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기(70)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1970년대 한국 남자 유도 중량급 간판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남자 유도 무제한급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당시 주 체급인 라이트헤비급에서 4위에 그쳤다. 심기일전의 각오로 머리를 빡빡 밀고 출전한 무제한급에서 기어이 시상대에 올랐다. 같은 대회에서 대한민국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딴 레슬링 양정모에 가려 그의 동메달 스토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수’ 사이에서는 올림픽 도전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극기’ 스토리다.
도쿄올림픽 개막 D-150(25일)을 앞두고 조 이사장을 만났다. 14일 서울 송파구 국민체육진흥공단 집무실에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체육계도 뒤숭숭하다. 프로리그는 연기되거나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고, 각종 대회가 연기됐다. 일본도 도쿄올림픽 준비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래도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스포츠의 재정적 젖줄인 체육공단 수장인 그도 마찬가지다.
1m90㎝키의 다부진 체격과 강렬한 눈빛. 조 이사장은 무도인의 풍모가 여전하다. 외모에서 풍기는 위압감은 잠깐만 이야기를 나눠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선수 생활을 접은 뒤 체육학과 교수로, 스포츠 행정가로 차근차근 이력을 쌓은 그는 ‘선수 출신’에 대한 편견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론에서도, 실무에서도 탁월하다.
조 이사장에게 올림픽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무슨 얘길 하고 싶은지 묻자 ‘죽음의 냄새’라는 화두를 꺼냈다. 그는 “선수 시절 매일 2시간 동안 전력을 다해 훈련한 뒤 체중계에 오르면 100㎏이던 체중이 95㎏으로 줄어 있었다. 몸에서 땀 5ℓ가 빠져나간 것이다. 의사들은 인간 몸에서 7ℓ의 수분이 빠지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올림픽에 도전하는 선수들은 매일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훈련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죽음’을 거론한 건 ‘작은 차이가 메달 색깔을 바꾼다’는 믿음에서다. 그는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은 목숨을 내놓고 금메달에 도전한다. 남들과 똑같아선 차이를 내기 어렵다. 마지막에 웃으려면 남과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조 이사장이 말하는 ‘차이’가 무엇일까. 그는 두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우선 “정신이 바로 서야 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순신 장군 말씀 세 가지를 인용하겠다”며 “싸움에 앞서 ▶철저히 준비하고 ▶싸움이 시작되면 목숨을 걸고 ▶승부가 끝난 뒤에는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최선을 다하는 데 있어 ‘정보 활용’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상대를 파악하기에 앞서 자신의 컨디션과 신체 리듬을 완벽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이어 “선수의 컨디션 관리는 훈련시간뿐만 아니라 운동을 하지 않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선수마다, 종목마다, 신체 리듬은 서로 다르다. 자신의 리듬을 정확히 파악해 대회 일정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경기 당일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드는 게 중요할까 싶은데 조 이사장은 다른 얘기를 했다. 그는 “컨디션이 최고조일 때 경기에 나서면 오히려 자신감이 지나쳐 실수할 수 있다. 최고점에 살짝 못 미칠 정도로 리듬을 조정하는 게 유리하다. 일말의 긴장감이 집중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한 실전 팁도 소개했다. 그는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첫걸음은 ‘기록’이다. 한 번 운동하면 체중이 얼마나 변화하는지, 훈련한 뒤 느끼는 컨디션이 어떤지 꼼꼼히 기록해두면 그 모든 데이터가 분석 자료로 활용된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체육공단 산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KISS) 등이 스포츠 관련 데이터를 활용해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을 뒷바라지한다.
조 이사장은 『한비자』 ‘세림’편의 ‘노마지(老馬智, 늙은 말의 지혜)’를 인용해 체육공단과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노마지’ 내용은 이렇다. 고죽국을 정벌한 뒤 병사들을 이끌고 귀국하던 제환공은 큰 눈을 만나 길을 잃었다. 재상 관중이 길에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게 했고, 그 뒤를 따라가 길을 찾았다. 그는 “스포츠계 선배로서 여러 후배와 한국 스포츠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안내하는 늙은 말의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도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이 목표로 정한 ‘10-10’(금메달 10개, 종합 10위 이내)을 달성해야 2032년 올림픽 유치 가능성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에 조 이사장은 한 가지를 제안했다. 그는 “응원 구호 ‘화이팅(fighting)’은 ‘서구 열강과 싸워 이기자’는 뜻에서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만든 말이다. 올림픽이 도쿄에서 열리는 만큼 대체 용어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체 구호로 ‘으라차차’를 추천했다. 사전적 의미는 ‘힘겨운 상대나 상황, 대상을 마주하여 이를 이기고 극복하고자 할 때 힘을 모아 내지르는 말’이다. “으라는 소를 몰 때 쓰는 ‘이랴’가 변형된 말로 ‘가자’라는 뜻이고, 차차는 힘을 쓸 때 나오는 탄성으로 ‘힘내자’라는 자기 암시다. 으라와 차차가 결합해 ‘가자, 힘내자(go and cheer up)’라는 뜻이 완성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