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3개 대회에 출전하고 지난달 초 귀국한 최나연(32)은 2주간 집 바깥에 나가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입국자 방역 조치에 따라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집에만 머물렀다. 그래도 최나연은 "그동안 못 봤던 드라마, TV쇼를 다 봤다. 집 옥상에 연습장 매트와 망을 설치해서 하루 1시간씩 샷을 연습했다. 그나마 그 덕분에 버틸 힘이 있었다. 시간은 금방 가더라"고 말했다.
올해 골프계에서 화제를 일으킨 최나연을 프리미엄 골프월간지 JTBC골프매거진의 11월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만났다. 그는 전보다 좀 더 밝아지고 여유로워졌다. 중심엔 유튜브가 있다.
프로골퍼로 활약하면서도 최나연은 지난해 12월부터 유튜브 채널 '나연 이즈 백'을 운영하고 있다. 아마추어 골퍼들을 위한 팁 소개를 비롯해 스크린골프 대결, 이색 라운드 등 골프에 관한 다양한 콘텐트를 직접 선보였다.
반응이 뜨거웠다. 지난달 말 구독자수 11만 명을 넘었다. 유튜브 채널을 직접 운영하는 국내 프로골퍼 중에선 단연 톱이다. 20대 때 LPGA 투어에서 톱 클래스 골퍼였던 그는 30대가 되어 유튜브를 정복했다.
평소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나연 이즈 백'에 자주 나왔다. 치마를 잘 안 입기로 유명한 최나연은 유튜브에서 치마도 입었다. 라이브 방송 땐 유쾌하고 털털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의외의 인물들도 '나연 이즈 백'에 등장했다. 평소 절친한 관계인 가수 보아, 배구 국가대표 김연경과 함께 골프를 하는 모습은 많은 화제를 모았다.
최나연은 “유튜버로 더 주목받다 보니 요즘 주변에서 골프를 그만둔 줄 안다”며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린 것이 구독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골프에 임하는 자세를 진정성 있게 보여드리고,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서 하나둘 올리다보니 이렇게 커졌다”고 말했다. 편집은 전문 인력에 맡기지만 기본적인 콘텐트 기획, 촬영, 업로드 전 최종 검수는 최나연이 직접 한다. 그만큼 최나연의 모든 것이 유튜브 채널에 담겨있다.
최나연은 유튜브를 통해 삶이 달라졌다고 털어놨다. 골프를 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도 그를 일깨웠다. 최나연은 "유튜브에서 라이브 방송을 두 번 했다. 처음 할 땐 1000명 들어와서 봤다. 두 번째 방송은 평일 오전이었는데도 3000명이 넘게 들어오더라. 티샷할 때 3000명이 실제 갤러리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내가 대회에 한창 나갈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가 격리를 마친 뒤, 곧장 팬 미팅을 열어 팬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최나연은 골프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완벽주의자였다. 골프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때부터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에 입문해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다. 2005년 프로로 전향한 뒤 2008년 LPGA 투어에 진출했고, 10년 넘게 투어 생활을 해온 매 순간이 전투였다.
물론 성과는 다양하게 냈다. 고교 1학년 때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ADT 캡스 인비테이셔널을 우승했고, LPGA 투어에선 통산 9승을 거둬 상금 1000만 달러 이상(1086만9257달러·123억원)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고비가 왔다. 2015년부터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 악화로 투어 생활이 힘겨워졌다. 드라이버 입스(샷을 하기 전 나타나는 불안 증세)도 찾아왔다. 성적도 떨어졌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슬럼프였다.
2018년 4월, 최나연은 LPGA 투어에 병가를 냈다. 잠시 골프를 내려놨다. 그리고 선택한 건 동유럽 여행이었다. "현역 선수로서 시즌 중이었다. 그만두고 멀리 떠나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눈물도 많이 흘렸다"던 그는 골프 없이 혼자 하는 여행이 낯설기만 했다. 그게 최나연에겐 전환점이었다.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독일, 헝가리 등을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경험하고 마음을 치유했다. 그는 "골프장에서 걸으면서 봤던 잔디, 나무가 좋은 관광지에 가서 아무 계획 없이 본 자연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 매 순간이 좋았다. 얽매여서 살다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모든 게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왔고,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LPGA 투어에 복귀한 최나연은 예전보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내가 많이 알고 있고, 자신 있는 게 골프다. 그리고 유튜브도 계속하고 싶다. 내가 가진 정보를 많은 분과 공유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골퍼로서의 꿈도 잊지 않았다. '골퍼 최나연'의 모습을 조금 더 오래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는 "골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연 이즈 백’이라는 채널명처럼 다시 돌아오고 싶다. 우승을 하지 못 하더라도 최나연이란 이름이 사람들 입에 다시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