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최대 성수기 여름시장 출격을 선언한 네 편의 영화 중 세 편이 공식 시사회를 통해 드디어 공개됐다. 15일 사극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를 시작으로 17일 코믹 '엑시트(이상근 감독)', 22일 오컬트 '사자(김주환 감독)'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친 대작들은 각기다른 장르로 다양성을 높였고, '보는 맛'을 뒤따르게 만들었다.
완성본 공개 전 사전 반응은 강자도 약자도 없었지만, 공개 된 후 반응은 꽤 엇갈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언제나 그랬듯 '100% 만족'이란 없다. 기본적으로 이전 여름시장들과 비교하면 '하향평준화 됐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작의 윤곽은 사실상 드러났다. 물론 최종 선택은 오로지 관객에게 달렸다. 이변과 반전 역시 관객의 몫이다. 관객의 선택이, 곧 결과다.
무엇보다 '라이온 킹'이 잡아 먹을 것으로 예측됐던 스크린에 여백이 생겼다는 점은 한국영화들에는 호재다. 흥행 자체는 청신호가 켜졌지만 그 이상의 신드롬급 화제성은 이미 물 건너간 모양새다. 때문에 한국영화 빅4를 기다리는 예비 관객들의 기대치는 조금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오랜시간 디즈니에 빼앗겼던 자리들을 하나 둘 되찾아 올 때가 됐다. 출연: 송강호·박해일·전미선 감독: 조철현 장르: 사극·드라마 줄거리: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한 사람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 등급: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110분 개봉: 7월 24일 한줄평: 그래서 어디까지 진실일까 신의 한 수: 흡족한 오프닝이다. 촬영 당시에는 특별히 의식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겠지만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현재 '나랏말싸미'가 그려 놓은 그 시절 일본의 행태는 코웃음과 통쾌함을 동반한다. 팔만대장경을 차지하기 위해 반 협박을 빙자한 온갖 염불은 신미스님(박해일)의 의미있는 등장을 위해 이용당한 꼴이지만 어느 한 장면 버릴 것이 없다. 신미스님이 일본 승려들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주옥같고,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자폭하며 꼬리를 바짝 세우는 일본 승려들의 절절함은 울컥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좋은 영화의 중심엔 좋은 배우들이 있다. 흥행 결과를 떠나 선택 자체를 납득하게 만드는 송강호의 행보는 이번에도 그 포인트를 명확히 짚어낼 수 있다. 매우 익숙하지만 늘 구미가 당시는 '세종대왕과 한글'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한글 창제에 미쳐있는 '한글 덕후' 세종대왕의 디테일한 단면은 송강호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캐릭터다. 실제 성불의 경지에 오른 듯 완벽한 불자의 형상을 띈 박해일 역시 매 순간 감탄을 자아내고, '대장부' 소헌왕후 전미선도 열정적이면서 따스한 연기를 남겼다. '나랏말싸미'에는 좋은 배우들과 더불어 좋은 대사들도 있다. 시나리오집을 사고 싶을 정도의 명대사 향연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글거림의 수위 조절도 적절하다. 무엇보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라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에 두고 그 시절 사대부를 강조하는 조선의 시대상까지 담아내며 시각적 스케일을 넓혔다. 한일스님의 맞대결부터 왕과 신하, 유교와 불교, 양반과 평민, 남편과 아내 등 다양한 의견대립을 통해 다소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깊이있는 무게감과 사극 특유의 영상미에서도 조철현 감독의 섬세한 손길이 묻어난다. '최선을 다했다'는 과정이 결과로 보여지는 작품이다. 괜찮은 이야기, 한 번쯤 볼만한 영화라는데 이견은 없다. 신의 악 수: 우리가 알고 있었던 한글 창제의 기본 상식을 뒤집는다. 이 스토리가 먹힐지, 어떤 영향력을 불러 일으킬지 미지수다. 한글 창제를 다루지만 집현전 학자들은 없다. 있지만 없느니만 못하다. 공의 주인은 때론 역사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누가 누구의 공을 가로챈 것인지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상 단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나랏말싸미'만 본다면 집현전 학자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도 할 말은 없다. 집현전 학자들도 없는 마당에 캐릭터는 또 많다. 이 또한 없느니만 못하다. 병풍으로 소모된 캐릭터가 한 둘이 아니다. 최대 빌런은 이변없이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양반이자 정치인들. 영화적 재미상 악의 무리들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늘어지는 분위기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한글이 위대한건 쓰고 있는 지금도 느끼고 있는 부분이고, 그만큼 어떤 고충과 고민과 수 많은 난제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문자인지 감히 헤아리기 어렵지만, 영화까지 그 어려움을 부각시킨건 아쉽다. 한글 창제 스토리를 다루는 영화지만 정작 '아, 그래. 역시 힘들게 만들어졌구나. 저랬을 수도 있었겠다' 외 특별히 남는 것이 없다. 애매하면 우연한 발견으로 정리하는 것이 끝이다. 오가는 전문 용어들 속 그들만 진지하고, 한글의 효용가치를 예로 들며 현대의 인터넷 용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퀀스는 굳이 필요했나 싶다. 나의 집중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 수면과의 싸움도 필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