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오른손 신인 투수 소형준(19)이 조아제약 8월 MVP(최우수선수) 수상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이전에도 류현진(33·토론토)과 함께 거론될 때마다 그는 민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기에 선배님이라는 부르는 것조차 멋쩍어했다.
그러나 소형준은 앞으로도 류현진과 비견될 것이다. 그는 지난 12일 수원 한화전에서 6⅓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KT의 5-2 승리를 이끈 그는 개인 10승을 달성했다. 2006년 한화 루키 류현진이 역대 8번째로 기록한 뒤 13시즌 동안 후계가 없었던 '고졸 신인' 10승 투수가 된 것이다.
비범한 자질, 대찬 투구 그리고 신인답지 않은 배포가 닮았다. 의미 있는 기록에 차례로 이름을 올린 공통점도 있다. 팬들이 활약한 시공간이 다른 두 투수를 단순 비교하는 게 아니다. 류현진의 루키 시절을 추억하고, 소형준의 성장을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두 투수의 '데뷔 10승'을 비교하고 있다.
◈ 아홉수 없었던 소형준
류현진은 2006년 6월 8일 대전 SK전에서 1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데뷔 9번째 승리를 거뒀다. 6월 13일 삼성전에서 류현진은 5이닝 9피안타 6실점을 기록했다. 노 디시전. 18일 두산전에서 7이닝 2실점을 기록한 류현진은 8회 연속 피안타를 내준 뒤 마운드를 내려왔고, 한화 구원진이 역전을 허용했다. 당시 마무리투수는 구대성이었다. 2-2 동점에서 안경현에게 3타점 적시 2루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류현진은 6월 23일 청주 KIA전에서 8⅔이닝 1실점(비자책)을 기록하며 한화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2전 3기 끝에 10승 고지에 올랐다. 구대성이 세이브를 기록하며 후배의 승리를 지켜냈다.
소형준에게는 아홉수가 없었다. 2020년 8월까지 8승을 기록했고, 9월 3일 수원 SK전에서 5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9승 고지를 밟았다. 9일 만에 나선 12일 한화전에서 바로 10승을 거뒀다. 이강철 KT 감독이 6일 고척 키움전에서 불펜 투수를 선발로 내세우는 '오프너' 운영을 통해 그에게 휴식을 줬다. 충분히 쉰 소형준은 아홉수 없이 10승 고지에 올랐다.
◈리그를 흔든 수퍼 루키
류현진은 역대 신인 최소 경기 두 자릿수 승리 신기록을 경신했다. 10승을 거둔 KIA전은 그의 데뷔 14번째 등판이었다. 15경기 만에 10승을 거둔 1992년 염종석(롯데)의 기록을 바꿨다. 이 승리는 류현진의 전 구단(2006년은 8개 구단 체제) 상대 승리 경기이기도 했다. 그는 14경기 만에 7개 팀에 승리를 거뒀다. 더불어 리그 다승, 평균자책점(2.33), 탈삼진(111개) 부문 1위를 수성했다.
소형준은 18경기 만에 10승을 거뒀다. 류현진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비교적 빠른 페이스다. 승률은 0.667. 첫 5경기에서 4승을 거뒀지만, 6월 중순부터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졌다. 2주 동안 휴식기를 가진 뒤 다시 상승세를 탔다. 최근 7연승이다.
소형준은 아직 전구단 상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키움전에는 아직 한 번도 등판하지 않았고, 롯데와 LG전에서도 승리한 적이 없다. 6개 팀을 상대로 1승 이상 거뒀고, 두산과 SK를 상대로 3승씩을 챙겼다.
두 투수 모두 쟁쟁한 선배들보다 돋보였다. 소형준이 10승을 거둔 날, 다승 부분 공동 6위에 올랐다. 류현진처럼 1위는 아니다. 그러나 국내 투수 중에서는 가장 먼저 10승에 도달했다.
소형준은 탈삼진 63개를 기록 중이다. 소형준은 시즌 10승을 거둔 한화전에서는 한 경기 최다 탈삼진(9개)을 기록했다. 신인 시절 류현진은 시속 150㎞ 안팎의 강속구를 앞세운 파워 피처였다. 소형준은 투심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커터)을 주무기로 사용하며 맞혀 잡는 투구를 한다. 12일 현재 리그 국내 투수 가운데 땅볼 유도(141개)가 가장 많다.
프로야구 KT와 두산의 경기가 3일 오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렸다. KT가 선발 소형준의 호투에 힘입어 7-2로 승리했다. 경기종료후 이강철 감독과 승리투수가 된 소형준이 하이파이브 하고있다. 수원=정시종 기자 jung.sichong@joongang.co.kr /2020.06.03. ◈에이스가 에이스를 이끌다
두 투수는 프로 입단 후 훌륭한 선배들을 만나 성장했다. 류현진은 구대성으로부터 체인지업을 배웠다. 그의 야구인생의 궤적을 바꾼 구종으로 꼽힌다. 소형준은 휴식기 동안 커터를 연마했다. 우타자 기준 몸쪽으로 휘어지는 투심 패스트볼과 바깥쪽으로 꺾이는 커터가 뛰어난 조합을 이루고 있다.
남다른 학습 능력도 둘의 공통점이다. 류현진의 능력은 메이저리그(MLB)에서도 화제가 됐다. LA 다저스 시절부터 한솥밥을 먹던 투수 로스 스트리플링은 "누군가는 커리어 내내 커터를 연마한다. 류현진은 하룻밤에 배웠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체인지업이 류현진을 KBO리그 최고의 투수로 만든 공이라면, 커터는 MLB 정상으로 이끈 구종이다.
소형준도 짧은 시간에 커터를 연마했다. 외국인 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 윌리엄 쿠에바스에게 그립을 배웠다. 류현진에게서는 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소형준은 "투구 영상을 보며 (커터를) 던지는 느낌을 참고했다"고 했다.
미래의 에이스를 만든 건 현재의 에이스들이었다. 류현진은 "구대성 선배에게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배웠고, 송진우 선배에게는 제구력과 몸 관리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말했다. 당시 한화의 투수코치는 고(故) 최동원이었다. 한국 야구 레전드들이 기술과 멘탈을 잡아줬다. 류현진도 자신의 야구인생 최고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소형준에게도 탁월한 안목으로 기회와 믿음을 준 이강철 감독과 박승민 코치가 있다. 선배이자 룸메이트인 선발투수 배제성도 평소 자신이 생각하는 마운드 위에서의 마음가짐을 조언했다. 소형준의 포커페이스는 배제성에게서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