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황동혁 감독)'은 마치 오케스트라 같다.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조화롭다. 어떤 영화는 음악이 영상을 가리고, 누구 배우가 누구의 분량까지 잡아먹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마치 견고한 남한산성의 돌 하나 하나가 쌓여나가듯 조화롭게 '남한산성'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나간다.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황동혁 감독이 글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이병헌이 청과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 역으로, 김윤석이 청과 맞서자는 김상헌 역으로 분했다. 박해일이 힘 없는 왕 인조로, 고수가 평범한 백성을 대표하는 날쇠로, 박희순이 남한산성을 지키는 수어사 이시백으로, 조우진이 청의 편이 된 조선인 정명수를 연기했다.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진행된 제54회 백상예술대상 '백상후보작상영제(GV)-남한산성' 편은 다소 독특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다른 4편의 gV 행사에서는 주로 젊은 영화 팬들이 자리를 채웠는데, '남한산성'은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객석을 메웠다. 나이가 지긋한 한 관객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감격에 차 눈물을 흘렸고, 또 한 관객은 황동혁 감독의 말을 그대로 받아적으며 필기에 몰입했다. 황 감독의 연출 세계를 모두 끌어내보이려는 듯 수준 높은 질문이 이어졌고, 황동혁 감독은 관객들의 성원에 보답하듯 특유의 달변으로 천천히 답변을 해나갔다. 마치 강의실에 와 있는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하 황동혁 감독과 관객들이 나눈 일문일답.
-각 인물들의 뒷모습과 어깨로 보여지는 연출이 돋보인다. "영화 시작이 청의 대군을 맞이하는 최명길의 뒷모습이다. 그리고 궁으로 돌아가는 최명길의 뒷모습으로 끝난다. 뒷모습이 조금 달라보이길 바랐다. 청으로 갔을 때는 당당한 모습의 뒷모습이길 바랐고, 사건을 모두 겪은 최명길은 정적이었지만 유일하게 믿는 김상헌을 남한산성에 두고, 청에 머리를 조아린 왕을 살려서 돌아온다. 망가진 나라를 이끌고 나가야하는 책임이 그의 어깨에 얹혀 있다. 먼산을 보며 생각에 빠지는데, 시나리오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써놨다. 이병헌이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고 하더라.(웃음) 그래서 '남한산성에 남기고 온 김상헌을 떠올리고, 김상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의 의미를 떠올리는 최명길이지 않을까'라고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초라해보이고 힘든 뒷모습이다. 그런 차이를 두고 싶었다."
-김상헌의 변화에 고심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을 움직였던 캐릭터는 김상헌이라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변화를 경험한 캐릭터다. 다른 캐릭터는 큰 변화를 겪지 않는다. 김상헌은 처음 시작부터 사공을 자기 손으로 죽이면서 시작한다. 원죄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평민들과 접촉하면서 깨닫고 변화를 겪게 된다. 중간에 김상헌이 격서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할 때는 날쇠의 절을 받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날쇠에게 절을 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판타지가 담긴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하고픈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할만큼 중요했다."
-서날쇠 캐릭터도 변화한다. "서날쇠나 정명수는 뿌리가 같다. 그들이 겪었을 것은 뻔하다. 한 명은 넘어가서 나라를 배신하고, 한 명은 그럼에도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된다. 정명수의 '난 벼슬아치들을 믿지 않소'라는 대사는 제가 넣었다. 서날수 또한 김상헌과의 대화 속에 이미 그런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김상헌은 날쇠와 소통해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인물이다. 상헌을 믿기 때문에 날쇠는 격서를 전달하고 나중에 나루라는 아이를 맡기도 한다. 날쇠라는 사람의 작은 변화라면 변화일 수 있다."
-김상헌과 달리 최명길과 평민의 접점이 없는 이유는. "이유는 없다.(웃음) 원작이 그러했다. 최명길은 백성과 크게 부딪치는 장면이 없다. 사대부들은 사실 평민과 부딪칠 일이 크게 없었을 테다. 김상헌과 서날쇠의 이야기도 김훈 작가님의 만든 전작의 산물일 것이다. 고민했는데, 최명길에게도 무언갈 줘야하나 싶었는데 반복되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