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구속만큼 문제로 지적되는 건 제구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의 일본전 히든카드로 주목받았던 구창모(26 NC 다이노스)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구창모는 7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열린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와 WBC 본선 대비 마지막 평가전에서 3분의 2이닝 2피안타 2실점 부진했다. 선발 박세웅에 이어 대표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를 밟아 힘겹게 아웃카운트 2개를 책임졌다. 결과와 과정 모두 좋지 않았다.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건 볼넷 2개였다. 구창모는 선두타자 시마다 카이루를 풀카운트 볼넷으로 내보냈다. 볼카운트 2볼-2스트라이크에서 슬라이더 2개가 연거푸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다. 후속 사카모토 세이시로 타석에선 첫 3구가 모두 볼이었다. 결국 3볼-1스트라이크에서 직구가 크게 빠져 두 타자 연속 볼넷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구창모는 희생번트와 헛스윙 삼진으로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하지만 2사 2·3루에서 오바타 류헤이에게 2타점 적시타, 후속 모리시타 쇼타에게 2루타를 맞고 강판당했다. 이날 경기를 문자 중계한 야후 재팬에 따르면 구창모의 직구는 대부분 140㎞/h 초반에 형성됐다. 시마다 타석에서 던진 2구째 직구는 138㎞/h에 불과했다. 정규시즌에 보여줬던 150㎞에 이르는 빠른 공과 거리가 멀었다.
7일 오사카돔에서 열린 WBC 한국 대표팀과 일본 한신 타이거즈의 연습경기. 3회말 교체 투입된 한국 구창모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제구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다. 투구 수 23개 중 절반에 가까운 11개가 볼이었다. 결정구가 대부분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났다. 4구째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다카야마 슌을 제외하면 한신 타자들의 헛스윙은 하나도 추가되지 않았다.
평가전의 특성상 전력으로 투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제구는 다른 문제다. 특히 WBC가 KBO리그 공인구와 다른 롤링스사 제품을 사용, 투수들의 적응력이 강조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허투루 보기 힘든 부분이 있다. 롤링스사 공인구를 잡아본 투수들은 한결같이 "(KBO리그 공인구보다) 크고 미끄럽다"고 말한다. 솔기 높이도 낮아 손에서 잘 빠진다. 구창모도 미국 애리조나 캠프부터 이 부분을 우려해 공인구 적응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완전하지 못한 모습이다.
구창모의 부진은 대표팀의 대형 악재다. 구창모는 당초 1라운드 두 번째 경기인 한·일전 선발 등판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빠른 공을 던지는 수준급 왼손에 디셉션(투구 시 공을 숨기는 동작)이 좋고 팔 스윙까지 짧다. 김광현(SSG 랜더스) 양현종(KIA 타이거즈)과 비교했을 때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아 전력 노출도 그만큼 적다. 김경문 전 국가대표 감독은 "(이번 대회에선) 구창모 같은 선수의 비중이 크다. 창모는 이야기만 듣고 만나는 거 아닌가. (전력 노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좋은 카드로 쓰이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여전히 일본전 등판 가능성이 크지만 안정감을 찾지 못해 쓰임새가 애매해졌다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김광현은 8일 공식 훈련을 마친 뒤 "공 하나만 잘 던져도 투수는 언제든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 분명히 이겨낼 거라 생각한다"며 구창모를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