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최초의 비 영어 영화의 최우수 작품상 수상까지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봉준호 감독.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독특한 장르 영화 감독에서 명실상부 전세계 영화계를 이끄는 뉴웨이브의 수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설국열차'와 '옥자'에서 이미 두 차례 한국 밖을 벗어나 더 넓은 영역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봉준호 감독이 이제 또 어디서 어떻게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지 모두의 관심을 모은다.
칸 영화제 인터뷰 당시부터 봉준호 감독은 차기작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그럴 때마다 변하지 않는 답을 내놓는다. 한국어 영화와 영어 영화 두 편의 시나리오를 쓰며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먼저 한국어 영화다. 서울에서 일어난 재난을 그리는 호러 액션극으로, 봉 감독이 2001년부터 구상을 시작해 벌써 19년째 준비돼온 작품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의 모든 영화의 장르가 애매하기에 공포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묘사하자면 호러 액션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모든 보행자가 같은 피부색을 가져야만 성립 가능한 설정"이라는 독특한 힌트를 남겨 기대감을 높였다.
영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일을 스크린에 담을 예정. 봉 감독이 2016년 CNN 뉴스에서 해당 사건을 보고 영화로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영어 영화이지만 그리 많은 제작비가 들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정도의 규모다. 점점 이야기가 다듬어지면 영화의 줄거리를 말씀드릴 시점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것은 아니나, '기생충'의 TV시리즈 재탄생 계획도 세워져있다. '빅쇼트' 아담 매케이 감독과 손잡고 HBO를 통해 '기생충' 시리즈를 선보인다. 봉 감독은 한 편의 영화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시리즈화를 결심했다고. 이에 대해 "'기생충'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꽤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개별 인물들에 대한 신을 상상했다. 예를 들어, 문광이 비 오는 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얼굴을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다. 영화는 이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다. 민혁이라는 인물과 연교 사이에 묘한 뉘앙스가 있다. 집을 건축한 남궁현자는 왜 문광에게만 지하실을 보여줬을까. 이런 스토리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2시간짜리 영화에서는 다 할 수 없다. 6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TV 시리즈를) 긴 시간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인터뷰에서 배우 크리스 에반스가 봉준호 감독을 향해 "나만 알고 싶은 감독"이라고 이야기해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처럼 할리우드 톱스타를 비롯해 전세계 영화인들의 러브콜을 받는 상황. 이를 지켜보는 많은 팬들은 봉준호 감독이 보다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배우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 애프터파티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자 르네 젤위거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공개되자 봉준호 감독과 르네 젤위거의 협업을 기대하는 팬들이 순식간에 불어나기도 했다.
'기생충'으로 영화 역사를 새롭게 쓴 봉 감독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영화 세계는 변함없이 굳건하다. 그는 "이 상으로 인해 내가 뭔가 바뀌거나 모멘텀이 돼 바뀌는 건 없다. 하던 것을 계속 준비하는 거다. 한국어 영화 하나, 영어 영화 하나, 시나리오 두 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