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고래싸움’에 반사이익을 기대했던 한국 배터리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미국 포드자동차가 세계 1위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과 합작사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당국이 기술 유출을 막겠고 나선 형국이라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북미 시장에 적극 진출한 한국 배터리사들이 포드-CATL 합작사 설립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포드가 CATL 합작으로 35억 달러(약 4조5000억원)를 투자해 미시간주에 리튬인산철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중국 당국이 CATL의 핵심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포드와의 합작 계약 내용을 조사하기로 했다.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CATL의 기술이 미국 회사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중국 고위 지도자들은 미·중 간 지정학적 긴장과 이번 협상의 민감성 등을 고려해 고강도 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 합작법인과 달리 미시간 공장은 포드가 지분 100%를 갖는 형태로 설립된다. CATL은 기술을 지원하는 식으로 공장 운영에만 참여한다. IRA를 우회하기 위해서다. IRA에 따르면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부품이 일정 비율 이상 들어간 배터리를 탑재해야 한다.
또 IRA는 중국을 겨냥해 해외 우려 기업이 만든 배터리는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그러나 포드의 미시간 공장은 CATL이 자본을 투입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IRA의 혜택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포드와 CATL 합작사 설립 소식은 분명 국내 배터리사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 IRA를 우회할 수 있는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중국 최고 지도부는 당국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을 예정이지만, 조사 세부 일정이나 방식 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기술유출’ 우려가 있다지만 이미 실무차원에서 한차례 조사가 이뤄진 상황이라 계약이 무산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4조원이 넘는 금액이 들어가는 사안이라 포드가 사전에 IRA를 충분히 고려해 합작사를 설립할 가능성이 크다. IRA 가이드라인이 3월 말에 나올 예정이라 어떻게 적용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미 시장에서 GM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포드는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전기차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GM이 LG에너지솔루션, 포드가 SK온과 손을 잡고 전기차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시장 2위로 쫓는 입장인 포드는 중국의 1위 업체까지 손을 내밀어 전세 역전을 벼르는 형세다.
포드는 IRA의 관련 규제를 피하기 위해 건물 등 공장 지분을 100% 소유하고, 포드 소속 노동자들이 배터리를 생산하며 대신 CATL이 관련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IRA는 중국과 연관된 광물 등 원료·소재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는 전기차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 합작사 설립과 관련해 당국의 제재 대상이 된 미국인들이 이번 합작 계약에 관여하고 있는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중국의 제재 대상으로는 윌버 로스 전 상무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참모진, 보잉과 레이시온 경영진 등이 포함돼 있다.
포드는 이와 관련해 "이번 합작 계약에 대한 중국 정부의 어떤 조치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