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의 정주리 감독과 주연 배두나, 김시은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소희가 대체 누구기에.
‘다음 소희’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충격적인 이야기다. 콜센터로 현장 실습에 나갔던 여고생 소희(김시은 분)가 각오했던 것보다 더 잔인한 사회생활에 내몰리면서 점차 절망하는 과정이 1부, 그리고 그의 비극을 따라가는 형사 유진(배두나 분)의 이야기가 2부처럼 구성돼 있다.
소희는 본래 할 말을 할 줄 아는 아이였다. 술집에서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쏘아붙이고, 납득되지 않는 일에는 설명을 요구하거나 욱할 줄도 아는.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해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모든 외침은 결국 무력감만 안길 뿐이다. 그것은 절망과 고립의 시작이다.
개인은 홀로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 마치 꽉 짜인 틀 같은 사회는 개인의 문제제기가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일 정도로 집요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문제에서 눈을 돌리기 일쑤고, 결국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에겐 “원래 별난 애였어”,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지”라는 날카로운 말이 향한다.
‘다음 소희’는 이렇게 사회가 문제의식을 가진 한 명을 고립시켜 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그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과장하는 것 없이 현실을 그려나가고, 그래서 더욱 보는 이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도희야’(2014)로 날카롭고 섬세한 연출력을 보여준 정주리 감독은 이번 ‘다음 소희’에서도 특유의 섬세함으로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낸다.
신예 김시은은 날것 같은 존재감으로 영화 초반부를 집어삼킨다. 당차고 활기 넘치던 고등학생이 점차 꺾여가는 감정의 낙차를 표현하는 김시은의 연기는 지나칠 정도로 살아 있어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을 보는 것 같다.
배두나는 소희가 겪은 비극적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유진을 연기했다. 1부, 2부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배두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2부에 다다라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다 밀도 있게 꺼내놓는다. 관객과 함께 소희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듯 사건을 따라가다 끝내 울부짖게 되는 유진의 심경을, 배두나는 관록이 느껴지는 연기력으로 그려낸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을 산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될 때 관객들은 마침내 이 영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아채게 된다. 나만 지키면 된다는 안일함이 때로 얼마나 날카로운 흉기가 될 수 있는지. ‘다음 소희’는 어쩌면 현실 속 소희에게 눈을 돌림으로써 계속해서 ‘다음 소희’를 만들어온 사회에 대한 서늘한 경고일지 모른다. 15세 관람가. 138분. 2월 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