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om 캡처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타자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는 발사 각도와 타구 스피드다. 선수의 가능성과 기량도 가늠하고, 성적 등락과 직접 연결시키며 단정 짓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과거에도 타자를 평가할 때 이런 기준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기술로는 수치화시키지 못했다. 눈대중으로, 일정 타자가 잠재적 파워에 비해 공을 들어 올리는(Lifting) 기술이 부족하거나 투구를 정확히 맞히지 못해 타구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으로 봤을 뿐이다.
패션에도 유행이 있듯, 야구 흐름에도 유행이 있다. 흔히 ‘약물의 시대’로 불리던 20여 년 전에는 배트 스피드가 주목받았다. 현지 방송사는 타자들의 이 지표를 측정해 이슈화에 성공도 했다. 최고의 홈런 타자였던 배리 본즈가 98마일(시속 157.7km)을 기록하며 가장 빠르게 측정됐다. 마크 맥과이어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눈으로 가늠하던 때, 가장 빠른 스윙을 인정받았던 게리 셰필드는 94마일(151.2km)을 기록하며 체면치레를 했다.
마치 배트 스피드가 타자의 능력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 흐름이었다. 그러나 2011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로베르토 알로마는 87마일(시속 140km)에 불과했다. 흔히 스카우트들이 말하는 ‘슬라이더 배트 스피드’로 인식됐다.
알로마는 빅리그에서 17시즌(2379경기) 동안 뛰면서 통산 타율 0.300를 기록했다. 거포 유형은 아니었지만, 홈런도 통산 210개를 쏘아 올렸다. 주 포지션에서 최고의 공격력을 인정받는 실버슬러거에도 네 번이나 선정됐다.
2007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토니 그윈도 마찬가지다. 20시즌을 뛰는 동안 여덟 번 타격왕에 올랐다. 통산 타율은 무려 0.338. 그윈과 양대 리그 최고 타자로 인정받았던 웨이드 보그스도 커리어 18시즌 동안 다섯 번이나 타격왕에 올랐다. 통산 안타 3010개, 타율은 0.328를 기록했다.
세 타자 모두 홈런 타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기량과 팀 기여도는 뒤지지 않았다. 모든 타자 홈런 타자가 될 수 없듯, 모든 타자가 3할 타율을 기록할 수 없다. 물론 베이브 루스, 루 게릭, 테드 윌리엄스, 조 디마지오처럼 높은 타율에 홈런도 많이 치는 타자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타자들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발사 각도와 타구 스피드가 수치화되면서 야구의 이해를 돕고, 흥미도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배트 스피드만 타자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할 수 없듯, 발사각과 타구 스피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과거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기술 덕분에 불완전한 시각에만 의존하던 정보를 수치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절대치는 아닐 것이다. 수학은 '1+1=2'라는 절대 불변의 수치가 나오지만, 야구는 그렇지 않다. 너무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5년 동안 꾸준한 성적을 내던 27세의 타자가 다가온 시즌에는 커리어 평균보다 떨어졌다고 가정하자. 다수는 이 선수가 슬럼프를 겪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특히 타구 각도와 스피드에 변화가 없다면 쉽게 단정할 것이다.
36세의 타자가 성적·발사 각도·타구 스피드 모두 떨어지면 노쇠화에 따른 하향세라고 볼 것이다. 그나마 두 지표에 변화가 크지 않다면 재기를 낙관할 수더 있다. 그러나 다른 문제인 경우도 빈번하다. 한마디로 절대적인 단정을 지을 순 없는 것이다.
야구에서 숫자는 필수 불가결이다. 그러나 모두는 아닐 것이다. 함부로 결론짓는 것은 자칫 한 면만 바라보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