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도 높은 '유통 갑질 대책'에 유통 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장기 불황과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보복'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새롭게 가해지는 규제로 전반적인 비용 증가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일자리를 창출하라면서 규제는 더욱 강화한다는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유통 업계에 칼 빼 든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는 14일 대형 유통 업체의 불공정행위 억제와 중소 납품 업체 권익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프랜차이즈(가맹사업) 분야 불공정관행 근절 대책 발표에 이은 '갑질' 근절 대책 시리즈다.
이번 대책은 3대 전략(대규모 유통업법 집행체계 개선, 납품 업체 권익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 강화, 불공정거래 감시 강화)을 달성하기 위한 15개 실천과제로 구성됐다.
실천과제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복합쇼핑몰·아웃렛 입점 업체 등 대규모 유통업법 보호 대상 확대, 납품업체 종업원 사용 시 대형 유통 업체의 인건비 분담 의무 등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징벌적 손해 배상제도' 도입이다. 공정위는 이르면 올해 12월부터 대형 유통 업체의 고질적·악의적 불공정행위로 발생한 납품 업체의 피해에 대해 3배의 배상책임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도입 범위는 상품대금의 부당 감액과 부당 반품, 납품 업체의 종업원 부당 사용, 보복행위 등이다.
과징금 기준도 2배 인상된다. 과징 금액을 위반 금액의 30~70%에서 60~140%로 올린다. 위반 관련 매출액을 산정하기 어려울 때 적용되는 정액과징금의 상한액도 현행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인상된다.
공정위는 유통업 규제 사각지대도 없애기로 했다. 현재 전국 복합쇼핑몰과 아웃렛은 사실상 유통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임대업자로 등록된 관계로 대규모 유통업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정위는 연말까지 이들을 대규모 유통업법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한다. 임대업자로 등록해도 상품 판매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경우 대규모 유통업법 적용 대상으로 삼는 안이다.
공정위는 또 연말까지 판매수수료 공개 대상을 현재의 백화점과 TV홈쇼핑에서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까지 확대해 납품 업체의 협상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내년부터 유통 업체가 납품 업체 종업원을 사용하는 경우 대형 유통 업체의 인건비 분담의무를 명시해 유통·납품 업체 간 인건비 분담도 합리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분담 비율은 납품 업체 종업원 사용에 따라 유통·납품 업체가 이익을 얻는 비율만큼 분담하되, 이익비율 산정이 곤란한 경우 50 대 50으로 절반씩 분담해야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대책이 현장에 적용되면 법 위반 억제와 중소 납품 업체의 부담 경감에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15개 실천과제를 차질 없이 이행하기 위해 국회 등 관계 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일부 대책 비현실적" 반발
공정위의 이번 발표에 업계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정부 방침인 만큼 따를 수밖에 없지만, 경영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으며 일부 대책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반응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은 이미 예고됐던 내용이라 특별히 새로울 게 없다"면서도 "납품 업체 종업원에 대해 백화점이 인건비를 분담해야 한다는 내용 등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패션이나 식품 분야 등의 파견직원 인건비를 백화점이 분담해야 한다면 실행상의 난관 때문에 인력을 줄일 가능성이 크며,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 역시 "시식 행사 등을 진행하는 협력 업체 직원들은 주로 신제품 홍보 등 제조 업체 측의 필요 때문에 파견된다"며 "마트가 이들의 인건비를 분담해야 한다면 수백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서 지금처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협력 업체가 요청하면 대부분 판촉 행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유통 업체에도 이익이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소 업체들이 모인 복합쇼핑몰에 대한 규제도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한 복합쇼핑몰 관계자는 "이번 규제로 스타필드, 코엑스몰, 타임스퀘어 등이 규제 대상에 새롭게 포함되면서 이곳에 입점한 중소 자영업자들까지 의무휴업 규제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중소 업체들까지 피해를 입는 과도한 규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불공정행위 억제와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한 취지와 방침엔 공감한다"면서도 "우려했던 대형 아웃렛 등 복합쇼핑몰에 대한 규제 방침까지 더해지면서 의무휴업에 따른 매출 피해가 예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신규 출점 계획까지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일자리를 가장 많이 창출하는 복합쇼핑몰 등에 규제를 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복합쇼핑몰의 경우 대형마트처럼 월 2회 '의무휴업일'을 들이대면 해당 지역의 경제 활성화가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