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인터뷰 / 사진=매니지먼트 숲 고민하지 않았고, 큰 부담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명확한 이해와 공감은 판단과 선택으로 이어졌다. 진정성은 흥행으로 보답 받았다. 누적관객수 300만 명을 넘어서며 가을 스크린을 휩쓴 영화 '82년생 김지영(김도영 감독)', 정유미(37) 필모그래피에 길이 남게 될 또 한 편의 대표작이다.
원톱 주연도, 그에 따른 홍보와 작품에 대한 책임도 꽤나 부담스럽게 느껴왔던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 앞에서는 오로지 작품이 먼저였다. "해야하는 것, 해도되는 것"이라는 한 마디가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정유미의 정답이다. 정유미는 성장한 배우 정유미의 가치를 꽤 의미있게 활용 중이다.
사회적으로 여성이 느끼는 차별을 아주 크게 경험한 적은 없지만, 심장이 '쿵' 떨어지거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이들은 너무나도 많이 봐 왔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감수해'라는 말은 '여자니까 받아들여'라는 폭력과 때론 크게 다를 바 없다.
논란과 갈등은 이제 무엇이 먼저인지 따지지 못할 정도로 뫼비우스띠처럼 하염없이 돌고 도는 모양새다. 하지만 분명한건 '82년생 김지영'은 어떤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시발점은 결코 아니라는 것. 제 몫을 120% 이상 해낸 정유미는 "다양한 시각의 긍적적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인터뷰 /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안 받았던 다양한 작품 중 '82년생 김지영'을 택했다. "이 작품을 제의 받았을 때 다른 여러 시나리오들이 있고, 결정하기 전에 고민했던 것들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간 배우들이 떼로 나오는 작품을 많이 했다. '내 깡패같은 애인' 제외하고, 홍상수 감독님 작품 제외하고, 상업 영화에서는 주로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해왔다. 그런 작품들이 재미있고 좋았다. 단독 주인공인 영화나, 두명이 주인공 영화들은 부담스러워서 피했던 이유도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은 아예 타이틀롤이다. "맞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내 성격상 더 피해야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자마자 그런 점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신기하게 부담도 없었다. '이건 해야겠는데?' 생각하고 선택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가 홍보를 힘들어 하는 스타일이다.(웃음) 주인공을 하면 그만큼의 책임감이 따르고, 부담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난 영화를 선택할 때 그 지점까지 생각한다. 근데 그것 역시 이 작품을 택할 땐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어떤 점이 그렇게 끌렸나. "지금 내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고 '내가 해야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상업적으로 이야기하면 '이젠 내가 이런 것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라는 배우도 어떤 바운더리 안에서, 작품 안에서, 내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할 수 있겠다' 싶더라. 무엇보다 영화를 볼 관객들이 '쟤가 왜 주인공을 해? 쟤가 누군데?' 그런 말을 듣지는 않을 시간이 오지 않았나 내심 기대했다."
-경험에 의한 성장같다.
"영화를 오래 하면서 예전에는 시나리오를 주셔서 나 역시 '하고 싶다' 했을 때 투자가 안 된 경우도 있었고, '조금 다른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마음에 말을 하면 '너무 유명해져서 출연시키기 부담스럽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런 와중에 '82년생 김지영'은 물리적으로 서로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오고 다가갈 수 있었던 작품인 것 같다. 제작진도 마찬가지고, 대중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인터뷰 / 사진=매니지먼트 숲 -원작 소설은 읽었나. "시나리오를 읽고 읽었다."
-영화는 소설과 사뭇 다르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할 수 있는 스토리를 그려낸 것 같다. 조금 더 희망적이라 좋았다. 사실 소설의 결말로 끝났다면 좀 힘들었을텐데, 힘든 것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제작진의 생각, 감독님의 마음도 같았다. 엄마보다 내가, 나보다 내 아이가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분명 있었다."
-원작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었고, 그 이슈는 영화로 고스란히 넘어왔다. "솔직히 그 정도로 이슈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못 했다. '어느 정도는 있겠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보다 더 엄청나게 있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더라. '과연 어떤 영화를 결정하고, '찍어요' 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스케줄대로 만나 리딩하고 촬영했다."
-원작 책을 읽은 후 이슈와 논란들이 왜 일어나는지, 현재의 현상에 대해 이해가 되기는 했나. "이성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다. 근데 이해해 보려고 하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 왜냐하면 우리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지만 같은 마음인 사람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표현한 사람들의 말 밖에 보지 않았다. 표현하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인터뷰 / 사진=매니지먼트 숲
-연기를 할 때, 늘 경험한 것들로만 연기할 수는 없지만, 현실과 맞닿아 있는 김지영은 나름의 고충이 더 있었을 것 같다. "소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소설의 텍스트는 감정의 디테일이 더 세밀하다. 약간 이해가 안 가거나 감정이 잘 안 잡힌다 싶을 때 소설을 자세히 읽었다."
-공감 포인트가 있다면. "감히 공감을 했다기 보다는 엄마 생각과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자잘 자잘하게 잊고 지냈던 엄마는 어떻게 보면 결국 나를 위해 희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너를 키우는 일이 나의 일이야'라고 하지만, 엄마도 분명 하고 싶은 것이 있으셨다고 생각한다.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것이고.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통으로 시간을 비울 수 없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다. 우리처럼 뭐든 해보고 싶고, 매일 친구가 만나고 싶은 것처럼 엄마도 그랬을텐데 그러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까 아프기도 했다."
-빙의로 표현되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병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순간 순간 지영의 감정에 충실했고, 지영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집중했다. 그래서 엄마, 외할머니를 연기할 때도 '감정 전달'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들과 똑같이 연기해야 해'라는 고민보다, 엄마가 보고싶은 마음, 딸이 보고싶은 마음을 떠올리며 최대한 단순하게 접근했다."
-엄마 김미경을 딸로 안아주는 신은 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원래 외할머니는 예수정 선생님이 연기하시지 않나. 선생님과는 만나는 장면이 없어서, 선생님께 따로 '대사를 한번만 읽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다. 놀랍게도 감정이 확 느껴졌고, 그대로 촬영했다. 다른 사람으로 표현 된다는 것 자체가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지영이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를 보면서, 할머니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쌓아왔던 감정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힘든 상황에 드러났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