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대결에서 허정무(62)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의 '태권 축구'에 당했던 마라도나가 조 추첨에서 해묵은 악연을 갚았다.
마라도나는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조 추첨 행사에서 1, 2번 포트의 추첨을 맡아 한국과 아르헨티나를 같은 A조에 편성했다. 개최국 자격으로 1번 포트에 배정된 한국의 뒤를 이어 마라도나가 2번 포트에서 첫 번째로 아르헨티나의 이름을 꺼내 들자 장내에는 조용한 탄식이 흘렀다. 대진표 추첨을 진행한 차범근(64) 조직위 부위원장의 얼굴에도 난감한 기색이 어렸다.
반면 마라도나는 단상 위에서 자신이 뽑은 아르헨티나의 이름을 확인한 뒤 두 팔을 흔들며 솔직하게 기쁨을 표현했다.
전날 수원 화성행궁에서 열린 레전드간의 이벤트 매치에서 "마라도나의 기운을 받아 좋은 추첨이 있길 바란다. 잘 나오면 좋은 기운을 받은 것이고, 잘 안 나오면 역효과가 난 것"이라던 신태용(47)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이름이 불린 순간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국으로선 솔직히 썩 달갑지 않은 대진이다.
남미 예선을 4위로 통과하는 등 최근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르헨티나는 U-20월드컵 역대 최다 6회 우승에 빛나는 강호다. 여기에 잉글랜드와 아프리카의 다크호스 기니까지 더해졌으니 신 감독의 얼굴도 밝을 수만은 없다. 단번에 아르헨티나를 한 조에 묶어버린 마라도나의 '신의 손'이 야속한 이유다.
우승을 목표로 삼고 있는 클라우디오 우베다(48) 아르헨티나 감독은 "한국은 홈팀이다. 홈팀은 언제나 강하다"라며 "한국에 대한 정보가 현재로선 많지 않다. 홈에서 경기를 치르고 경기장 홈 관중의 응원을 받으면 더 강할 것이다. 우리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개최국과 한 조가 된 감상을 전했다. 마라도나가 A조에 아르헨티나를 뽑으며 기쁨의 세리머니를 펼친 것에 대해서는 "나도 기쁘게 생각한다"며 동감의 뜻을 표했다.
우베다 감독은 이어 "기니는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 복병이다. 잉글랜드는 항상 잘 하는 팀이다. 어려운 조라고 생각한다"며 만만치 않은 일정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가장 껄끄러운 상대로 숙적 잉글랜드를 꼽았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는 포클랜드 전쟁 등 역사적인 배경이 어우러진 전통의 라이벌 관계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도 같은 조에 묶여 전쟁같은 대결을 펼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