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0·LA 다저스)이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투구를 했다. 제구력·전략·위기관리 능력 삼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류현진은 7월 31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7이닝 동안 5피안타 1볼넷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빅리그 데뷔 2년 차던 2014년 8월 8일 LA 에인절스전 이후 1088일 만에 7이닝 이상을 무실점으로 막아 냈다. 투구 수는 85개에 불과했다. 4.17이던 평균자책점도 3.83까지 낮췄다. 메이저리그 대표 좌완 투수인 매디슨 범가너(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투구를 보여 줬다.
어깨 부상에서 재기한 뒤 나선 선발 등판 15경기 가운데 가장 투구 내용이 좋았다. 일단 전략을 잘 짰다. 류현진은 올 시즌 좌타자에게 더 약했다. 피안타율은 0.372에 이른다. 이닝당출루허용률(WHIP)도 2.08이다. 우타자에게는 피안타율 0.243, WHIP는 1.09를 기록했다. 최근 등판이던 25일 미네소타전에서도 피안타 5개 중 4개를 좌타자에게 내줬다.
변칙 투구로 돌파구를 찾았다. 좌투수가 좌타자에게 좀처럼 구사하지 않는 체인지업으로 허를 찔렀다. 1회 선두 타자 디나드 스판과의 승부가 대표적이다. 원 스트라이크에서 2구를 몸 쪽 체인지업으로 선택했고, 3구째도 같은 코스, 같은 구종을 던졌다. 스판은 배트도 내지 못하고 삼진을 당했다. 류현진은 3회와 6회에도 스판에게 땅볼을 유도했다.
5번 타자 브랜든 크로포드에겐 철저하게 변화구로 승부했다. 세 번 상대해 던진 11구 중 직구는 1개에 불과했다. 크로포드는 올 시즌 체인지업엔 타율 0.254, 슬라이더는 0.244를 기록했다. 반면 직구 계열 구종은 0.274다. 노림수가 통했다. 삼진 1개, 범타 2개로 돌려세웠다.
우타자를 상대로는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를 했다. 이날은 컷패스트볼(커터) 제구력이 좋았다. 타자 눈앞에서 꺾여 홈 플레이트 바깥쪽(우타자 기준) 가장자리에 꽂혔다. 류현진의 제2구종이 체인지업이라는 사실은 상대 타자도 파악하고 있다. 이날도 28개를 던졌다. 하지만 커터를 섞어 혼란을 줬다. 개수는 10개에 불과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구사했다. 중심타선 우타 라인인 헌터 펜스, 버스터 포지, 황재균에게 효과적으로 통했다.
특히 펜스는 이날 경기 전까지 류현진 상대 타율 0.440(25타수 11안타)로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1회 첫 승부에서 커터로 삼진을 솎아 내며 기선을 제압했다. 4회 두 번째 승부에선 병살타를 유도했다. 7회는 빗맞은 타구가 텍사스 안타로 이어졌다.
위기관리 능력도 좋았다. 류현진은 이날 선두 타자 출루를 네 번 허용했다. 이 중 2루에 안착한 주자는 7회 조 패닉뿐이다. 이전 세 번은 모두 병살타를 유도했다. 3회 무사 1루에선 투수 범가너에게 3루수 땅볼, 4회엔 무사 1루에서 펜스에게 직구로 2루수 땅볼, 6회엔 1사 1루에서 스판에게 유격수 땅볼을 각각 유도했다. 직구가 낮게 꽂혔다. 야수진은 큰 어려움 없이 더블플레이로 연결했다. 2013년 9월 12일 애리조나전 이후 1418일 만에 한 경기 병살타 3개를 잡아냈다. 덕분에 투구 수 관리도 가능했다. 이날 류현진은 이닝 평균 12.1개를 기록했다. 7이닝을 소화한 원동력이다.
포수 오스틴 반스와 호흡도 좋았다. 이전까지는 불협화음이 있었다. 류현진은 주전 포수 야스마니 그랜달과 배터리를 이룬 11경기에서는 평균자책점 3.40을 기록했지만 반스와는 4경기에서 6.14에 그쳤다. 류현진이 한 경기 최다 실점을 한 5월 12일 콜로라도전 포수도 반스였다.
하지만 이 경기에선 초반부터 약속된 볼 배합으로 상대를 함께 공략했다. 이전에는 반스가 내는 사인에 수차례 고개를 저었던 류현진이다. 이날은 대부분 사인대로 던졌다. 투구 간격도 매우 짧았다. 반스는 타격 능력뿐 아니라 주루 능력도 뛰어난 선수다. 종종 선발포수로도 나서는 미래 자원이다. 향후 더 많은 경기를 함께 치러야 한다. 류현진은 이 경기를 통해 '포수를 가린다'는 인식을 없앴다.
시즌 4승은 거두지 못했다. 타선이 또 침묵했다. 0-0이던 7회말 2사 1루에서 류현진의 타석이 돌아왔고 대타 그랜달과 교체됐다. 다저스의 득점은 없었다. 류현진은 승패를 기록하지 않고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소속팀 승리로 위안 삼았다. 다저스는 연장 11회말 카일 팔머의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3-2로 승리했다. 샌프란시스코와 지구 라이벌전에서 3연승을 거뒀다.
류현진은 무엇보다 다음 등판 전망을 밝혔다. 최근 등판한 5경기 모두 5이닝 이상을 던져 2실점 이하를 기록했다. 점차 '코리안 몬스터' 본능이 살아나고 있다. 다저스는 지구(내셔널리그 서부) 2위 애리조나에 14경기 차로 앞서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하다. 팀은 류현진이 가을 무대에서 활약해 주길 바라고 있다. 류현진도 이 기대에 맞게 순조로운 발걸음을 이어 가고 있다.