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일원으로 활약한 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그라운드를 누볐고,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끈 주역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3년에는 K리그1(1부리그) FC 서울 유니폼을 입고 한국 축구 팬들에게 강렬함을 선사했다. 2015년 현역 은퇴를 했고, 2018 러시아월드컵 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뒤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차두리의 충전의 시간이 끝났다. 다음 행선지를 결정했다. 차두리는 유소년으로 향했다. FC 서울 U-18팀 서울 오산고 감독으로 선임됐다. 의외의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차두리의 오산고 감독행에 놀란 팬들도 있다. '차두리라면 더욱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자리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문도 나왔다.
실제로 차두리의 선택지는 많았다. 차두리는 선수 때다 대표팀 코치 때나 따뜻한 '형님 리더십'을 선보이며 후배 선수들이 너무나 좋아하고 따르는 선배이자 코치였다. 대표팀 코치에서 물러난 뒤 몇몇 K리그1 클럽들이 차두리에게 코치 제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두리는 정중히 거절했다. 또 독일의 한 클럽이 코치 제안을 하기도 했다. 차두리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이 마저도 차두리는 고개를 저었다.
차두리는 오직 한 길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유소년'이다. 유소년 육성을 제외하고 그 어떤 일들도 차두리의 심장을 흔들지 못했다. 유소년을 향한 '무서운 집념'이다.
차두리가 왜 이런 집념을 가지게 됐을까. 그는 독일 등 축구의 선진국 유럽에서 10년을 넘게 활약했다. 그리고 한국 대표팀과 클럽에서도 뛰었다. 선진축구와 한국 축구의 차이. 곧 유소년의 차이였다. 차두리는 이를 피부로 또 머리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차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역시 유소년이었다. 차두리는 한국 축구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정답은 단 하나, 유소년이라고 항상 강조했다. 한국 축구 전체가 유소년에 더 투자해야 하고, 유소년에 집중해 발전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소년 발전 없이 한국 축구의 발전도 없다고 확신한 차두리다. 휴식 기간 동안에도 유럽으로 직접 날아가 유럽축구연맹(UEFA) 유스 챔피언스리그를 관전하는 등 유소년 공부에 집중했다.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가려는 차두리에게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하지만 유소년을 향한 무서운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차두리는 지금 유소년에 미쳐있다고 보면 된다. 다른 좋은 제안도 다 뿌리치고 유소년만 고집했다. 유소년이 발전해야 한국 축구가 발전한다는 철학이 확고하다. 차두리는 유소년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털어놨다.
유소년에 미친 차두리가 오산고를 품었다. K리그1의 또 다른 클럽 유소년팀이 차두리에게 감독직을 제의했으나 그는 고민 끝에 친정팀 유스팀을 선택했다. FC 서울은 차두리 감독이 독일에서 체득한 선진형 육성 시스템을 그대로 오산고에 녹여내 K리그를 대표하는 선도적 육성팀의 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산고가 유스 강호로 거듭나고 있는 과정에서 차두리 감독의 확고한 철학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