우 하계아시안게임(AG)이 대한민국 스포츠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성과가 크지 않았던 기초 종목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란 기대다.이 회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지금 대한민국 스포츠는 기초 종목 중심의 체계로 바뀌고 있는 과도기에 있다고 본다. 과거 대회와 달리 기초 종목에서 많은 메달이 나와 국민들께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실제 그동안 한국 스포츠는 기초 종목과 거리가 멀었다.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당시 일본에 밀려 24년 만에 종합 3위로 떨어졌는데, 기초 종목의 육성 실패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일본은 육상·수영에서만 금메달 25개를 차지했지만, 한국은 금메달 2개에 그쳤다.이기흥 회장은 “일본은 도쿄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7~8년간 굉장히 많은 투자를 했다.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좋은 성적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선수들의 은퇴가 맞물렸고, 일본보다 (투자와 육성) 시기가 조금 늦었다”며 “다행히 이번 대회부터 기초 종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히 수영 황선우, 육상 우상혁 등 옛날엔 생각도 못했던 종목에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그는 앞으로도 꾸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회장은 “엘리트 체육의 결과물은 반드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지원 없이는 절대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다”며 “일본도 올림픽 유치를 준비하면서 엘리트 체육 육성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고 집중 육성에 나섰다. 국제종합대회에서 결과는 단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엘리트 체육에는 엘리트 체육에 맞는 지원을 해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기초 종목을 포함해 이번 대회에 나서는 선수단을 위해 대한체육회는 부단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800여명의 선수들이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등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여파로 대회가 1년 연기된 변수 탓에 선수단 지원을 위한 체육회의 고민도 컸다는 게 이기흥 회장의 설명이다.그는 “항저우 대회 연기 발표 이후 지도자, 선수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운동할 때 분위기가 나지 않아 어렵다’는 것이었다. 선수들 입장에선 대회가 연기됐다는 상실감이 가장 힘들었을 거다. 체육회 차원에서도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고, 훈련 분위기를 만드는 게 어려웠다”고 돌아봤다.이기흥 회장은 “이를 위해 훈련 환경의 개선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수당이나 숙박비 등을 증액했다. 선수들을 위한 여러 행사도 개최해 사기 진작을 위해 노력했다. 훈련 여건뿐 아니라 정서적인 차원에서도 세심하게 지원하려 했다. 체육회 차원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예산 문제였는데 다행히 잘 정리가 됐다”고 설명했다.이어 그는 “무엇보다 선수단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영양 섭취 등 훈련 외적인 부분에서도 차질이 없도록 철저하게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회 준비 과정에서 적지 않은 변수는 AG 개최지가 중국이라는 점이다. 이기흥 회장은 “코로나 여파로 인한 중국의 폐쇄 정책 탓에 최근까지도 현지 정보를 직접 확인하는 게 불가능했다. 지금도 조직위원회로부터 경기장 티켓이나 지정 호텔, 경기 일정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제공되고 있지 않다. 최대한 소통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중국·미국 간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인한 긴장감도 있다. 선수단에 대회 기간 소셜미디어(SNS) 등에 대한 교육을 신경 쓰고 있는 이유”라며 “이번 대회엔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1300여명)이 파견된다. 대규모 선수단이 현지에서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사전에 선수단 교육이나 생활 안내, 편의 제공 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에서 이기흥 회장이 선수단에 바라는 건 종합순위 등 성적만큼이나 선수단이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매너, 규정 준수 등은 성적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세계 스포츠 리더로서의 면모와 성숙함을 선수들도 경기장 안팎에서 보여줬으면 한다는 게 이기흥 회장의 바람이다.그는 “우리나라는 세계 스포츠 10대 강국이자, 말하자면 (국제 사회의) 리더다. 그에 걸맞은 품위와 성숙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상대에 대한 예의 등 매너, 규정 준수 등은 성적만큼 중요하다. 옛날처럼 죽기 살기로 메달에만 목을 매는 게 아니라, ‘한국 선수들은 매너도 좋고 프로페셔널하다, 멋지다’라는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아시안게임 지원과 별개로 대한민국 체육 발전을 위한 대한체육회 차원의 노력도 계속 이어진다. 핵심은 대한민국 스포츠 외교와 국내 체육인에 대한 지원이다. 올해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내년 1월 동계유스올림픽 개최, 곧바로 파리 올림픽 참가 등 쉽지 않은 여정 속에서 놓치지 않고 이어가는 노력들이다.이기흥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4년 간 활동하면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스포츠 외교 시스템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이를 위해 스위스 로잔에 국제스포츠연락사무소를 개설,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의 교두보를 마련할 것”이라며 “전남 장흥에 건립 중인 체육인재개발원을 중심으로 체육인들의 교육과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도 대한체육회 차원에서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김명석 기자 2023.08.04 12:01
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보낸 이대호, 일구대상으로 완벽한 마침표

마지막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이대호(40)가 선배들이 뽑은 올해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이대호는 8일 서울 청담동 호텔리베라에서 열린 2022 일구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 2001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로로 데뷔한 이대호는 21번째 시즌인 올해가 시작되기 전 은퇴를 예고했다. 은퇴 전 시즌이어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타율 0.331 23홈런 10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81로 맹활약했다. 오는 9일 열리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도 지명타자 부문으로 최고령 수상이 유력하다. 이대호는 수상 후 "떠날 때 너무 좋은 상을 주셨다. 일구회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는다는 건 선배님들께서 뽑아주셨다는 뜻이다. 기쁘고 행복하다"며 "프로 생활을 21년 했다. 너무 아쉽고 좀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배들을 위해 물러났다.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할 수 있도록 계속 응원하고 후배들에게 많이 조언하겠다"고 했다. 또 "롯데 팬들뿐 아니라 한국 야구팬분들께서 많이 응원해주셨는데 내가 조금 부족했다. 롯데를 우승시키지 못하고 떠나 아쉽지만 후배들이 꼭 이뤄줄 것이라 생각한다. 기대하고 있겠다. 마지막까지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대호는 21년의 야구 생활 중 여러 명장면을 만들었다. 2010년 타격 7관왕을 타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했고, 일본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도 진출했다. 그랬던 이대호도 최고의 순간은 역시 2008년이었다. 이대호는 "야구인이면 다 아시겠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꿈만 같았고 너무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떠올렸다. 은퇴 후 이대호는 방송에 적극적으로 출연 중이다. JTBC 예능 최강야구에 고정 멤버로 합류했고,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등 출연에도 적극적이다. 이대호는 "유니폼을 벗으니 은퇴가 실감은 난다. 방송이든 뭐든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게 내 목표다. 팬분들께서 방송 보면서 열심히 응원해주실 것이라 생각한다"며 "출연 요청 연락은 많이 받았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한다. 야구밖에 해보질 않아서 잘하는 게 적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대호는 먼저 떠나지만, 아직 프로에 남은 동년배 선수들도 있다. 동갑 친구 추신수, 김강민, 오승환은 내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한 살 어린 노경은은 지난해까지 이대호와 롯데에서 뛰다가 올해 SSG로 옮겨 개인 두 번째 우승을 경험했다. 이대호는 "추신수와 노경은이 우승했는데 정말 부럽다. 경은이의 얼굴을 보니 너무 행복해 보인다. 좋은 팀을 만나 우승하고 행복을 느낀 것 자체가 축하할 일"이라며 "롯데 후배들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청담=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12.08 12:22
프로야구

간절한 이대호 “내 은퇴 경기는…”

이대호(40·롯데 자이언츠)는 은퇴 시즌인 올해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간절함을 담아 '나보다 롯데'를 희망했다. 우리 나이로 마흔 살, 은퇴를 앞둔 선수라고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이대호는 12일 기준으로 58경기에서 타율 0.353 8홈런 28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리그 타율 2위, 안타 3위(79개)에 올라있다. 2010년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개 부문 1위를 차지한 이대호는 여전히 '거인 군단'의 중심타자를 맡아 특별한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주 롯데가 거둔 2승 모두 이대호의 방망이에서 만들어졌다. 이대호는 지난 9일 삼성라이온즈전 연장 11회 말 2사 1, 2루서 끝내기 2루타를 치고 환호했다. 12일 KT 위즈전에서는 멀티 홈런을 포함해 5타수 4안타 3타점을 폭발했다. 롯데는 이대호의 활약 덕에 연패에서 탈출했다. 그에게 '은퇴를 미루고 더 뛰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바람이 전해지고 있다. 이대호는 "은퇴는 이미 정해놓은 것"이라며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이대호는 현재에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팀 성적 때문이다. 개막 전 한화 이글스와 함께 '2약'으로 꼽혔던 롯데는 시즌 초 '2위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5월 이후 내리막길을 걷더니 8위까지 떨어졌다. 이대호는 "(팀 성적에) 별로 만족하지 않는다. 벌써 (순위가) 밑으로 떨어졌다"며 "내 나이쯤 되면 개인 성적은 부진해도 팀이 상위권에 있으면 기분 좋다. 팀 성적이 떨어지면 분위기 역시 처지기 마련이다. (후배들에게도) 미안하다. 더 잘해서 더 이기고 싶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산수영초-대동중-경남고를 나온 이대호는 2001년 롯데 2차 1라운드 4순위로 입단해 '거인 군단'을 상징하는 최고 스타가 됐다. 지난해 1월 롯데와 FA(자유계약선수) 2년 계약하며, 우승 옵션을 1억원씩 넣었다. 개인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가 아닌 팀 우승에 보너스를 건 것이다. 롯데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이대호는 "한국시리즈 무대를 통해 은퇴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빈말이 아니다"며 "정규시즌 144번째 경기가 내 마지막 경기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가을야구 1~2경기라도, 더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간절함을 전했다. 선수 생활의 종착지를 향해가는 이대호는 개인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그는 "후배들이 잘해서 (날 대신해) 뛰었으면 좋겠다. 나보다 더 잘하는 선수가 있으면, 내가 벤치에 앉아 있어도 행복할 것이다. 은퇴를 앞둔 선수가 계속 출전하는 게 팀으로선 안 좋다. 내가 경기에 띄엄띄엄 나가더라도, 후배들의 기량이 많이 올라와서 더 잘했으면 한다. 떠나는 마당에 (개인 성적에는) 욕심 없다"고 재가 강조했다. 자신이 점찍은 '포스트 이대호' 한동희는 4월까지 타율, 홈런, 장타율, 출루율 1위에 올라 KBO리그를 강타했다. 그러나 5월 슬럼프에 빠지더니 부상까지 겹쳐 주춤하고 있다. 이대호는 "(한)동희는 더 잘할 것이다. (기량이 꽃 피우기까지) 아직 멀었다"면서 "반짝하는 선수가 아닌 꾸준한 선수가 돼야 한다. '한동희라면 이 정도(성적)까지 하는구나'라는 인식을 만들면서, (올해 4월처럼 잘해도) '이거밖에 못 하나'라는 이미지를 주는 선수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한동희에게 비타민을 챙겨주고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는 "동희는 앞으로 팀을 지켜야 하는 기둥이자 책임져야 하는 선수"라고 책임감을 재차 강조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국은 이대호의 공로를 인정해 이승엽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은퇴 투어를 열어주기로 했다. 그는 "아직 은퇴가 실감 나지 않는다. 사실 나도 그렇고 상대 팀에도 부담이다. 조용히 떠나는 게 가장 좋은데…"라면서 "20년 넘게 날 사랑해준 팬들이 전국에 있다. 인사하고 떠날 수 있어 설렘도 있고, 아쉬움도 든다.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최고의 팬서비스는 가을야구 초대장이다. 그는 "롯데 팬이 전국에 많이 계신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야구 인기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라며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잘하고 후배도 잘해서 가을야구 한번 해야죠. 다친 선수들이 돌아오면, 롯데는 더 올라갈 겁니다. 한두 번이라도 내 은퇴 경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형석 기자 2022.06.13 05:20
야구

'2000경기-은퇴' 이범호 '시간아, 너무 빨리 가지 마라'

KIA 이범호(38)는 요즘 하루하루 행복하게 마지막 피날레를 준비한다.그는 오는 13일 10년간 몸담았던 친정팀 한화와 광주 홈경기에서 은퇴식을 갖고 현역 유니폼을 벗는다. 이범호는 "아직 실감 나진 않는다. 은퇴가 눈앞에 바로 다가와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대개 은퇴를 선언하면 바로 유니폼을 벗지만, 이범호는 향후 5경기 이상 출장해 그라운드를 밟을 예정이다. KIA 구단은 4일 이범호를 1군 엔트리에 등록해 그가 개인 통산 2000경기 출장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도록 배려할 계획이다. 요즘 후배들과 훈련을 소화하는 그는 "몸 상태는 좋다. 다만 타구가 잘 나가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웃었다.이범호는 2001년 프로에 데뷔해 통산 1995경기에서 타율 0.271·329홈런·1125타점을 기록했다. 개인 통산 최다 홈런 5위. 제1·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멤버로 좋은 활약을 선보였고, 이를 발판으로 일본 소프트뱅크에서도 뛰었다. 2017년 KIA가 통합 챔피언에 올라 우승을 맛봤고, 지난해도 101경기에 나와 타율 0.280·20홈런·69타점으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2월 스프링캠프에서 허벅지 근육이 1~2cm 찢어져 중도 귀국한 그는 팀의 점진적인 리빌딩 속에 박찬호와 류승현 등 신예 자원이 성장하면서 점차 기회가 줄어들자 은퇴를 결심했다. 주로 교체 선수로 나선 이번 시즌 1군에서 13경기 19타수 5안타(1홈런) 3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은퇴식이 다가올수록 현실을 깨닫게 된다. 후회는 없다. 이범호는 "팀 상황이나 분위기, 1군에 올라왔을 때 내 경쟁력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고려했다. 은퇴는 직접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다"라고 했다. 프로 무대에서만 20년 넘게 활약한 만큼 마음 한구석에 찾아드는 허전함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때로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길 바란다. 그는 "은퇴식이 빨리 다가오면 유니폼을 빨리 벗어야 하니 안 왔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은퇴 D-DAY가 하루하루 다가오니까. 속마음으로 '시간아, 너무 빨리 가지 마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이범호는 '만루의 사나이'로 통한다. 개인 통산 역대 최다 만루홈런(17개) 기록의 보유자다. 박흥식 KIA 감독대행은 이를 염두해 그를 "만루 상황에서 대타로 기용할 수 있다"고 의사를 내비쳤다. 이를 전해 들은 그는 " 만루 상황에서 나가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다"며 "팀에 피해를 줄 상황이라면 안 될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설지 모르는 만큼 일단 몸을 잘 만드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동안 수많은 레전드가 배출된 KIA에서 이범호는 타 구단 출신 선수로는 처음으로 은퇴식을 갖게 됐다. 그는 " 너무 행복했다. 사실 다른 팀(한화·소프트뱅크)에서 10년 넘게 활약했는데 은퇴식을 열어 줘 사장님과 단장님 및 구단에 너무나 감사하다. 내 야구 인생이 행복했다고 자부하며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인사했다. 이범호는 " 은퇴식은 평생 단 한 번뿐이지 않나. 머릿속에 특별한 그림이 그려지지도 않는다"면서도 "다만 타석에 들어서면 긴장하고 뭉클할 것 같다"는 속마음을 전했다. 이형석 기자 2019.07.04 06:00
야구

포수 조인성, 20년 선수생활 마감 공식 선언 [전문]

베테랑 포수 조인성(42)이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은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조인성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고 발표했다. 조인성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98년 LG에 입단한 뒤 SK와 한화를 거치면서 20년간 리그 정상급 포수로 활약했다.선수협은 "조인성이 그동안 성원해준 팬들과 함께했던 구단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며 "프로 선수로서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은퇴식 대신 그동안 자신이 터득한 경험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중·고등학교에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다음은 조인성이 남긴 은퇴 발표문 전문이다.안녕하세요. 프로야구 선수 조인성입니다. 그동안 절 아껴주신 모든 분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글로 인사를 올려 죄송합니다.저는 오늘 현역 프로야구 선수에서 은퇴합니다. 아홉 살 때부터 시작한 야구선수로서의 인생을 마흔 세 살에 마감합니다. 34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야구선수의 길을 이제 정리하려고 합니다.은퇴를 말씀드리는 지금도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구장으로 출근해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할 것만 같습니다. 누가 제 머리에 포수 마스크를 씌우고, 왼손에 포수 미트를 끼워주면 그라운드를 펄펄 날 것만 같습니다.하지만 은퇴가 실감 나지 않더라도 지금이 제가 물러날 시간이란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 현역 야구선수 인생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저는 지금도 1998년 LG 트윈스 유니폼을 처음 입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쟁쟁한 선배들을 보며 잔뜩 기가 죽었습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포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속으로 '3, 4년 뛰다가 이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겁이 난 것도 사실입니다.하지만 전 제가 걱정하고 우려했던 것보다 운이 좋았습니다. 매번 좋은 팀에서 좋은 팬, 코칭스태프, 선수, 프런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3, 4년이 아니라 20년 동안 프로야구에서 현역 선수로 뛸 수 있었습니다.감사한 분이 참 많습니다. 우선 지금의 '조인성'을 만들어주신 LG 트윈스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LG는 부족한 절 1차 지명하고, 2011년까지 많은 기회를 준 팀입니다. 그 기회가 없었다면 전 20년 동안 그라운드에서 뛸 수 없었을 것입니다. LG에서 만난 코칭스태프, 동료 선수, 구단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무엇보다 LG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때론 질책과 비판으로, 때론 격려와 응원으로 절 보듬어주신 LG 팬분들이 제겐 제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친구이자 스승이었습니다. 2011년 겨울 LG를 떠날 때부터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LG를 떠난 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LG 팬들의 감사함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은퇴하는 지금, 이 말씀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FA가 됐을 때 절 받아주시고, 제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SK 와이번스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2년 동안 SK에서 뛰며 팀에 꼭 필요한, 좀 더 팀에 기여하는 선수가 되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SK 선수단의 에너지 넘치는 팀 분위기 덕분에 늘 활기찬 마음으로 구장에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는 영광까지 누렸습니다.하지만 2년 동안 성적이 좋지 않아 늘 SK 구단과 팬들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죄송한 마음, 앞으로 살면서 잊지 않겠습니다. 더 나은 사회인, 더 훌륭한 야구인이 돼 죄송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도록 노력하겠습니다.제 마지막 팀인 한화 이글스 구단에도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4년간 한화 유니폼을 입은 덕분에 마지막까지 야구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음에도 항상 구장에 찾아와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과 왜 야구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제가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뛸 때 가을 야구를 팬분들께 선물해 드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도 크게 남아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한화 이글스의 행운과 팬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한화 팬들께 좋은 활약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지나온 34년간의 야구 인생을 되돌아보다 보니 인사가 길어졌습니다. 저를 지켜봐 주시고, 제게 용기를 주시고, 제가 더 나은 선수가 되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제 야구 인생을 정성껏 기록해주신 언론 관계자분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무엇보다 저를 야구선수로 만들어주신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와 제 뒷바라지에 청춘을 바치신 어머니, 그리고 제겐 야구 이상의 의미인 제 아내와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34년간 오직 한 길을 걸어오며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34년의 인생은 한국야구와 팬 여러분께 빚진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초심을 잊지 않는 '야구인' 조인성이 되겠습니다. 팬 여러분은 저를 잊어도 전 팬 여러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배영은 기자 2017.11.08 07:34
야구

[인터뷰] '은퇴' 이승호, "저 SK 코치 아닙니다"

SK에서 은퇴한 투수 이승호(35)가 제 2의 삶을 계획한다.KBO리그 2000년 신인왕. 통산 75승과 41세이브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지난 세 시즌 동안 딱 13경기 등판에 그쳤다. 올해는 1군 등판 기록이 전무하다. 항간엔 '친정팀 SK에서 코치를 시작한다'는 말도 있었다. SK 재활코치를 맡게 된 동명이인 이승호(40)와 헷갈렸던 탓이다. 그는 "야구 쪽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지만 진로는 정해진 게 없다.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해 신인왕,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한국시리즈 우승 등 여러 영광의 순간을 겪었다. 2011년 시즌 뒤엔 롯데와 4년 24억원 FA(프리에이전트) 계약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수술을 받았던 왼쪽 어깨가 회복되지 못했다. 1년 만에서 롯데에서 NC로 이적했고, 올해는 친정 SK 유니폼을 입었다. 정규시즌 마지막날 1군 엔트리에 등록됐지만 마운드를 밟진 못했다. - 은퇴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집에서 쉬고 있다. 특별한 계획이 잡힌 게 없어 일단 머리를 식히면서 쉬고 있다." - 은퇴가 실감나나."처음에는 몰랐다. 지금은 실감이 난다. 한 달 넘게 쉬다보니까 생각이 많아지더라. 선수로는 훈련이 일상이었다. 쉬는 게 낯설다. 선수 생활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답답하더라.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 올해 1군 등판을 하지 못하고 은퇴했다."1군에서 뛰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SK로 돌아와서 많은 보탬이 되고 싶었다. 친정팀이라서 마음이 편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프로 첫 세이브를 올렸을 때와 2008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했을 때다. 2008년 기억이 많이 난다. 2007년 우승 때는 재활 중이라 많이 뛰지 못했다. 롯데나 NC 팬들에게는 미안함 마음이 크다. 기대만큼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SK로 돌아와서는 팬들이 2군 경기에 와서 많이 응원해주셨다. 다 기억이 난다." - 롯데에서 1년 만에 이적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아예 생각 못했다. 4년 FA 계약을 했으니까. 1년 만에 NC로 갈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팀을 옮기면서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 시간이 좀 걸렸다." - 2001년에는 220⅔이닝(14승14패 2홀드 평균자책점 3.55)을 던졌다."성적을 떠나서 진짜 많이 던졌다. 2년차 시즌이었는데 흔히 말하는 '2년차 징크스'를 벗어났다. 기억에 남는 시즌 중 하나다." - 결국 부상이 발목을 잡았는데."재활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2006년에 받은 어깨 수술도 최대한 재활로 이겨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어렵게 수술 결정을 했다." - 은퇴는 쉽지 않은 일이다."마지막까지 1군 무대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기량이 많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 평가에 수긍했다." - 그게 더 어려운 거 아닌가."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SK를 비롯해 여러 팀을 뛰면서 운동에 대해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다. 선수 생활의 끈을 놓는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마음이 지친 것도 있다." - 향후 계획은 있나."야구 쪽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기사를 제대로 못 보신 분들이 'SK 코치가 됐다'고 축하인사를 하더라. 많이 헷갈려 하시는 것 같다.(웃음)"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ins.com 2016.11.16 15:54
야구

'은퇴' 구로다 "이제 15번은 팬 여러분의 것"

"이제 배번 15는 팬 여러분의 것이다."히로시마 투수 구로다 히로키(41)가 4일 일본 히로시마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은퇴 소감과 함께 구단의 영구결번 지정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구로다는 일본시리즈를 불과 나흘 앞둔 지난달 18일 올 시즌을 끝으로 깜짝 은퇴 발표를 했다.구로다는 일본 프로야구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08~2014년 8시즌을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뛰며 79승 79패 평균자책점 3,45를 기록했다.지난해 메이저리그의 제안을 거부하고 히로시마로 돌아와 26경기에서 11승 8패 평균자책점 2.55로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다. 올 시즌에도 10승 8패 평균자책점 3.09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일본리그 총 11시즌 동안 103승을 거뒀다.하지만 그는 "이제 선발 등판해 9이닝을 던질 수 없는 몸 상태가 됐다. 다른 선수에게 모범이 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하고 싶진 않다"고 밝혔다.그는 10월 25일 니혼햄과의 일본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그의 마지막 등판이었다.구로다는 "시즌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내 은퇴가 실감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올 시즌 부상없이 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히로시마에 입단할 때 내가 선수 생활을 20년이나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동안 많은 노력을 했고, 또 그만큼 고생했기에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구로다는 소속팀 히로시마가 니혼햄에 2승4패로 져 우승에 실패했다. 그는 "팀이 다시 한 번 리그를 제패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아쉽게 놓친 일본 시리즈에도 다시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히로시마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제안을 뿌리치고 친정팀에서 유종의 미를 올린 구로다에게 영구 결번 지정을 선물했다. 구로다는 "처음 그 소식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우리 팀에는 대단히 훌륭한 선배들이 많았다. 그래서 큰 영광이다"며 "이제 이 번호는 팬 여러분의 것이다. 15번 유니폼을 봤을 때 올해 우리 팀의 리그 우승을 기억해 달라.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인사했다.이형석 기자 2016.11.04 18:58
스포츠일반

조상현, 현역 은퇴식 “팬들에게 받은 사랑, 베풀겠다”

"팬 여러분이 주신 사랑, 사회에 환원하면서 열심히 살겠다."조상현(37) 고양 오리온스 코치가 현역 공식 은퇴식을 치렀다. 오리온스는 12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부산 KT와의 2013-2014 프로농구 정규리그 개막전에 앞서 조상현 코치의 현역 은퇴식을 거행했다. 이날 은퇴식에는 오리온스 단장의 공로패 전달과 최성 고양시장의 꽃다발 증정에 이어 오리온스 주장 김동욱이 조 코치에게 기념 액자를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조 코치는 연세대를 졸업한 이후 지난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프로무대에 데뷔했다. 그는 총 12시즌 동안 11.3득점, 1.9어시스트, 1.5리바운드라는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2-2013 시즌이 끝난 뒤 조 코치는 구단의 제안에 따라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곧바로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조 코치는 은퇴식에서 "막상 은퇴식을 치르니 은퇴가 실감난다"면서 만감이 교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30년 가까이 농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그동안 함께 해준 선수, 감독님께 고맙고 사랑한다"면서 "팬 여러분이 주신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고양=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2013.10.12 14:21
축구

[스타 24시 ①] 이을용, 14년 프로 마감하던 날

월드컵 영웅·투르크 전사·을용타·인민군, 그리고 강원의 아들.다채로운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던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이을용(35·강원)이 정든 축구화를 벗었다. 23일 강릉종합경기장에서 열린 대구 FC와의 정규리그 29라운드 경기를 끝으로 14년 프로 이력을 마무리지었다.이을용의 축구인생은 꽤 드라마틱했다. 강릉상고(강릉제일고의 전신) 시절 알아주는 유망주로 불렸지만 정신적 방황을 이기지 못해 1년간 축구와 인연을 끊었다. 나이트클럽 직원·배관공·건설노동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실업팀 철도청에 복귀해 극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부천 SK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를 경험했고,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일약 스타 반열에 올랐다. 트라브존스포르(터키)에 입단해 유럽파로 거듭났고, FC 서울을 거쳐 고향팀 강원 FC의 창단 멤버로 참여했다.은퇴 당일 이을용은 평소처럼 시크했다. 여느 때처럼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팀 미팅에 참여했고, 팀 동료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팬들이 보내는 박수와 환호 앞에서 특유의 냉정함과 차분함은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그동안 강원도 축구팬들이 보내주신 성원 덕분에 너무나 행복했다"고 말하는 이을용의 목소리는 한 없이 떨렸다. 눈가에는 이슬이 촉촉히 맺혔다. 오전 7시30분이젠 마지막이 될 클럽하우스에서의 아침식사. 하지만 이을용은 내색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적당한 양의 아침식사를 했다. 인사를 건네는 동료들에게 차분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응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을용은 자기 관리의 스페셜리스트로 불렸다. 간혹 안정환(다롄 스더) 등 절친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도 있었지만, 시즌 중에는 철저히 몸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식사도 훈련도 정해진 스케줄에 따랐다. 이을용의 생활방식은 팀 동료들에게 늘 귀감이 됐다.오전 11시팀미팅을 마치고 후배들과 마주 앉았다. 이을용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내용으로 시작했지만 화두는 자연스럽게 후배들에 대한 조언과 충고로 흘렀다. 이을용은 강원 FC 최고참이다. 그라운드에서는 코칭스태프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뽐냈다. 후배들은 솔직담백하게 핵심을 찔러 말하는 이을용의 직설화법을 좋아했다. 공격수 김영후는 "을용이 형의 따끔한 충고가 그리울 것"이라는 말로 맏형을 잃게 된 아쉬움을 표현했다. 오후 1시30분대구 FC와의 경기를 위해 선수단 버스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탄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이을용은 버스에 오르기 전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경기장에 도착하니 비로소 은퇴가 실감이 났다. 늘 그렇듯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길에 팬들이 몰려들어 박수와 환호를 보내줬지만 사인과 사진촬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오후 3시치열한 공방전 끝에 강원이 대구에 1-0으로 승리를 거둬 경기장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어 진행된 은퇴식은 승리에 대한 환희와 영웅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뒤섞였다. 동료들의 헹가래를 받은 뒤 마이크를 잡은 이을용은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들 태석군은 "아빠가 은퇴해 참 좋다. 이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라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오후 8시30분경기를 마친 뒤엔 강릉제일고 총동문회에 참석해 가족과 함께 인사를 했다. 이을용은 축구의 고장 강원도 태생이라는 점, 그것도 축구명문 강릉제일고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FC 서울 소속이던 2008년 강원 FC 창단 소식을 듣고 미련 없이 이적을 결심한 것 또한 같은 이유다. 이날 밤 동문들은 지도자로 새 출발하는 이을용을 따뜻한 박수로 격려해줬다.경기장대구와의 올 시즌 마지막 홈 경기가 열린 강릉종합경기장 외벽은 이을용 은퇴를 기념하고 아쉬워하는 초대형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팬들 또한 떠나는 이을용에 대해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경기 전 만난 강릉의 개인택시 기사 김명렬씨는 "오늘이 을용이 제대하는 날 아니냐"면서 "앞으로 좋은 지도자가 되어 강원도 축구를 키워줄 것으로 믿는다"며 기대했다. 강릉=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 2011.10.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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