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이스토리, KT스튜디오지니, 낭만크루 제공 “자폐라고 적혀 있다던데요. 보셨는데도 이런 신입을 받으신 겁니까. 저는 의뢰인 만날 수 있고 재판 나갈 수 있는 변호사가 필요한데 자기소개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저랑은 다르지 않습니까.”
ENA 수목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대형 로펌 한바다의 정명석(강기영 분) 변호사는 자신의 로펌에 새로 들어온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와 첫 만남을 가진 뒤 로펌 대표 한선영(백지원 분)에게 이 같이 말했다.
그랬던 정명석은 변화한다. 사건을 맡겨 보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 하면 내보내겠다던 정명석은 첫 사건에서 우영우에게 가능성을 본다. 소통하는 방법이 다른 것일 뿐 우영우가 의뢰인을 만나지 못 하거나 재판에 나갈 수 없는 변호사가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진=seezn(시즌) 제공 기존 장애인들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장애를 이해하지 못 하고 편견을 가진 캐릭터들은 주로 빌런으로 소비됐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은 빌런이 아니다. 등장인물 소개에도 정명석은 우영우의 ‘멘토’라고 돼 있다. 장애인과 사회에서 어울려 살 경험이 적다 보니 선입견이 생긴 것일 뿐 그러한 편견을 계속해서 끌고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맞닿아 있기에 더욱 공감을 자아낸다.
그간 자폐 스펙트럼은 여러 작품에서 사용돼 왔다. “백만불짜리 다리”라는 유행어를 남긴 영화 ‘말아톤’부터 인기에 힘입어 미국에서 리메이크까지 된 드라마 ‘굿닥터’까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이들의 비범한 재능을 다룬 작품은 지금까지도 왕왕 있었다. 장애로 그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하자면 시각 장애인이 비범한 초감각을 가진 무림 고수로 등장하거나 발달 장애인이 강력사건에 휘말리며 키플레이어로 부각되는 작품들도 다수다.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차별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영우는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이지만, 그것은 한바다 같은 대형 로펌에 취직할 수 있었던 개연성으로만 작용할 뿐 그 부분이 작품에서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또 우영우와 다른 차원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도 등장시키며 시청자들이 자칫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갖지 않도록 장치했다.
이 작품은 우영우가 김밥에 집착하는 이유, 회전문을 통과하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줌으로써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겉보기엔 남달라 보이는 이들이 비장애인들이 다수인 세상에서 한 명의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은 정명석처럼 우영우와 거리감을 좁히고 그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장애를 비범하거나 동정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영화 ‘니얼굴’과 궤를 같이한다. ‘니얼굴’은 발달 장애 캐리커처 작가인 정은혜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하지만 장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마켓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성실한 사회인으로서의 정은혜를 더욱 조명한다. 장애인도 충분히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담백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한 것.
서동일 감독은 “가급적이면 발달 장애인이 겪는 차별이나 무시, 소외 같은 감정들보다 정은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통해서 유쾌하게,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정은혜를 중심에 놓고 그가 가지고 있는 위풍당당함, 셀러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회적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니얼굴’은 장애를 ‘부족함’이나 ‘비범함’으로 포장하지 않고 그저 개인이 가진 하나의 특성으로 담백하게 묘사함으로써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부드럽게 무너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