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SNS가 일상이 된 요즘,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건 사고 뉴스를 접한다. 그러나 유독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시선은 기이할 정도로 비틀린다. 대중은 가해자의 범죄를 비판하기보다 “왜 하필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느냐”, “평소 행실이 어땠느냐”며 오히려 피해자에게 원인을 돌리곤 한다. 이른바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 현상이다.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과 부를 누리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사이버블링이나 스토킹 같은 범죄에 노출되었을 때 가장 잔인한 2차 가해를 견뎌야 하는 모순적인 위치에 있다. 이들을 향한 집단적인 비난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우발적인 악플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심리적 방어 기제, 한국 사회의 잣대, 그리고 법의 사각지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만들어낸 거대한 폭력이다.
심리학에는 ‘공정한 세상 가설’이라는 이론이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혼란을 싫어하며, 이 세상이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돌아간다고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고한 유명인이 끔찍한 범죄를 당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보면, 사람들은 마음속의 불안감을 덜어내기 위해 “피해자에게도 뭔가 그럴 만한 이유나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며 억지로 상황을 합리화하고 피해자를 깎아내리곤 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개인의 ‘도덕성’과 ‘능력’을 하나로 묶어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서구권에서는 유명인의 사생활 논란과 직업적 능력을 분리해서 보는 편이지만, 한국에서는 다르다. 피해자가 대중이 기대하는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하고 순결한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즉각 연민을 거두고 등을 돌린다. 명백한 범죄 사건 앞에서도 가해자의 폭력성보다 피해자의 과거 행실이나 태도가 더 가혹한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이유다.
여기에 수사기관의 잘못된 관행까지 더해지면 비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고(故) 이선균의 죽음은 사법기관과 언론, 그리고 사이버 렉카가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의 전형이다. 내사 단계부터 수사 정보가 유출되어 범죄 혐의를 차분히 다루어야 할 수사 절차는 본질과 무관한 사생활 생중계와 잔혹한 여론재판으로 변질됐다.
연예인을 향한 피해자 비난이 남기는 가장 끔찍한 해악은, 비슷한 상황을 겪는 평범한 피해자들을 위축시켜 입을 닫게 만드는 ‘침묵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막강한 자본과 소속사의 보호를 받는 연예인조차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하고 마녀사냥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범죄 등에 노출된 비연예인 피해자들은 세상에 목소리 내기를 포기해 버리기 쉽게 된다.
어떤 범죄든 그 책임과 원인은 오직 가해자의 잘못된 의도와 폭력성에 있을 뿐이다. 어둠 속에서 힘겹게 용기를 내어 입을 연 피해자에게 “왜 그곳에 있었느냐”, “왜 이제 와서 떠드느냐”고 묻는 것은 가해자의 칼을 대신 쥐어주는 잔혹한 폭력이자 왜곡된 권력이다. 누구도 완벽한 피해자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 역시 없다. 상처입은 자가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진정한 인간적 진보도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노종언 변호사(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