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주혁이 45세 짧은 생을 마치고 하늘로 떠났다. 고 김주혁은 지난달 30일 오후 4시30분께 서울 삼성동의 한 도로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구조 뒤 건국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식이 없었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오후 6시30분께 사망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0월 3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시신을 부검한 결과 부검의로부터 직접사인이 '즉사 가능 수준의 두부 손상'이라는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된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은 가능성이 낮다고 전했다. 빈소는 10월 31일 오후 3시부터 서울 현대아산병원에 마련되고 발인은 11월 2일 오전이다. 장지는 충남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가족 납골묘다. 불과 한 달 전 tvN '아르곤' 공식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흘 전 제1회 서울어워즈에서 수상하며 수상 소감을 건넸던 그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1998년에 SBS 8기 공채로 데뷔해 올해로 20년 차를 맞이한 베테랑 배우 김주혁의 인생을 되짚어 본다.
'고 김무생의 아들'
사진=드라마 `카이스트` 장면
원로 배우 고 김무생의 차남이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극단 '표현과 상상'에서 활동했다.
고 김주혁은 1993년에 연극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해 1997년 영화 '도시비화'를 통해 스크린에 입성했다. 1998년 SBS 8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하면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배우로 활약했다.
이후 SBS '카이스트(1999)'에서 명환 역을 맡아 대중에게 인상을 남겼다. 이후 MBC '사랑은 아무나 하나(2000)', SBS '라이벌(2002)' '흐르는 강물처럼(2002)'에 잇따라 출연했다.
스스로 꼬리표 뗀 고 김주혁 아버지의 반대로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김무생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떼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3년 영화 '싱글즈', 2004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등으로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뒤 2005년 SBS '프라하의 연인'으로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다. 이 작품으로 '2005 S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을, '제42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크게 발돋움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여러 장르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고 김무생의 아들'이 아닌 '배우 김주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에게도 인정받고 당당히 연기 생활을 이어 갔다. 이후 2005년에 부자 동반 CF를 찍었고,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자가 함께 찍은 작품이 됐다. 당해에 고 김무생은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