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인파 속에서 임창정(44)의 취중토크가 진행됐다. 오가는 취객에 정신이 하나도 없고 팬들의 악수와 셀카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임창정은 "여기가 내 집인데 내가 다 챙겨야죠"라며 인상 좋은 웃음으로 족발을 날랐다.
임창정은 최근 서울 강남 청담동에 모서리족발집을 개업했다. 부산에 있는 15년 단골집의 레시피를 그대로 사 와 만들었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먹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직접 개업했다"니 욕심쟁이가 아닐 수 없다.
그를 표현하는 수많은 수식어만 봐도 임창정의 욕심은 대단했다. 배우·가수·맛집 사장님·작곡가·가수 제작자시나리오작가 등 다섯 손가락에 꼽기 힘들 정도다. 노래·연기·예능 등 전 분야에서 1등을 섭렵한 '만능엔터테이너'로 다재다능한 끼를 감추는 법이 없다. 데뷔 이래 골든디스크 본상 2회를 수상했고,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인기상·최우수상을 섭렵했다. 최근 발매한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가을 음악 차트를 강타하며 데뷔 29년 차임에도 인기 아이돌 그룹들과 경쟁하는 '음원 강자'의 면모를 보여 줬다.
- 타고난 가수인데 데뷔는 연기로 했네요.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연기 학원도 다니고 오디션도 엄청 보러 다녔죠. 그러면서 심한 욕도 들었고 '공부나 해'라는 말에 상처도 받았어요. 그런데 연기 학원 실장님이 '너만큼 잘하는 사람은 없어'라고 믿어 주셔서 계속 꿈을 키울 수 있었죠. 그분 말을 믿고 다시 나가서 오디션을 봤던 게 영화 '남부군'이었어요. 운이 좋았어요. 대본을 한 줄도 읽지 않고 캐스팅됐거든요."
- 역할이 뭐였는데요. "'빨치산'이었어요. 얼굴이 까무잡잡해서 내가 봐도 딱이었어요.(웃음) 정지영 감독님이 나를 딱 보시고 조감독님에게 '잘 뽑았네, 연기 잘하던?'이라고 묻더라고요. 조감독님도 당장 내일모레 하는 촬영이 급하니까 '기가 막힙니다'라고 둘러대더라고요. 얼떨결에 첫 촬영에 나갔어요. 촬영장 숙소의 룸메이트가 안성기 선배님이셨는데 밤잠을 설쳤어요. 선배님 숨도 내가 대신 쉬어 드리고 싶을 정도였죠. 자고 있는 선배님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봤다니까요."
- 가수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서울에 상경하고 하숙집에서 살 때였어요. 어느 날 나를 너무 예뻐해 주는 엄기백 PD의 전화가 왔죠. 그 당시 이병헌과 함께 있었는데 빨리 연습실로 가 보라며 펑크 난 뮤지컬 주연 자리를 추천해 주셨어요. 노래를 잘하는 걸 아시고 시켜 주신 거죠. 그 뮤지컬 무대를 음반제작자가 보고 그 길로 앨범을 내게 됐어요. 복귀할 때도 창렬이의 힘이 컸죠. 목소리가 더 변하기 전에 해야 한다고 '아꼈다가 뭐 하냐, 이런 목소리로 노래를 안 부르는 것도 일종의 배임이다'라고 하더라고요."
- 연예계에 은인이 많아요. "배우도, 가수도 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날 믿어 준 연기 학원 실장님이 지금은 우리 아카데미 사업본부 대표님이에요. 엄기백 PD는 우리 엔터테인먼트 고문이사로 계시죠. 내가 요즘 시대에 연예인 한다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으면 절대 통과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이돌 틈에서 뽑힐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니라고 봐요. 얼굴도 까맣고 키도 작은데 뽑히기 어렵죠. 노래를 잘하는 주방장이 됐을지도 몰라요."
- 제작자로서 후배를 뽑는 기준이 있다면요. "내가 들었을 때 좋으면 돼요.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친구들이 엄청 많아요. 내 노래를 한 키 높여서 더 현란하게 부르죠. 그렇게 노래를 말도 안 되게 잘하는 친구가 많아요. 하지만 그 톤이 또 듣고 싶나, 아닌가에서 차이가 나요.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의미가 없어요. 어느 정도만 하면 그 사람의 냄새나 매력에 달린 거죠. 들어서 내가 좋고 또 듣고 싶으면 뽑을 거예요."
- 외모 기준은요. "안 봐요. 예전에 난 여드름도 많이 나고 눈으로 차마 쳐다보기 힘들 지경이었어요. 그럼에도 믿어 준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죠. 누군가 나를 믿어줬듯, 나도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2등이 터뜨리면 어마무시한 파괴력이 있다는 걸 믿어요. 2등 하는 친구들은 내게 와서 오디션을 봤으면 해요. 난 2등도 못 했지만 해냈거든요."
- 내년엔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다고요. "어릴 때부터 시와 일기를 쓰는 걸 좋아했어요. 내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쓸 거예요. 직접 출연도 할 생각이고요. 분명 재미있을 거예요. 내년 중순에 완성하는 것이 목표예요."
- 다양한 도전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나요. "게으르면 늙어요.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중요하죠. 무엇보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서 가능한 일이에요. 나보다 우리 회사 각 대표들이 더 바빠요. 족발집, 포차, 엔터, 아카데미 등 대표들이 다 따로 있거든요. 20년 이상 된 사이라서 알아서 다 잘해요."
-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 눈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되려고 사람들을 많이 관찰했어요."
- 사기는 안 당하겠어요. "예전에 사기도 엄청 당했죠. 관찰력은 있는데 사기당하는 건 별개더라고요. 피해 금액이 억원 단위예요. 끝까지 꼭 받아 낼 겁니다."
- 힘든 시기를 이긴 비결은요. "늘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생활비를 빌려서 살 때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어요. 남들한테 '너 어디 아프냐' 이런 말을 듣기 싫어서 힘들 때도 화장실에 가서 1분간 크게 웃고 나왔죠. 웃음은 연습하면 늘어요. 복은 웃는 자에게 간다는 것을 믿고요. 근데 그 웃음이 가식인지 진짜인지 복은 몰라요. 억지로 연습하고 웃어도 복은 분명 찾아갈 거예요. 쉽진 않지만 웃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 해요."
- 지금은 어떤가요. "정말 좋아요. 어려울 때나 지금이나 웃는 양은 같지만 지금은 진짜 웃음이거든요. 앞으로 힘든 일이 온다 해도 잘 웃을 거예요. 좌절했다고 해서 주저앉으면 진짜 웃을 날이 오면 창피해서 못 일어나요. 웃을 날에 대비해야죠. 그렇다고 샴페인을 터뜨리진 말고요. 안 좋은 일도 준비해 둬야 막상 닥쳤을 때 '너였냐. 하루만 아파할게' 하고 넘길 수 있어요. 엄청나게 어려운 일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 최종 꿈은 뭔가요. "살면서 갚아 가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를 속상하게 했다면 살아가면서 사과하려고 해요. 또 내가 받은 큰 사랑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싶어요. 남들이 보기에 '그걸 언제 다 써?'라고 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어서, 다 쓸 자신이 있어요. 사회에 돌려주면 되니까요. 생색 내며 재단을 차리자는 건 아니에요. 와이프 손을 잡고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곳을 찾아 돈을 가치 있게 쓸 거예요. 좋은 일을 했다는 걸 보여 줄 거예요. 네티즌이 하는 칭찬을 들으려는 게 아니에요. 나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과 팬들이 해 주는 칭찬이 내 원동력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