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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재밌게 놀아보자’ 감독님 말씀에 놀라…꼭 우승하고 싶다” 돌아온 ‘영구결번’ 이상민 코치

한국프로농구(KBL) 전주 KCC의 ‘영구결번 스타’ 이상민(51)이 코트로 돌아왔다. 코치로 돌아온 그는 “꼭 우승을 이뤄내고 싶다”며 힘줘 말했다.이상민 코치는 27일 본지와 통화에서 “(KCC행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전창진 감독님이 먼저 연락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부담 없이 ‘재밌게 놀아보자’라고 말씀해 주셔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틀 정도 고민할 시간을 달라했더니 전 감독님께서 ‘무슨 소리냐, 당장(27일) 나와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구단과도 얘기를 마친 상태였다고 하더라. 감사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고 돌아봤다.앞서 KCC는 이상민 코치가 합류한다고 지난 26일 발표했다. 이상민 코치는 앞서 2014년부터 8년간 서울 삼성 감독을 맡았다가 물러났다. 이후 1년 6개월간 휴식기를 가진 그는 전창진 KCC 감독의 제안을 받고 전주로 돌아왔다. 이상민 코치는 선수 시절 KCC의 ‘왕’이었다. 연세대 소속으로 농구대잔치를 평정했고, 1998년 대전 현대(KCC의 전신)에 합류했다. 1997~98시즌부터 2시즌 연속 정규 시즌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을 시작으로, 3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1998~99, 2004)과 KBL 베스트5를 4회 수상하며 전성기를 달렸다. 그의 등번호 ‘11’번은 KCC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선수로서 황혼기였던 2007년엔 서장훈의 보상선수로 지명돼 KCC를 떠나며 새로운 출발을 했다. 이후 3년간 삼성에서 활약했고, 2010년 은퇴 후 2012년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삼성에서 김동광 감독, 김상식 감독 대행 밑에서 막내 코치로 활약하다 2년 뒤 사령탑에 올랐다.이상민 감독 커리어는 기복이 컸다. 첫 시즌엔 10위에 그쳤다. 이듬해 6강 플레이오프(PO)에 진출했고, 3년차에는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 준우승을 맛봤다. 하지만 이후 7위와 10위를 반복했다.다시 코트에 선 이상민 코치는 여전히 우승을 바라본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라며 “지도자 생활을 10년 했지만 결국 우승을 이뤄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꼭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힘줘 말했다. 김우중 기자 2023.06.28 05:57
스포츠일반

선수·코치 때 우승, 이젠 감독으로 꿈꾸는 김병철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 홈경기장인 고양체육관 1층에 우승 트로피 네 개가 있다. 오리온에서 이 트로피를 모두 들어 올린 이가 딱 한 명 있다. 선수로, 또 코치로 오리온과 함께한 김병철(47) 감독대행이다. 그는 프로 원년인 1997년부터 13시즌 간 오리온에서 뛰었다. 2002년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통합 우승, 2003년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11년 은퇴한 뒤 그의 등 번호 10번은 영구결번됐다. 2013년 오리온 코치를 맡아 2016년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힘을 보탰다. 올 시즌 오리온은 최하위(12승29패)다. 19일 추일승 감독이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사퇴했다. 김병철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승격했다. 20일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김 감독대행은 “추 감독님이 ‘무거운 짐을 안겨줘 미안하다. 언젠가는 네가 맡아야 할 자리였다. 너만의 색깔을 입히면 잘할 거고, 그래야 내가 편하게 경기 보러 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감독님과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추 전 감독은 시즌 중 타임아웃 때 김 코치에게 작전 지시를 맡기기도 했다. 팬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병철이 형이 오리온을 이끌 때가 됐지’라고 적었다. 김병철은 고려대를 졸업한 직후인 1996년 창단 멤버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 합류했다. 인연을 맺은 지 25년 만에 지휘봉을 잡았다. ‘오래 기다렸다’는 얘기에 “코치 경험이 없었다면 앞길이 더 힘들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사실 2003년 자유계약선수(FA)가 됐을 때 다른 팀에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창단 멤버의 의리로 남았다. 이젠 회사가 가족처럼 느껴지고, 편의점에 가도 오리온 제품에만 손이 간다”며 웃었다. 대구 동양 시절이던 2001~02시즌, 김병철은 김승현·전희철·마르커스 힉스·라이언 페리맨과 ‘막강’ 베스트 5를 구성했다. 1998~99시즌 대전 현대 베스트 5(이상민·조성원·추승균·조니 맥도웰·재키 존스)와 함께, 프로농구 역대 양대 최강팀으로 꼽힌다. 김 감독대행은 “내가 뛰어서가 아니다. 역대 최강이라 자부한다. 다른 팀이 우리 만나는 걸 겁냈다. 힉스는 맘만 먹으면 뭐든 다했고, 페리맨은 리바운드왕이었다. 공을 잡아 순식간에 속공을 밀고 올라갔다. (김)승현이가 패스를 주면 내가 뛰어가서 3점슛 2~3개를 연속해 꽂았다. 그러면 상대는 전의를 잃었다”고 회상했다. 김 감독대행은 선수 시절 3점슛을 1000개 이상 성공했다. 그 감각이 남아 있을까.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는 그 자리에서 5개 던져 모두 성공시켰다. 오리온 슈터 허일영(35)은 “3점슛은 물론, 무빙슛 연습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전했다. 김 감독대행은 “선수 때 3점슛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무빙슛, 미는 슛, 스냅을 이용한 슛 등으로 폼을 계속 바꿨다. (허)일영이는3점슛 타점이 높아졌고, (이)승현이는 대학 시절보다 3점슛 시도가 늘었다. 또 타이밍도 빨라졌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여드름 난 앳된 외모로 별명이 ‘플라잉 피터팬’이었다. 김 감독대행은 “고려대 시절, 한 손 레이업을 할 때 체공 시간이 길어 얻은 별명”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시절 함께 뛰었던 전희철(47) 서울 SK 코치, 현주엽(45) 창원 LG 감독과 지도자로 대결한다. 또 연세대 출신 이상민(48) 서울 삼성 감독, 문경은(49) 서울 SK 감독도 상대한다. ‘대학 시절 연세대가 더 강하지 않았나’ 묻자 그는 “내가 4학년 때 고려대가 전관왕이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김 감독대행은 26일 울산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홈에서 데뷔전을 치른다. 올 시즌 남은 경기는 13경기. 시즌이 끝나고 나면 ‘대행’ 꼬리표를 뗄 전망이다. 그는 “멀리 보기보다 바로 앞에 놓인 경기를 잘 치르겠다. 선수들을 잘 추스르겠다. 남은 경기를 잘해야 그 분위기가 다음 시즌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창의적이고, 재미있고, 절실한 농구를 하겠다”는 그는 훈련 도중 선수들을 향해 “신나게 해”라고 외쳤다. ‘2001~02시즌을 기대해도 될까’라는 질문에 그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기대해달라”고 대답했다. 고양=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2020.02.2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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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삼성, 이상민·서장훈 영구결번 발표했다 철회 소동

프로농구 서울 삼성이 이상민(삼성 감독)과 서장훈(은퇴)이 현역 시절 사용하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가 2시간 만에 철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삼성 구단은 28일 "영구결번 당사자와 소통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면서 "추후 협의를 통해 영구결번과 관련한 내용을 확정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이날 오전 이상민과 서장훈이 삼성에서 쓰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한다고 발표했다. 프로 농구선수들에게 영구결번은 큰 명예다. 이상민 감독은 1997~1998 시즌 데뷔해 2007~2008 시즌부터 2009~2010시즌 까지 삼성에서 3시즌을 뛰고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2012년부터 삼성의 코치로 부임해 2014년부터 현재까지 감독을 맡고 있다. 서장훈은 KBL에서 통산 최다득점(1만3231점), 최다 리바운드(5235개) 기록한 뒤 삼성으로 이적해 2002~2003 시즌부터 2006~2007 시즌까지 5시즌을 뛰었다. 삼성이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데 공헌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엔 너무 적은 기간을 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삼성 구단은 발표 2시간 만에 이를 철회했다. 특히 이상민은 이미 친정팀인 전주 KCC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돼 있다. 한편 프로농구 역사상 영구결번 선수는 총 9명으로 삼성 고(故) 김현준(10번), KCC 이상민, 추승균(4번), 원주 DB 허재(9번), 울산 모비스 김유택(14번), 우지원(10번), 서울 SK 문경은(10번), 전희철(13번), 고양 오리온 김병철(10번)이 영예를 안았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8.01.2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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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센터’ 서장훈, 코트를 떠나다

서장훈(39·부산 KT)이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센터' 서장훈에게 팬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서장훈은 19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2012-2013 프로농구 정규리그 마지막 홈 경기에 나섰다.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기에 이날 열린 전주 KCC와의 경기가 고별 경기였다. 경기가 열린 사직체육관은 그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결승전을 치렀던 곳이기도 하다. 프로에서 6개 팀을 거쳤던 서장훈은 "올 시즌에 딱 한 시즌을 뛴 KT에서 영구결번을 받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냥 조용히 은퇴하고 싶다"며 영구결번도 마다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경기가 마냥 조용할 순 없었다. 서장훈과 친분이 두터운 '월드 스타' 싸이가 이날 시투를 맡았고, 어느 때보다도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불멸의 기록서장훈은 연세대 입학 예정자 신분으로 뛰었던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을 이끌고 MVP를 차지하는 등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프로농구에서는 역대 정규리그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독보적인 1위를 기록했다. 정규리그 통산 1만3000득점 고지를 넘어섰고, 5000리바운드도 돌파했다. 득점 부문에서 2위 추승균(은퇴·1만19점)과 3000점 이상 차이가 난다. 리바운드에서도 2위 조니 맥도웰(3829개)과 차이가 크다. 앞으로 서장훈을 넘어설 선수가 프로농구에서 또 한 번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는 오랫동안 국가대표팀 센터로 활약하면서 '국보 센터'라는 별명도 얻었다. 신기성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서장훈을 "외국 선수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선수, 한국 농구의 자존심을 지킨 선수"로 평가했다. 선수 시절 매치업 상대로 뛰었던 전희철 SK 코치는 "우리 나라에서 다시는 나오기 어려운 레전드"라고 했다. 잊지 못할 기억서장훈은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연세대 시절을 꼽는다. 그는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 등과 함께 뛰며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서장훈은 "모든 선수들이 함께 했기에 오늘날의 내가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금메달이라고 했다. 서장훈은 "선수 생활 중 유일하게 울었던 때다. 숙제를 못해 만날 혼나다 속 시원히 해결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반면 함께 뛰지 못해 아쉬웠던 선수도 있다. 그는 "현주엽(2009년 은퇴)과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했다"며 "가장 친한 동생인 김승현(35·삼성)과 프로에서 한 번도 같은 팀이 되지 못한 것도 아쉽다"고 했다. 서장훈은 아직 구체적인 향후 계획이 없다. 전창진 KT 감독은 "본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농구장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2013.03.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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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인터뷰①] 서장훈 “평소와 같은 마지막 경기 였으면…”

은퇴를 앞두고 있는 서장훈이 깔끔한 수트 차림으로 농구공을 잡았다. 그는 평소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라며 인터뷰 사진을 따로 찍는 걸 꺼린다. 이번엔 큰맘 먹고 카메라 앞에 섰다고 했다. "나는 늘 똑같았다. 마지막 경기도 마찬가지다. "프로농구 부산 KT의 센터 서장훈(39·207㎝)은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올 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날인 19일에 서장훈은 선수로서 마지막 정규리그 경기를 치른다. 지난 4일 서장훈을 KT 숙소인 수원의 올레 빅토리움에서 만났다. 그는 "거창한 은퇴식도 싫고, 영구결번은 생각조차 안 한다. 여느 경기와 다를 바 없는 그런 마지막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것조차 부담스럽다고 했다. 서장훈은 "은퇴 후 당분간 어디 조용한 곳에 숨어지내고 싶은 심정이다. 은퇴했다고 인터뷰를 여러 번 하면서 한 말 또 하는 것도 보기 좋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장훈 다운 '결벽증'이다. 그는 유독 깔끔한 성격으로 유명한데, 은퇴 역시 아주 깔끔하게 하길 바라고 있었다. "조용히 은퇴하기엔 농구를 너무 잘 한 죄가 크다"고 농담을 하자 "제발 조용히 보내 달라. 앞으로는 튀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게 꿈이다"며 웃었다. -코트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만감이 교차한다. 팀 성적도 안 좋고(KT는 치열한 6위 경쟁 중이다), 올 시즌 많이 다쳐서 답답했지만 무의미한 마지막 1년은 결코 아니었다. 마지막 경기에도 평소처럼 뛸 거다. 눈물을 흘릴 지는 가 봐야 알 것 같다. 아직 실감 안 난다."-그냥 한 시즌 더 뛰는 건 어떤가."무릎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더 뛰고 싶어도 못 뛴다. 무릎 하중을 줄이려고 1월부터 다이어트를 해서 10㎏ 넘게 체중을 줄였다. 나이 들어 하려니 힘들더라."- 미리 은퇴 시기를 정하고 한 시즌을 보냈다. "이례적인 일인데, 미국에서는 많이 있다고 한다. 우리 프로스포츠 문화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그게 나였을 뿐이다."- '농구 선수 서장훈'을 스스로 평가한다면."한 마디로 '아쉬움이 많은 선수'였다. '할 만큼 했다'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 진정성을 갖고 뛴 건 후회하지 않는다." - 서장훈 하면 연세대 시절을 떠올리는 팬들이 여전히 많다."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농구대잔치에 처음 갔을 때 꿈만 같았다. 난 '까까머리 고등학생' 유망주였을 뿐인데 TV에서만 봤던 선배들과 코트에서 함께 뛰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연세대 멤버들과 가장 잘 맞았고, 즐거웠다. 당시 같이 뛰던 선배들이 좋은 지도자 되려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다 잘 됐으면 좋겠다."-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엉엉 울던 기억도 난다."선수 생활 중 유일하게 울었던 때다(웃음). 대학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이후 10여 년 동안 중국에 지다가 결승전에서 처음 이겼다. 중국전에서는 늘 나한테 거는 기대가 컸기에 뭐랄까, 숙제 못 해서 만날 혼나다가 마침내 속시원히 해결한 느낌? 가장 기억에 남고 행복한 우승이었다."- 최고의 시절이 있던 반면 2011-2012 시즌에는 부진한 성적(LG 7위), 이혼 등 사생활 문제로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여러 일들이 많았다. 농구의 밸런스가 깨졌고, 올 시즌에도 영향을 미쳤다. 깨끗하게 잊고 싶은 1년이었다. 그래도 그런 일들을 통해 스스로 많이 돌아보고 배웠다. 내 인생에는 큰 도움이 됐던 한 시즌이었다." -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은."농구만 하다보니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진 못했다. 다만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승부에만 집착해왔다. 이기고 지는 것에 모든 걸 다 바쳤고, 그 때문에 정신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제 승부에 대한 걸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좀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웃음)."수원=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2013.03.08 07:00
스포츠일반

서장훈, 마지막 시즌 선언 “1년치 연봉 모두 사회 기부”

프로농구 서장훈(38)이 부산 KT 유니폼을 입고 한 시즌만 뛰고 은퇴한다. 서장훈은 21일 서울 신사동 KBL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년만 뛰고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서장훈은 은퇴 결심과 함께 "내년 시즌 KT에서 받는 연봉 1억원에다 개인적으로 1억원을 더 보태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시즌은 내 농구 인생에서 최악이었다. 이렇게 끝내면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에 자신이 없어 1년 더 뛰고 싶다"며 "기회를 준 KT 구단과 전창진 KT 감독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달라."팀도 옮겼고,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먼저 여러가지로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KT 구단과 전창진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하겠다고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고, 스스로 말을 아끼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보겠다. 두 가지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는1년만 뛴다. 내 마지막 시즌이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 2012-13시즌 끝나면 은퇴한다. 둘째는 KT에서 받는 연봉 1억원과 제 개인 돈 1억원 보태서, 그동안 농구를 하면서 얻은 많은 것들을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차원에서 2억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 기부할 곳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고민해본 결과, 모교인 연세대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서 2억원을 기부할 생각이다. 농구를 한 사람이기에 유소년 농구 선수를 위해서 조금 할 일이 있다면 KBL과 협의해서 나중에 또 방안을 찾아보겠다."-은퇴를 미리 밝힌 이유는, 바뀔 가능성은 없나."원래 계획은 이번 시즌이 끝나면 은퇴할 마음먹었다.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은퇴할 생각이었지만 악몽 같은 시즌이었고,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또 하고 싶었던 것은 마지막 해는 내 스스로를 위해서라 아니라 봉사한다는 의미로 뛰어보고 싶었다. 1년 더 연장했을 뿐이다. 이제 1년 있으면 우리 나이로 40이 된다. 잘한다 하더라도 더 뛰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1년을 더 뛰게 됐는데, KT에서 주전이 아닐 수 있다."지금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답은 간단하다. 내가 열심히 해서 잘한다면 많이 뛸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많이 못 뛸 것이다. 내 스스로에게 달린 것이다."-옛날에 서장훈의 노장론은 유효한가. 노장이 더 잘 하면 후배보다 더 많이 뛰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나. "지금 제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의미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까 말한대로 내 스스로 하기 달렸다. 마지막 해라고 미리 밝혔기 때문에 스스로 정신자세, 생각이 더 강해질 것이다. 말로써 이렇게 하겠다, 어떻게 하겠다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 스스로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는 문제인 것 같다."-명예회복을 위해 더 뛴다는 의미도 보인다. 1년 후에 국보센터가 없어지는데. 영구결번 한다면 어느 팀에서 받고 싶나."은퇴 이후의 예우나, 영구결번도 마찬가지이고, 전혀 그런 생각없다. 안 해도 관계없고, KT에 요구할 입장도 아니고, 개인적인 철학은 그런 것은 안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마땅히 할 데도 없다. 내가 뭐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은퇴 후 많은 사람에게 서장훈은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아직 은퇴한 것이 아니라 아직 그기까지 정리는 안 해 봤다.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 아직 정리 안 해봐서 모르겠다. 계속 기억할 만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전창진 감독과 어떤 이야기 했는지, 어떤 부분을 원해서 영입했다고 보는가."어떤 부분을 원해서 영입했다기 보다는, 내 입장을 많이 배려해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특별히 말씀한 것은 없었다. 잘해보자는 말 정도 하셨다." -KT 젊은 선수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겠는가. KT 선수들과 호흡은?"이 상황에서 내가 우승하겠다는 것도 코미디고, KT가 기존 멤버들이 3년간 좋은 성적을 냈다. 팀의 고유 문화가 있고, 시스템이 있다. 거기에 방해가 되지 않고, 도움이 되도록 항상 생각하고 노력할 것이다."-1년을 더 하고 싶은 의미는 무엇인가."이번 시즌 1년은 25년 농구 인생 중에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악몽 같은 시즌이었다. 1년을 더 하고자 했던 이유도, 제 평생이 농구 인생이었는데 남은 인생을 그런 악몽의 기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자신이 없었다. 1년 더 하기로 했다. 1년 더 하게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명예회복,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첫 번째 중요한 것은 내가 받았던 과분한 관심이나 얻었던 많은 것들을 조금이나마 마지막 해에 사회에 보답한다는 차원에서 뛰고 싶다. 보답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또 도저히 그런 기억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은 당장은 은퇴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지난 시즌 무엇이 힘들게 했나. 출전시간만은 아닐거로 보이는데."누구 탓은 안 하겠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 생각한다. 그런 상황 자체를 농구 시작해서 처음 1-2년 제외하고, 내 스스로 그런 상황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당황스럽고 힘들었다. 많이 뛰고 안 뛰고 차원을 떠나서, 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들이 내 스스로 납득이 안 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내가 부족한 탓이다. 지난 시즌, 나이를 먹어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짧게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내게 악몽이었다." - 다음 시즌을 준비할 때,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개인 성적, 팀 우승 등 어떤 것일까. "먼저 보답하는 차원에서 뛴다는 것이다. 1원도 안 받고 뛰겠다는 의미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뛴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명예회복, 팀을 위한 것은 그 다음이라고 본다. 내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뛰겠다." -지금 심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음, KT에서 뛰게 됐기에, 지금은 처져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아침에 KT 본사 가서 단장님 뵙고 인사했다. 진심으로 환영해주고, 따뜻하게 맞아주고, KT 구단과 전창진 감독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다. 언론을 피하고 혼자서 많이 고민하고,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생각도 많았다. 지금 딱 한마디로 말하기는 난해하고, KT에 고마운 마음, 여러 생각들이 겹쳐서 잘 모르겠다." -추승균과 정선민의 은퇴를 보면서 느낀 생각은."각자 개인만의 사정이 있기에, 나이가 같다고 단체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승균이하고는 통화도 하고, 얘기도 했다. 저 마다 사정이 다르기에, 뭐라고 얘기하기는 그렇다." - 은퇴를 생각한게 기량이 부족하다, 체력 부족이다. 열정이 식었다 등 이유가 있는가."내가 몸 담고 있는 농구계에서 그만 둘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농구계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은퇴할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1년 더 해보고, 내년 시즌 끝나고 팀을 또 옮기겠습니까."- 농구 스타일에 변화가 있을런지."나이 사십 다 돼서 농구를 새로 배울 수도 없을 거고, 워낙 유능한 감독인지라, 전창진 감독님에게 맡기고, 지도에 따르고, 기존 선수들에 잘 맞춰서 하겠다. 안 되면 나이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해달라." -이미지 변화가 있느냐. 코트 안에서 이미지 변화가 있을까. "다른 문제다. 농구 철학은, 경기를 하러 나가는 입장에서 내 마음과 태도는 종전과 똑같다. 농구 철학은 그만둘 때까지 그대로다. 농구는 버라이어티나 쇼가 아니다. 다만 뛰는 의미를 보답에 둔다는 말이다."한용섭 기자 orange@joongang.co.kr 2012.05.2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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