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언제나 치열하고 냉정한 승부의 세계다. 경기 때마다 말 한마디보다 더 많은 눈빛과 움직임이 오가는 세상인 만큼, 수훈 선수 인터뷰라도 하지 않는 한 목소리 한 번 듣기 어려운 사람들이 스포츠인들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찾아오는 인터뷰 때마다 재치 넘치는 언변을 자랑하는 선수들도 있고 기자회견에서 매번 날카로운 말솜씨를 뽐내는 감독들도 있다.
물론 가끔은 해선 안 되는 말로 스스로를 곤경에 처하게 하는 이들도 있다. 2017년 한 해도 마찬가지였다. 올 한 해 스포츠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빅마우스’를 돌아본다.
◇ ‘실언의 달인’ 된 슈틸리케 감독
“상대가 3톱으로 나왔다. 거기에 대한 해법으로 포백이 아니라 어떤 전술로 나갔어야 했을지 내가 묻고 싶다.”
“앞으로 팀 내부적인 상황을 외부에 발설하는 선수에 대해서는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다시 와도 2002년과 똑같은 성공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본다. 현실은 바뀌었다. 한국은 2002년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동국이 뛴다고 들었다. 그는 38세다. 그게 한국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 젊은 공격수가 없다. 한국의 철학은 수비 위주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간 선수 중 대부분이 수비수 아니면 수비형 미드필더다.”
울리 슈틸리케(63) 전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올 한 해 동안 했던 말실수 모음이다. 한때 ‘갓틸리케’로 불리며 대표팀 신뢰의 아이콘이었던 슈틸리케 감독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 돌입하면서 급격하게 불신의 대상이 됐다. 불안한 경기력과 아쉬운 결과 그리고 여기에 더해 슈틸리케 감독 본인의 말실수까지 연달아 겹치면서 결국 올해 6월에 경질되고 말았다. 재임 기간은 2년 9개월로 대표팀 역대 최장 기간을 기록했으나 한국을 떠난 뒤에도 연이은 실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중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의 ‘유체 이탈 화법’은 매번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슈틸리케호를 발칵 뒤집어 놨던 지난해 10월 “우리에겐 세바스티안 소리아(34·카타르) 같은 선수가 없다”는 발언은 시작에 불과했다. 올해 3월, 중국 창사에서 열린 최종예선 6차전 중국 원정에서 0-1로 패한 뒤 ‘무전술 논란’에 대한 지적을 받고 발끈한 그는 “어떤 전술로 나갔어야 했을지 내가 묻고 싶다”고 되물었다.
한술 더 떠 4월에는 해외파 선수들을 보기 위해 유럽에 나갔다 돌아온 뒤 귀국 인터뷰를 하는 도중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앞으로 팀 내부적인 상황을 외부에 발설하는 선수에 대해서는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선수들을 ‘입단속’하겠다는 뜻을 내비쳐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슈틸리케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경질된 뒤 한국을 떠났지만, 이후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또다시 자극적인 인터뷰로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은 2002년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38세 이동국이 아직 뛰는 것이 한국의 문제” 등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뜻하지 않게 ‘저격’을 당한 이동국이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전북현대 김진수 인스타그램
◇ ‘퍼거슨 1승 추가?’ SNS 논란에 휘말린 선수들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명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말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보편화되면서 SNS에 쓴 말 한마디 때문에 논란에 휩싸이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네티즌들은 “퍼거슨 감독이 또 1승을 추가했다”며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곤 한다.
SNS를 즐겨 하는 스포츠 스타들도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 줄여 말하자면 ‘트인낭’이라는 말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올해 스포츠계 ‘트인낭’의 포문을 연 이는 전북 현대의 김진수(25)였다. 김진수는 올해 2월 자신의 SNS 계정에 훈련복을 입은 사진과 함께 ’아 우리가 한다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팬들은 하루 전 가시마 앤틀러스(일본), 상하이 상강(중국)과 ACL 첫 경기에서 각각 패한 FC 서울과 울산 현대를 조롱한 것으로 해석했다. 특히 심판 매수 혐의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이 박탈된 전북 대신 부랴부랴 전지훈련 일정까지 바꾸면서 ACL에 참가해야 했던 울산팬들의 분노가 컸다. 논란에 휩싸이자 김진수는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8월에는 양동현(31·포항 스틸러스)이 SNS를 통해 조성환(35·전북)을 ‘공개 저격’해 또 한 번 소란이 일었다. 양동현은 자신의 SNS에 K리그 클래식(1부리그) 24라운드 전북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조성환이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며 왼팔로 목을 끌어당기는 장면을 캡처해 올렸다. 여기에 “모든 선수들이 인정하는 좋은 팀, 훌륭한 선수들이 모여 뛰고 있는 팀인데…. (다른 선수들이) 부끄러워하는 걸 아는가.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도 능력이다”라는 글을 올리고 해시태그로 #페어플레이 #부끄러운 건 동료들이라는 말을 남겼다.
스포츠인은 아니지만 스포츠인들과 SNS로 갈등을 빚은 유명인도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71)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는 뜻으로 시작된 미국프로풋볼(NFL)의 ‘무릎 꿇기’ 세리머니에 대해 SNS를 통해 “개X끼” 등의 욕설을 퍼부어 격렬한 비난에 직면했다. NFL은 물론이고 미국프로야구(MLB), 미국프로농구(NBA) 등까지 ‘반(反)트럼프’ 정서가 더욱 거세지는 데 일조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