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반세기 만에 재계 5위에 오른 롯데그룹의 성공 신화가 최근 연이어 불거진 각종 비리로 얼룩지고 있다. 작년에 창립 50주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문을 연 롯데월드타워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인허가 특혜 의혹으로 휘청이고 있고, 그룹의 주력 사업인 롯데면세점은 박근혜 정부 시절 특허권 재승인을 위한 로비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무술년 신년사에서 ‘뉴 롯데’를 외친 신동빈 회장이 바닥까지 추락한 그룹 이미지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주목된다.
‘껌’으로 시작해 반세기 만에 재계 5위
‘50년’. 2원짜리 껌을 팔던 롯데가 자산 규모 103조원, 매출 90조원, 재계 순위 5위, 계열사 94개를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걸린 기간이다.
롯데는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1967년에 일본에서 고국으로 건너와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한국 사업을 시작했다.
문학에 심취했던 신 총괄회장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이름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왔다.
롯데는 이후 1970년대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을 인수하며 국내 최대 식품 기업으로 도약했다.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차례로 설립해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ㆍ관광산업 현대화 토대도 구축했다. 1980년대에는 롯데쇼핑(백화점)을 개장하는 한편 롯데냉동도 설립했다. 또 1982년 야구단 롯데 자이언츠와 광고 대행업체인 대흥기획, 롯데물산 등을 출범시켰다. 2000년대에는 바이더웨이와 GS리테일 백화점과 마트 부문을 인수하며 명실상부한 ‘유통 1등 기업’임을 각인시켰다.
이후 롯데는 신동빈 회장을 경영 전면에 내세우며 석유화학 부문에 투자를 강화하고, 식품 부문은 해외시장 개척을 확대하는 등 새 먹거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신 총괄회장의 최대 숙원 사업인 롯데월드타워를 오픈하며 창립 50주년을 자축하기도 했다.
각종 비리에 정경유착 대명사로 ‘전락’
하지만 롯데의 성공 신화는 최근 연이어 불거진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퇴색되고 있다. 오히려 성공 신화에서 ‘정경유착의 대명사’ ‘적폐 기업’으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정경유착의 사례로는 롯데 50주년의 상징물인 롯데월드타워가 꼽힌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인허가 특혜 의혹이 불거지며 휘청이고 있다. 급기야 정치권과 시민들이 함께 국민감사를 청구한 상태다.
주력 사업인 롯데면세점 역시 박근혜 정부 시절 특허권 재획득을 위해 비선실세 최순실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동빈 회장은 오는 2월 13일에 법원의 첫 번째 심판을 받는다. 검찰은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여기에 오는 5월 사업권 재승인을 앞둔 롯데홈쇼핑 역시 로비 의혹에 휩싸여 있다. 검찰은 2013년 1월부터 작년 5월까지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회장으로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에 롯데홈쇼핑이 3억3000만원을 후원한 것을 두고 대가성 여부를 조사 중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앞서 2015년부터 불거진 형제 간 경영권 다툼과 총수 일가가 얽힌 각종 경영 비리 역시 롯데그룹이 그동안 쌓아 온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비리 덩어리’와도 같다”며 “설립부터 지금까지 정경유착 또는 시장에서의 불공정행위를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과거와 결별에 나선 ‘뉴 롯데’… 곳곳 암초
롯데그룹은 기업 이미지가 끝없이 추락하자 최근 ‘뉴 롯데’를 외치며 과거와 결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2일 2018년 신년사로 “주변과 항상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자”며 “경영 투명성을 갖추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자리 창출과 지속적인 투자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롯데가 될 것”이라며 “고객과 주주, 파트너사, 지역사회 등 주변 공동체와도 소통하겠다”고 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도 “롯데그룹은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지주사 출범과 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픈 등 굵직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새로운 50년을 향한 ‘뉴 롯데’의 원년을 마무리했다”면서 “올해에도 투명 경영을 강화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뉴 롯데 기치를 건 신 회장 본인은 롯데 경영 비리 의혹과 관련해 지난달 22일에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여기에 검찰은 지난달 28일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1심 재판부가 무죄로 본 부분과 형량이 가벼운 부분에 대해 다시 다투겠다는 취지다.
또 신 회장은 내달 13일 ‘최순실 게이트’ 재판도 받아야 한다. 검찰이 4년을 구형한 만큼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최악의 경우 신 회장은 실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이 경우 롯데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뉴 롯데’의 행보에도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의 경우 총수의 역할이 다른 곳보다 훨씬 중요한 기업”이라며 “신 회장이 실형을 받을 경우 ‘뉴 롯데’ 계획은 총수 부재라는 암초를 만나 방향키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