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두고 있는 서장훈이 깔끔한 수트 차림으로 농구공을 잡았다. 그는 평소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라며 인터뷰 사진을 따로 찍는 걸 꺼린다. 이번엔 큰맘 먹고 카메라 앞세 섰다고 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서장훈이 깔끔한 수트 차림으로 농구공을 잡았다. 그는 평소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라며 인터뷰 사진을 따로 찍는 걸 꺼린다. 이번엔 큰맘 먹고 카메라 앞에 섰다고 했다.
"나는 늘 똑같았다. 마지막 경기도 마찬가지다. "
프로농구 부산 KT의 센터 서장훈(39·207㎝)은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올 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날인 19일에 서장훈은 선수로서 마지막 정규리그 경기를 치른다.
지난 4일 서장훈을 KT 숙소인 수원의 올레 빅토리움에서 만났다. 그는 "거창한 은퇴식도 싫고, 영구결번은 생각조차 안 한다. 여느 경기와 다를 바 없는 그런 마지막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것조차 부담스럽다고 했다. 서장훈은 "은퇴 후 당분간 어디 조용한 곳에 숨어지내고 싶은 심정이다. 은퇴했다고 인터뷰를 여러 번 하면서 한 말 또 하는 것도 보기 좋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장훈 다운 '결벽증'이다. 그는 유독 깔끔한 성격으로 유명한데, 은퇴 역시 아주 깔끔하게 하길 바라고 있었다. "조용히 은퇴하기엔 농구를 너무 잘 한 죄가 크다"고 농담을 하자 "제발 조용히 보내 달라. 앞으로는 튀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게 꿈이다"며 웃었다.
-코트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만감이 교차한다. 팀 성적도 안 좋고(KT는 치열한 6위 경쟁 중이다), 올 시즌 많이 다쳐서 답답했지만 무의미한 마지막 1년은 결코 아니었다. 마지막 경기에도 평소처럼 뛸 거다. 눈물을 흘릴 지는 가 봐야 알 것 같다. 아직 실감 안 난다."
-그냥 한 시즌 더 뛰는 건 어떤가.
"무릎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더 뛰고 싶어도 못 뛴다. 무릎 하중을 줄이려고 1월부터 다이어트를 해서 10㎏ 넘게 체중을 줄였다. 나이 들어 하려니 힘들더라."
- 미리 은퇴 시기를 정하고 한 시즌을 보냈다.
"이례적인 일인데, 미국에서는 많이 있다고 한다. 우리 프로스포츠 문화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그게 나였을 뿐이다."
- '농구 선수 서장훈'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한 마디로 '아쉬움이 많은 선수'였다. '할 만큼 했다'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 진정성을 갖고 뛴 건 후회하지 않는다."
- 서장훈 하면 연세대 시절을 떠올리는 팬들이 여전히 많다.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농구대잔치에 처음 갔을 때 꿈만 같았다. 난 '까까머리 고등학생' 유망주였을 뿐인데 TV에서만 봤던 선배들과 코트에서 함께 뛰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연세대 멤버들과 가장 잘 맞았고, 즐거웠다. 당시 같이 뛰던 선배들이 좋은 지도자 되려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다 잘 됐으면 좋겠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엉엉 울던 기억도 난다.
"선수 생활 중 유일하게 울었던 때다(웃음). 대학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이후 10여 년 동안 중국에 지다가 결승전에서 처음 이겼다. 중국전에서는 늘 나한테 거는 기대가 컸기에 뭐랄까, 숙제 못 해서 만날 혼나다가 마침내 속시원히 해결한 느낌? 가장 기억에 남고 행복한 우승이었다."
- 최고의 시절이 있던 반면 2011-2012 시즌에는 부진한 성적(LG 7위), 이혼 등 사생활 문제로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여러 일들이 많았다. 농구의 밸런스가 깨졌고, 올 시즌에도 영향을 미쳤다. 깨끗하게 잊고 싶은 1년이었다. 그래도 그런 일들을 통해 스스로 많이 돌아보고 배웠다. 내 인생에는 큰 도움이 됐던 한 시즌이었다."
-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농구만 하다보니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진 못했다. 다만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승부에만 집착해왔다. 이기고 지는 것에 모든 걸 다 바쳤고, 그 때문에 정신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제 승부에 대한 걸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좀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