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40년 The moment] 연봉 싸움에서 시작한 최·선의 1987년 '퍼펙트 게임'
등록2022.09.10 15:00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프로야구사] 1987년 1천만 관중돌파 /IS포토(외부자료) 1. 1000만 관중 돌파 1987년 5월 19일 프로야구는 출범 6시즌(총 1648경기) 만에 누적 광중 1000만 명을 돌파,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이날 서울 잠실구장을 찾은 김오선씨가 1000만 번째 입장 기념 경품으로 프라이드 승용차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프로야구사] 1987년 선동열 /IS포토(외부자료) 2. 해태 "선동열 임의탈퇴" 압박 1986년 투수 최초의 3관왕(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을 달성한 선동열은 이듬해 국내 최고 연봉을 요구했다. 그와 라이벌 관계였던 최동원의 당시 연봉은 8000만원이었다. 선동열과 협상이 여의치 않자 해태는 1987년 3월 "선동열을 임의탈퇴하겠다"는 초강수를 꺼냈다. 결국 선동열은 백기를 들고 연봉 60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선동열은 1987년 31경기에서 14승 2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0.89를 기록했다. 최동원은 32경기에서 14승 12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81을 올렸다.
[프로야구사] 1987년 올스타전 선동열과 최동원 /IS포토(외부자료) 3. '최·선'의 퍼펙트 게임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전이 펼쳐졌다. 앞서 두 차례 맞대결에서 1승씩(1986년 4월 18일 1-0 선동열 완봉승, 8월 19일 2-0 최동원 완봉승) 주고받은 선동열과 최동원은 이날 연장 15회까지 완투했다. 총 4시간 56분 혈전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경기는 2-2 무승부. 선동열이 232개, 최동원은 209개의 공을 던졌다. 이 경기는 '퍼펙트게임'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됐을 만큼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영남-연세대(최동원)과 호남-고려대(선동열)를 대표한 두 투수이기에 더 그랬다. 선동열과 최동원의 선수 시절 세 차례 맞대결 성적은 1승 1무 1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선동열과 최동원이 1987년 올스타전 나란히 서군과 동군 투수 올스타에 뽑혀 풍선을 들고 나란히 웃고 있다.
[프로야구사] 1987년 삼성 전후기 리그 우승 /IS포토(외부자료)
4. 삼성 전·후기리그 우승 삼성이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석권했다. 팀 홈런 100개(총 105개)를 처음으로 넘겼고, 팀 타율 3할의 무시무시한 화력을 과시했다. 이 밖에도 팀 안타와 타점 등 타격 11개 부문에 걸쳐 시즌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한국시리즈(KS)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프로야구사] 1987년 해태 한국시리즈 우승 /IS포토(외부자료) 5. 해태, KS 첫 2연패 삼성의 기세를 꺾은 팀은 해태였다. '정규시즌의 왕' 사자를 '가을야구의 왕' 호랑이가 4전 전승으로 잡아냈다. 리그 최초로 2년 연속 KS 우승. 가을에 특히 강한 해태 왕조의 시작을 알렸다.
[프로야구사] 1987년 장효조 리그 MVP /IS포토(외부자료) 6. 장효조 생애 첫 MVP 상복이 없던 장효조가 타율 1위(0.387) 출루율 1위(0.461)와 함께 생애 첫 MVP를 차지, 1983년 신인상을 놓친 응어리를 풀었다. 장효조는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말을 있을 정도로 뛰어난 타격(통산 타율 0.331) 재능을 자랑했다. 타점 1위(76개) 홈런 2위(18개) 타율 2위(0.344)에 오른 이만수는 두 번째 MVP 수상 도전에 실패했다. 장효조가 1987년 다승왕(23승)이자 팀 동료 김시진으로부터 축하받고 있다.
[프로야구사] 1987년 이정훈 신인상 /IS포토(외부자료) 7. 이정훈 22경기 연속 안타 빙그레 이정훈이 6월 24일 OB 베어스전부터 8월 20일 삼성전까지 22경기 연속 안타 신기록을 작성했다. 입단 첫 시즌에 타율 0.335(3위) 출루율 0.405(4위) 도루 7위(20개)를 기록한 이정훈은 최우수신인상을 받았다. 구단 버스 앞에서 팀의 마스코트인 독수리처럼 타격 폼을 하고 있다.
[프로야구사] 1987년 김시진 최초 100승 /IS포토(외부자료) 8. 100승 달성한 김시진 김시진은 10월 3일 잠실 OB전에서 KBO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또한 정규시즌 23승 6패, 평균자책점 3.12로 2년 만에 다승왕을 차지했다. 김시진은 1987년 해태전에서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08로 강했지만, 정작 KS에선 해태에 2패를 당했다. 결국 그는 KS 통산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7패만 기록했다.
[프로야구사] 1987년 청보 해단식/IS포토(외부자료) 9. 태평양으로 새 출발 청보는 모기업 청보식품과 풍한방직이 1987년 4월 은행관리로 넘어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청보는 1987년 10월 태평양 그룹과 양도 양수계약을 체결했다. 태평양의 구단 명칭은 돌핀스로 확정했다. 청보는 2년 반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