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패션 부문이 최근 1년 사이 신규 브랜드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까지 해외 브랜드 판권을 수입하는데 집중하고, 자사 브랜드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모습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신임 대표이사 체제가 자리를 잡았고, 리오프닝 이후 패션 업계가 살아나기 시작하자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브랜드 론칭에 고삐를 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쏟아지는 신규 브랜드
삼성물산 패션 부문(삼성물산)은 이달 초 젠더리스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 '샌드사운드'를 론칭했다. 브랜드의 출발점이 상당히 독특하다. 샌드사운드는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에 대한 갈증이 큰 '나가 놀고 싶은 20대', 이른바 Z세대(1990년대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에 초점을 맞췄다. 평소 꿈꾸던 여행지를 즐기고 음악을 감상하는 낭만을 디자인에 담았다는 설명이다. 첫 컬렉션의 주제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빅서로 떠나는 로드 트립으로 정한 배경이다.
이재홍 삼성물산 패션 부문 신사업개발팀장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자유와 도전을 좋아하는 Z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상품과 마케팅을 바탕으로 '함께 즐기고 함께 입고 싶은 브랜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지난 8월에도 신규 브랜드를 출시했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꾸리는 3040세대를 겨냥한 남성복 브랜드 '시프트G'다. 시프트G는 출근복과 일상복을 겸한다. 젊은 감성에 캐주얼 감각이 더해지면서 이른바 '유틸리티 워크웨어'로 고루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삼성물산이 남성복 브랜드를 출시한 것은 1995년 '엠비오' 이후 27년 만이었다. 남성복만 론칭한 건 아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가을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코텔로'를 선보이며 2019년 구호플러스 이후 여성복을 내놨다.
지속 성장 위한 포트폴리오 다각화
사뭇 의외의 행보다. 삼성물산은 2016년부터 성장이 멈춰 섰다고 판단되는 토종 브랜드 정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남성복 엠비오와 '빈폴 스포츠' '로가디스 컬렉션' 등이 문을 닫았다. 반면 '아미' '톰브라운' '메종키츠네' '르메르' 등 해외에서 '신명품'으로 불리는 브랜드 판권을 사들이는 작업은 계속했다. 삼성물산이 강남 등 요지에 선보인 매장은 자사 브랜드보다는 될성부른 해외 브랜드 소개의 장이거나 인큐베이팅 장소로 여기는 시선도 존재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이 '편집숍 대기업'이라는 오명을 얻은 배경이다.
해외 수입 브랜드는 마진율이 낮다. 기껏 홍보를 해놨는데, 판권 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을뿐더러 삼성물산이 아닌 병행수입이나 해외 직구를 통해 들어오는 물량도 고려해야 한다. 자체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해야 패션 대기업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진다. 업계는 삼성물산의 상징인 빈폴이 노후화한 가운데 젊은 세대에 초점을 맞춘 자사 브랜드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뚫으려는 의도로 풀이하고 있다. 이준서 부문장이 2020년부터 삼성물산 패션 부문을 이끌면서 조직이 안정 궤도에 접어들었고, 코로나19 영향권도 벗어나자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사 브랜드 론칭에 소극적이던 삼성물산이 지난해부터 신규 브랜드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며 "요즘은 이커머스 플랫폼도 자체 브랜드를 내놓는 판이다. 패션 대기업으로서 소비력이 큰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품을 자사 브랜드가 없다면 먼 미래를 내다보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물산이 새롭게 선보인 브랜드의 타깃층은 MZ세대에 몰려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해외 수입 브랜드인 신명품뿐만 아니라 신규 브랜드를 출시해 키워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고 있다"며 "오프라인 매장 오픈 등 확대 전략과 함께 포트폴리오를 고르게 가져가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