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한국시각) 신시내티전에서 선발로 등판한 김광현이 역투하고 있다.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이 메이저리그(MLB) 데뷔 후 최고의 피칭으로 감격적인 첫 승을 거뒀다.
김광현은 23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신시내티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 6이닝 3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세인트루이스가 3-0으로 이겨 김광현은 승리 투수가 됐다. 그의 평균자책점은 3.86에서 1.69로 크게 낮아졌다.
앞선 두 차례 등판에서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던 김광현은 이날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낮게 깔리는 포심 패스트볼 제구가 특히 돋보였다. 이로 인해 그의 주무기인 슬라이더도 위력을 더했다.
김광현은 3회 초 2사까지 8명의 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했다. 9번 타자인 타자 카일 팔머에게 첫 안타를 맞았지만, 2사 1루에서 조이 보토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득점권으로 주자를 내보낸 것도 한 번뿐이었다. 5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제시 윈커에게 좌중간 2루타를 맞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광현은 커트 카살리를 3루수 직선타, 프레디 갈비스를 루킹 삼진을 잡아내며 위기를 잘 넘겼다.
김광현은 5회까지 투구수 74개만 기록하며 효율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6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선두타자 팔머에게 내야 안타를 허용했지만, 후속 세 타자를 모두 범타 처리했다. MLB 첫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 투구).
마무리 투수로 데뷔 시즌을 시작한 그는 7월 25일 피츠버그전에서 1이닝 2실점으로 '진땀 세이브'를 올렸다. 세인트루이스 선발진 붕괴로 인해 로테이션에 뒤늦게 합류한 그는 지난 18일 첫 선발 등판이었던 시카고 컵스전에서는 훈련용 모자를 쓰고 마운드에 오르는 등 긴장감을 떨치지 못했다.
신시내티전에서는 김광현의 강속구가 '칼 제구'까지 됐다. 앞서 시속 91.6마일(147.4㎞)에 그쳤던 포심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92.7마일(149㎞)까지 올랐다. 그의 빠른 공은 좌·우타자를 가리지 않고 바깥쪽 낮은 코스를 예리하게 찔렀다.
김광현은 좌타자를 상대할 때 바깥쪽 빠른 공을 먼저 보여준 뒤 슬라이더로 히팅 포인트를 흔들었다. 6번 타자 제시 윈터와의 2회 승부가 대표적이었다. 시속 89마일(143.2㎞) 패스트볼과 82마일(131.9㎞) 슬라이더를 연달아 던져 2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이어 가운데 낮은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을 솎아냈다. 윈커는 이 경기 전까지 팀 내 OPS(출루율+장타율) 1위(1.119)를 기록 중인 타자다.
우타자와 맞설 때는 낮은 슬라이더를 좌우로 던진 뒤 바깥쪽이나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로 공격했다. 2회 1사에서 상대한 필립 어빈은 몸쪽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한 뒤 바깥쪽 높은 패스트볼로 범타를 유도했다.
이날 승부의 하이라이트는 '출루 머신' 보토와의 승부였다. 김광현은 컵스전에서 선구안이 뛰어난 앤서니 리조에게 볼넷 2개를 내주며 흔들린 바 있다. 그러나 MLB 최고의 선구안을 가진 보토에게는 지지 않았다.
김광현은 3회 2사 1루에서 좌타자 보토의 바깥쪽 낮은 코스로 시속 89마일(143㎞)의 패스트볼을 꽂았다. 볼카운트 2스트라이트-2볼에서는 존에서 벗어난 85마일(136.7㎞) 낮은 슬라이더가 보토의 배트를 끌어냈다. 체크 스윙으로 인정됐지만, 보토의 핸드-아이 코디네이션(hand-eye coordination·눈과 손의 협응력)을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김광현은 풀카운트에서 바깥쪽 높은 코스로 80마일(128.8㎞)의 느린 슬라이더를 던졌다. 보토의 배트가 나오다 멈췄다. 주심은 스트라이크 콜을 했다. 삼진을 당한 보토는 분개했다. 그러나 명백한 스트라이크였다. 김광현의 낮은 코너워크에 현혹돼 '출루 머신'의 오류가 생긴 것 같았다.
김광현은 1회 초 보토와의 첫 승부에서도 유격수 땅볼을 유도했다. 1볼에서 던진 바깥쪽 낮은 포심 패스트볼이 두 번 연속 헛스윙을 끌어냈다. 땅볼을 유도한 공은 91마일(146.4㎞) 낮은 포심 패스트볼. 김광현의 전략에 두 차례나 당한 보토는 6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초구(포심 패스트볼)를 공략했지만,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보토는 통산 1739경기에서 출루율 0.422를 기록했다. 내셔널리그 출루율 1위만 7번 차지한 '출루 머신'이다. 김광현은 그를 힘이 아닌 기교로 제압했다. 김광현의 제구가 잘 이뤄지자 신시내티 타자들은 섣부르게 배트를 내지 못했다. KBO리그에서 136승을 올린 베테랑 김광현은 초구에 커브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등 노련하게 경기를 운영했다.
김광현은 MLB 등판 세 경기 만에 가장 '김광현다운' 피칭을 보여주며 승리했다. 지난겨울 SK 구단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계약 기간을 채우기 전에 MLB에 진출한 그는 시범경기에서 무실점 피칭을 하며 '5선발'을 예약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캠프지와 세인트루이스에 고립되다시피 했다. 세인트루이스 구단과 동료들이 김광현을 딱하게 여길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주변에서 귀국을 권유하는 상황에서도 김광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간절하게 소망했던 MLB 무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기다리고, 준비한 끝에 그에게 기회가 왔다. 선발진에 부상자가 속출한 상황에서 선발 등판 두 경기 만에 멋진 승리를 따냈다. 김광현은 "꿈꾸던 무대에서 이겨서 기분이 좋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주고 싶다"는 소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