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위해 커피숍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전면 금지한 지 석 달가량 흘렀다. 기대 반 걱정 반의 분위기 속에 시행됐던 정책이 현장에선 예상보다 빨리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다. 자발적으로 다회용 컵(텀블러)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노(No) 플라스틱'을 앞세운 커피 전문점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다만 설거지양이 늘어 인건비 등이 증가하면서 부담을 느끼는 영세업체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장 내 일회용 컵 No" "잠깐 앉았다 나갈 건데 일회용 컵에 주세요." "죄송합니다. 나가실 때 일회용 컵으로 바꿔 드릴게요."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커피숍 내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해 보려 했으나 단번에 거절당했다.
커피숍 종업원은 "일회용 컵을 사용하려면 바로 매장 밖으로 들고 나가야 한다"며 "매장 안에선 머그컵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장 내 다른 테이블을 살펴봤지만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손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커피숍 주문대에는 '매장 내 고객에겐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비치돼 있었다.
일회용 컵 사용을 사전에 금지한 곳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이날 서울 시내 커피숍 6곳을 돌며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해 보려 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이들 6곳의 매장 내 손님들 역시 일회용 컵 대신 머그잔이나 유리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날 매장에서 머그잔에 커피를 마시고 있던 고객 신우철(36)씨는 "과거에 비해 약간의 불편은 있으나 최근 플라스틱 수거 대란 문제가 있었고 일회용 컵의 환경 유해성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시행 초기만 해도 전국 커피숍 곳곳이 혼란에 빠졌지만 현재는 일회용 컵 대신 머그잔, 유리컵을 사용하는 모습이 완전히 자리 잡은 모습이다.
이와 맞물려 손님 자신이 직접 가져온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실제 스타벅스커피코리아의 경우 매장 내 사용 머그컵 발주율이 전년 동기 대비(6~9월) 약 5배 증가했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8월 1일부터 정부가 주요 커피전문점 내 일회용품 사용을 본격적으로 단속하고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아직 단속된 사례는 없지만 테이크 아웃 목적 외에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 사용이 적발되면 매장 면적과 이용 인원 및 적발 횟수에 따라 5만~200만원의 과태료가 사업자에게 부과된다.
'No 플라스틱' 속도 내는 커피 업계 커피전문점들은 일회용 컵 사용 규제가 빠르게 정착하자 '노 플라스틱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전국 매장에 연간 1억8000만여 개 규모로 공급되던 플라스틱 빨대를 11월부터 전면 종이 빨대로 교체하기로 했다.
9월부터 100개 매장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했던 종이 빨대에 대한 소비자 관심과 호평이 높았다는 것이 내부 평가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앞으로도 우리 환경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친환경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면서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 참여는 물론이고 고객과 지역사회의 동참을 이끌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엔제리너스커피 역시 빨대 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리드 컵' 도입과 함께 3년 안에 분해되는 소재의 빨대를 개발, 조만간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머그잔·텀블러 사용으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고객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커피를 즐기면서 환경 보호에도 앞장선다는 ‘가치 소비’에 좋은 기분을 느끼는 고객이 더 많았다”며 “‘착한 소비’가 대세가 된 상황에서 업계의 변화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규제의 그늘… 힘들어진 영세 업체과 아르바이트생 다만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영세 커피숍과 아르바이트생들은 힘겨워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명동에서 혼자 커피숍을 운영하는 A씨는 "친환경적 정책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큰 게 사실"이라며 "당장 혼자 카페를 운영하는 탓에 늘어난 설거지양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매출이 적다 보니 아르바이트생을 쓸 수 없다"며 "식기세척기를 쓰려면 넓은 주방이 필요한데 인테리어를 다 바꿔야 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부분의 소규모 카페는 주방이 비좁아 식기세척기가 들어가기엔 벅찬 구조다. 규모가 작은 카페일수록 손님이 앉는 테이블을 중심으로 인테리어를 구성하기 때문에 주방을 넓히기 힘들다. 어떻게 공간을 마련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식기세척기가 설거지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음료를 담은 컵에 '물때'가 생겨서 사람이 꼼꼼하게 닦아 내야 한다. 식기세척기로 초벌 세척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결국 사람이 다시 설거지해야 하기에 수고가 크게 줄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세척기는 유지 비용이 만만치 않다. A씨는 "대형 세척기를 쓰면 수도세가 한 달에 최소 5만~6만원 나온다"며 "세제값까지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커피숍의 아르바이트생 역시 정책 시행 이후 근무 여건이 더 나빠졌다고 호소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포털 사이트 알바몬에 따르면 카페 아르바이트생 1099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87.2%가 '플라스틱 컵 사용 규제 이후 일이 더 힘들어졌다'고 밝혔다.
응답자 중 53.6%는 '설거지 등 일이 더 많아졌다'고 답했고, 33.6%는 '일회용 컵을 요구하는 매장 내 손님들과 실랑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었다.
제도 시행 이후 특별히 달라진 점이 없다는 아르바이트생은 전체의 12.8%에 그쳤다.
이날 만난 한 커피숍의 직원은 "점심시간 같이 바쁠 때에는 손님들에게 포장 여부를 물을 겨를이 없어 일회용 컵으로 주기도 했다"며 "정부가 정책을 시행했을 때 아르바이트생과 개인 커피숍 사장들의 늘어날 업무량에 대해 고려했는지 궁금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